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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Jun 27. 2021

비 내리던 날

그리운 파전과 막걸리

    먹구름에 뒤덮인 하늘은 본래의 색을 잃고 어둑한 천장을 만들어냈 어딘가에서 무심히 발현되는 빛 간 상 아직 저녁이 되지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높은 곳으로부터 시작했을지 모를 굵은 빗방울들이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다. 노면과 만난 빗방울은 사방으로 찢어지고, 아파서 비명이라도 지르는 듯 타탁 타닥 소리를 낸다.  줄기 한 줄기의 소리에 집중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에서 쏴아아 무서운 소리를 내며 비는 내린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들어간 칼국수 집에선 주인아주머니가 배달 주문을 포장하느라 분주했고, 그 와중에도 주문은 끊임없이 들어오는지 "배달의 민족- 주! 문--"하는 경쾌한 기계음이 고요한 식당에 바지런히 울려 퍼졌다. 무수한 울림을 뚫고 바지락 국수와 왕만두가 도착하면 이내 바깥구경을 멈추고 온전히 젓가락질에 집중한다. 다섯 개의 만두는 다섯 가지 모양으로 자신이 품은 속을 흐릿하게 내보인다. 시큼한 간장에 콕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퍼지는 육즙에 시원한 칼국수 국물을 한 모금 더하고, 입 안에 느끼한 맛이 겉돌 때쯤 고춧가루 야무지게 들어간 겉절이 한 점을 먹어본다. 


    비 오는 날에는 대체로 파전에 막걸리를 먹었다. 비가 오면 항상 파전부터 생각이 났다. 타닥타닥 비 오는 소리가 지글지글 파전 익는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았다. 느끼한 파전을 한 입 먹고 시원한 막걸리를 한 잔 마시자면 쏴아아 비 내리는 소리만큼 내 입안도 시원해졌다. 기분이 주는 음식이었다. 불과 몇 달 전, 임신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비 오는 날은 그런 날이었다. 추적이는 하루를 보낸 것에 대한 보상이 깃든 날.

 

    임신을 하고 나니 술을 마실 수가 없다. 술 생각이 너무 나서 술과 함께 즐겼던 음식도 먹기가 힘들어졌다. 그중의 제일은 단연 파전에 막걸리다. 임신 사실을 알고 처음으로 비가 왔던 날, 길을 잃은 것 같았다. 한참의 고민 끝에 칼국수를 떠올려냈다. 따끈한 국물과 만두 그리고 시원한 겉절이가 그나마 위로가 되었지만 여전히 올해의 장마는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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