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카페는 사람으로 넘쳐났으나, 공기 중에 오가는 소음은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에 묻혀 오히려 고요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전형적인 프랜차이즈 카페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그곳은 근방에서 유일하게 영업 중인 카페였다. 1년 전까지만 해도 활기차던 상가 거리가 무색하게 지나치는 입구마다 '임대'라는 무거운 단어가 한낱 종잇장에 적혀 팔랑이고 있었다. 이 시간에 이 곳에만 사람이 몰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입구 앞 대각선으로 앉은 두 남녀는 각자 인쇄된 종이를 보며 간간히 의견을 주고받았다. 언뜻 보기에 일말의 애정도 담겨있지 않는 눈빛으로 그들은 그저 서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듯 보였다. 그 뒤로 세워진 가벽 너머에는 마주 앉은 긴 머리의 두 여자가 자못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 대화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시간이 지나도 둘 앞에 있는 음료가 좀처럼 줄어들 줄을 몰랐다. 벽에 걸린 액자 밑으로는 다소 경직된 자세의 두 남녀가 그러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세 여자가 있다.
나란히 붙어있는 원형 테이블 위로 달콤한 음료 세 잔이 담긴 쟁반을 올려놓고 세 여자는 차례차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 하루 커피만 두 잔을 마셨다는 여자는 달달한 초코 블렌디드를 주문했는데, 음료 위에 데코레이션으로 뿌려진 초코시럽을 빨대로 가차 없이 휘저으며 한 모금 맛을 본다. 그 건너편엔 퇴사 후 '사'자 타이틀을 달고 금의환향한 여자가 부른 배를 부여잡고 미색의 바닐라 블렌디드를 마시려고 준비 중이다. 임신 4개월 차에 접어든 여자는 비타민이 잔뜩 들어있길 바라는 딸기 블렌디드를 집어 들며 저녁을 먹고 볼록 나온 배를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한 모금씩 음료를 맛 본 이들은 마치 숙제를 하듯 옹기종기 얼굴을 맞대고 인증샷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다.
임신과 코로나 시국이 겹쳐 몇 개월을 내리 집에만 있던 나의 실로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오래간만에 화장도 하고, 장신구도 걸쳤다. 그 자체로 이미 신이 났다. 임산부의 외출은 본인뿐 만 아니라 동행인까지도 불편하게 만든다. 방광이 눌려 화장실도 자주 가야 하고, 배고파서 속이 울렁이기 전에 뭔가 먹어야 하는 등의 스팟성 이벤트가 길지 않은 간격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또 가?'하고 한 번쯤 말할 만도 한데, 귀찮은 기색 없이 화장실을 찾아주거나, '배고파'하는 말에 바로 식품코너로 방향을 바꾸는 작은 배려가 고마울 따름이다.
반년 만에 만난 언니들은 언제 만나도 유쾌한 나의 입사동기다. 20대 초반에 갓 대학을 졸업하고 만난 우리는 어느새 임산부가 되고, 유부녀가 되고, 유부녀가 될지 고민하는 30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별 다를 것은 없었고, 웃음이 많은 세 여자는 여느 때처럼 서로의 드립에 깔깔 웃기 바빴고, 언제나처럼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