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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벼락 Aug 20. 2024

창업도 벼락치기-테스트베드2片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유튜브로 포토샵 따라하기


아 그러니까 뭔가 팔기 시작하긴 한 거야. 근데 그게 작가의 작품을 계약해서 파는 형태는 아니었어. 아무 준비도 안 돼 있는데 계약만 한다고 판매가 되는 건 아니니까 나 혼자서 스토어팜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탐색하면서도, 미술이나 디자인과는 관련 없는 내가? 스스로 인테리어용 그림을 만들어서? 팔아?야 하는 그런 상황?을 펼쳐 놓은 거야. 위에서 써놓은 것처럼, 뭐든 만들어야겠으니까 이미지 스톡 구독하는 데 20만원을 썼어.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찾고, 누끼를 따고, 포토샵으로 디자인을 해서 팔겠다는 야심찬(a.k.a. 대책없는) 계획이었지. 옆에 있는 액자 사진이 내가 처음으로 만든 이미지야. 저 뾰족한 나뭇잎 누끼 따는데 하루 이상 걸렸었다.


유튜브를 보며 포토샵을 만지기 시작했어.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을 난생 처음 접했는데 한 사나흘 하니까 팔 만하다 싶은 게 하나 둘 나오더라고. 근데 액자에 넣을 이미지 만드는 게 다가 아니었어. 정말 어려운 건 상세페이지였어............ 상세페이지는 만드는 것도 어렵고, 업로드 하는 것 자체도 너무 신경 쓸 것이 많아서 나는 상품 업로드하는 날만 되면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스트레스가 쌓여서 하루를 날려 먹기도 했어. 상세페이지 제작 및 업로드의 가장 큰 문제는 겨우 만들어서 업로드하고 나면 고쳐야 할 것이 보인다는 거, PC버전으로 올렸는데 모바일 버전으로 보면 분위기가 너무 달라지는 부분이었어. 그 때 만든 상세페이지 아직도 몇 개 살아있는데, 현재 엘디프의 디자이너이자 공동대표님은 그 때 상세페이지 볼 때마다 "포토샵도 못하는게 애썼다" 이러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지금은 포토샵 모든 단축키 다 까먹음. 약은 약사에게,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원가, 마진 개념 익히기

작은 규모이지만 재고를 주문해보고, 직접 액자를 만들고, 포장도 해보고 하니까 원가와 마진 개념이 자동으로 습득되더라고. 처음에는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만 원가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하다보니까 부가세, 배송비, 포장비, 내가 들이는 시간에 대한 인건비는 물론이고 반품되었을 경우에 생기는 손실, 재고를 손상되지 않게 오래 보관할 수 있기 위한 관리비 등 생각보다 많은 원가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 광고는 엄두도 못 냈지만 광고비까지 결국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한 작품이 판매될 때마다 마진이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내가 테스트를 한참 진행하던 시절에는 초저가의 포스터 시장과 프린트베이커리처럼 브랜드 파워가 있는 회사들이 만들어내는 약간 부담스러운 가격의 시장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중간'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었어. 테스트 개념으로 내가 직접 만든 이미지로 액자를 판매하고 있을 때는 나도 '저가' 축에 속하는 가격을 선택하였어. 내가 이름 있는 작가는 아니니까. 그런데 아티스트와 함께 일하게 되면 '중간 가격'을 선택해야겠다는 결정은 이 때 하게 되었어. 분명히 예술성이 차고 넘치는 작가들의 작품이라는 장점을 가져가면서도 나 같은 그알못도 접근 가능한, '인테리어 소품'으로서의 가격을 제시하고 싶었거든. 모든 걸 혼자 하다 보니 깨달은 것은 한 가지 더 있었어. 저가는 저렴한 원가가, 중간가격은 중간의 원가가, 고가는 비싼 원가가 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가격을 선택하더라도 많이 팔아야 손으로 주무를 만한 이윤이 남는 다는 거였어.



사무 공간 만들기

워낙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보니 사무실을 얻을 엄두가 나지 않았어. 돈도 안 벌렸지만, 혼자서 하다 보니까 집에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거든. 그런데 큰 문제가 있었어. 나는 공간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라는 점이야.


고등학생 때 집에서 자율 학습을 잘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일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어. 성인이 되니까 스스로를 통제하는 힘이 오히려 더 없더라고. 세상의 단 맛을 봐서 그런 거였을까? 그것 보다는 누구도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철저한 '혼자'여서 그랬던 것 같아. 친구들이 모두 공부를 하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집이든 학교든 공부를 하는 것이 가능했던 거였어. 일을 혼자 한다는 건 또 다른 일이더라.


늦잠 자고, 노느라 일 안 하는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어.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나름 괜찮은 직장을 때려 치고 나왔는데 고작 이렇게 산다는 게 혐오스럽더라고. 그런 마음이 드는 데도 집에 있으면 계속 누워있게 되고 컴퓨터를 켜도 다른 데로 새게 되고 핸드폰만 계속 하는 습관을 고치기가 힘들었어 그래서 결심했지, 사무실을 찾기로!




이은아 - Depend on I

덕업일치 Issue No.10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처음으로 엘디프 소속 작가가 아닌) 이은아 작가의 <Depend on I>라는 작품이다. 이번 덕업일치의 내용처럼, 이은아 작가와 엘디프는 계약관계는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작업노트도 없고, 작가 더 알아보기 버튼에 링크를 걸 수도 없다. 그러나 작가와 나는 엘디프의 전신인 '도브그레이'를 창업했을 때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아티스트와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을 다음으로 미루고 테스트베드로서 시작한 도브그레이의 하찮은 사업자금 중 40%의 지분이 투입된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작가가 두어가지 동물을 식물처럼 접붙이기 한 기이한 상상이 각인되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뇌리에 남아 2016년에도, 2017년에도 생각이 났다. 결국 창업한다는 핑계로 나의 첫 콜렉션이 된 이 작품은 늘 나의 공간 어딘가에 자리 잡아서 '너, 지금보다 더 이상한 방향으로 가도 된다'고 말해준다.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잡념과 망상이 현실과 괴리감을 만들 때마다 결국은 그 둘이 접붙이기 되어 엘디프라는 혼종을 만들어냈던 것을 기억하며, 어제도 오늘도 늘어 놓았고 내일도 가지치기를 할 나의 여러 뻘짓들이 결국은 의미를 얻어갈 것을 믿어본다. 


작품 정보 - Depend on I, Acrylic on canvas, 31.8x40.9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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