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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Nov 11. 2021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지.

오전 9. 알람이 울린다. 늦어도 지금 나가야 지각을 면할  있다.

오늘도 등원하기 싫다는 아이들을 재촉하여 등원 준비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9시 20분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급한 마음으로 나서는데 주차장 출구에서 차 한 대를 만났다.

그 차는 트렁크가 열려있고 보조석 위에 어린이집 가방을 올려놓은 채로 출발하고 있었다.

'아이코, 저 집 엄마도 급했구나.'

경적을 울려 차를 세운 후 가방의 위치를 찾아주니 빠르게 정리하고 비상등으로 감사인사를 하며 달려가는 앞차.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요즘 괜히 나만 힘들고 나만 전전긍긍하며 사는 거 같았는데, 다들 비슷하게 사는 거 같네'


20대의 치기 어렸던 내가 꿈꾸던 서른다섯 살의 나는 열심히 일하고 휴식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커리어우먼이었다.

스물아홉에 결혼해 서른 전에 첫째, 서른하나에 둘째를 낳아 육아에 전념하다가 서른넷에는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지만 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인생이 끝나지도 않았다.


나는 결혼 3개월 전에 사직하고 신혼여행이 끝나자마자 재취업할 계획이었다. 다시 일하게 되면 임신을 해도 출산을 해도 잠깐 휴식을 하되 그리 길게 일을 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계획과 달리 허니문 베이비가 생겨 그때부터 쭉 일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동안 임신 및 출산, 육아, 자녀교육, 가족 돌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여성, 경력단절녀의 삶을 살았지만 언젠가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늘 했기에 별로 거칠 것이 없었다.

매년 재취업의 기회가 생겼지만 늘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고, 수많은 선택지 중에 결국은 전업맘의 길을 택했다.

정말 원해서 한 선택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고를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하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정 맘으로라도 잘 살아보자며 시작한 전업맘의 세계.


하루 24시간. 아이들에게 치여 라면 하나 제대로 끓여먹지 못하고 잠 한숨 푹 자지 못하고 지낸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이들이 등원을 하고 아이들끼리 노는 시간이 생겼다.

그럼 내 몫은 좀 줄어들까 싶었는데 아이들이 크니 몸이 조금 편해지는 대신 걱정거리가 늘었다.

여전히 그 어느 것 하나 나의 손이 가지 않아도 될 것은 없었고, 눈앞에 보이는 집안일을 내팽개치고 쉴만한 용기도 없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을 현실에서 완벽한 엄마와 아내의 모습으로 채우고자 하는 나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도 모르게 또 내게 벅찬 에너지를 쓰고 있는 나.

그냥 좀 쉽게, 좀 편하게, 좀 여유 있게 살아도 되는데 나도 모르게 무리하고 나서야 지친 나를 돌아보며 나 자신을 탓할 때마다 더욱더 답답해졌다.


눈뜨면 눈감을 때까지 뭐가 그리 바쁘고 급해서 하루 종일 전전긍긍 혼자 애쓰고 있는 걸까.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 땐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다가 잠시 틈이 나면 나도 모르게 억울함이, 슬픔이 목 끝에 차고 올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에게 일상 속 잔잔한 소박한 행복들을 찾아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등원 후 누리는 커피 한잔, 친구들과 나누는 담소, 매주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나를 다독이는 글쓰기 모임, 요즘은 좀 소홀해졌지만 주마다 함께했던 다시 함께하고픈 그림모임, 책 읽기, 미술관 관람, 하원 직전 창문으로 스미는 따뜻한 햇살, 나의 목과 어깨를 풀어주는 안마기, 따뜻한 핫팩, 등등

어찌 보면 사소하고 어찌 보면 벅찰 만큼 고맙고 큰.

만약 내가 지금 일하고 있더라면 누릴 수 없었을 나만의 행복.


가끔은 일하지 않아서 느끼는 아쉬움과 속상함, 여유롭지 못한 통장잔고가 나를 힘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누릴 수 있는 현재의 기쁨을 더 잘 누리며 살아가야겠지.


오늘도 아침부터 등원 전쟁을 치르느라 참 많이 벅찬 아침이었는데 에피소드 하나로 작은 위로를 받고, 현재에 감사를 느끼며 다시 또 나를 다독여본다.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야.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다시 또 오늘을 살아갈 거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목표지점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조금 더 여유를 가지자. 조금 더 편안해지자.


하원까지 남은 시간 1시간. 남은 시간 동안 좀 쉬어야겠다.

하원길에 만난 아이들과 웃으며 이야기 나눌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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