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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Nov 25. 2021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지난주 내내 가정보육으로 시달리고 월요일부터 등원을 시켰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3일을 보내고 목요일.

오늘 드디어 좀 쉬나? 싶었는데 목요일의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번 달 주제는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데 나 지금 행복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지치네.


고개를 돌리니 한쪽에는 싱크대에 어제의 딸내미 생일파티 잔재가 한쪽에는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 잔재가 가득하다.


코로나가 잦아들면 친구들 초대해서 유니콘 공주 파티를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는데 전국 일일 확진자수가 4천 명을 넘어서고 있는 마당에 생일파티 초대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오니를 어르고 달래 가족끼리 함께하는 생일파티를 하게 됐다.

간단히 하려다가 뒤늦게 열정이 불타올라 결국 무리했던 탓에 너무 피곤한 오늘이다.


너무도 피곤한 몸뚱이, 다시 도진 편두통, 정리되지 않은 집안꼴을 보니 열정 가득했던 어제의 나의 멱살을 잡고 주저앉히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왜 나는 열정을 나눠 쓰지 못하는 것인가. 어쩜 이리 무식하리만치 늘 오버센스인가 말이다.

정신 차려! 나 이제 이십 대 아니야. 이제 삼십 대 후반이라고! 나눠 써야 해! 에너지를!이라고 속으로 외치며 나를 채근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오랜만에 안 쓰던 커피잔 세트를 꺼냈다.

커피잔 안에 얼룩도 있고 비싼 잔은 아닌데 둥글둥글 예쁜 라인의 이 하얀색 커피잔 세트가 나는 참 좋다.

몇 해 전 참 좋아하던 카페가 매장을 정리하며 사용하던 식기들을 판매할 때 그 카페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구매했던 커피잔 세트.

아이들이 어려서 온몸으로 육아하느라 힘들 때마다 찾았던 카페라 그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자매가 함께 제주의 구옥을 리모델링하여 제주 느낌 물씬 나게 꾸며놓고 꽃집과 카페, 에어비앤비 숙소까지 함께 운영하던 곳인데 우연한 계기로 인연이 되어 카페 단골로, 플라워 클래스, 캔들 클래스 수강생으로 참 많이 드나들었고 그만큼 추억도 참 많은 곳이었다.

카페 사장님의 결혼으로 카페를 정리하게 되었는데 그들에겐 참 좋고 기쁜 일이었지만 내겐 너무 아쉬운 슬픔이었다.

그저 커피 한잔으로 육아노동의 힘듦을 풀어낼 수 있는 정말 고마운 공간이었는데.

이 카페 이후로 이만큼 편하고 위로가 되는 카페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더 그리운 거겠지.


그래서 이 커피잔 세트가 심신이 괴롭고 힘들 때마다 그 카페를 찾는 대신 꺼내놓는 나만의 힐링 템이 되었다.

조용히 나의 공간에서 그때의 나를 떠올리고 지금의 나를 느끼고 미래의 나를 그릴 수 있는 귀한 물건이 되었다.


오늘이 바로. 오랜만에 집에서 찐 힐링을 즐겨야 할 타이밍이었다.

커피를 진하게 내려 나만의 힐링 템에 따르고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 앉았다.

아직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모르겠고, 문득 떠오른 H.O.T. 의 행복 노래를 켜고 잠시 즐긴다.

다운됐던 몸과 마음이 커피와 음악으로 조금씩 자리를 되찾는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행복이 무엇이냐.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 한다.


나의 생활에 있어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게 만드는 것 또는 그 상태?


알람 없이 개운하게 깨어난 아침. 내 옆자리에 누워있는 내 사랑스러운 가족들. 늘 엄마가 최고라 말해주는 귀여운 라거 둘, 모두 잠든 시간 홀로 즐기는 나만의 시간, 맛있는 커피 한잔, 달콤한 디저트 한 조각, 추억의 노래 한곡, 가사는 외우지 못하지만 리듬 타며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들, 따끈 따근 갓 구운 빵, 달리는 차 안에서 부르는 나의 최애 곡 리스트들, 신선한 공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바다, 오후 4시쯤 거실 창으로 스며드는 따뜻한 햇살, 주부 월급 알람메시지, 큐티클 제거된 깨끗한 손톱, 비오기 직전 흙냄새, 비 오는 어느 날 창가에 앉아 마시는 따뜻한 라테,  등등등


헤아릴 수 없이 행복한 순간이 넘쳐나는 내게 가장 행복하게 하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건 너무 어렵다.

가장. 여럿 가운데 어느 것보다 정도가 높거나 세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에서 꼭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으로 맛있는 커피 한잔을 택하겠다.


우리 신랑 말로는 가장 가성비 좋은 보래미 기분업템이 커피 한잔이라고 했는데.

진짜 딱이다.

내게 가장 저렴하고 단시간에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하나는 커피.

나를 가장  알고 가장 많이 생각해주는  남편의 초이스가 찐이었다.

참 쉽고 싸고 간단한 행복.


누군가 삶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물었을 때마다 나는 극도로 바쁘고 힘들었던 대학 4학년 시절 다녀온 해외봉사에서 고된 노동 후 잠깐 쉬면서 느낀 라오스 테라스의 행복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 후로 10여 년이 지났지만, 수많은 행복 중 그날의 행복이 가장 진하게 남는 걸 보며,

나는 그동안 그때만큼 행복하지 않아서 그날의 행복이 각인되었나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생각해보니 극과 극에 치닫는 불행 혹은 고난이 있어야 극한의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 행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대학 4학년 때만큼 치열하게 살아볼 때도 없었고, 그 후론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야 할 필요도 못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럴 필요 없이 평온했다기보다 인생의 큰 굴곡에도 무던하게 잘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가족을) 얻어서랄까.


사실 행복이란 건 지극히 주관적이고 매 순간 변화하는 세상처럼 늘 바뀌는 거라고 생각한다.

늘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순간은 매일 있는 것처럼.

나는 나도 내 아이도 그저 늘 행복하기보다 대체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매번 바뀌는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늘어놓고 매 순간 행복을 선택하며 조금 더 대체로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벅차게 어마어마한 행복보다 쉽고 간단하고 다가가기 쉽지만 조곤조곤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며 나눌 수 있는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 찬 나의 일상을 위하여 오늘도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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