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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Nov 04. 2021

처음이자 마지막

제주도시여자의 캠핑 이야기


작년부터 시작된 오니의 캠핑 앓이는 식을 줄 모르고 점점 타올랐다.

친구들은 다들 캠핑 간다는데 우리는 왜 안 가냐고. 우리도 가자며 잊을만하면 되뇌던 오니의 캠핑 욕구.


물론 나도 사진으로만 봐온 캠핑은 너무 꿈같아서 늘 가고 싶었지만 그건 남편과의 로망이었지, 아이 둘과 함께하는 캠핑이라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 앞 놀이터에만 나가도 물이며 간식이며 여벌 옷까지 가방이 가득 차는데 아이들과 함께 잠까지 자고 오는 캠핑은 얼마나 많은 짐이 필요할까?

그리고 집이 아니면 잠도 잘 못 자고 화장실도 편히 못 가는 남편과 나인데 숙소도 아닌 텐트에서 자고 오는 캠핑이라니 상상도 못 할 일.

그렇게 꾹꾹 누르고 애써 외면했던 캠핑은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던 우리였다.


그러다 우연히 캠퍼 삼촌의 도움으로 캠핑이란 걸 가게 되었다.

모든 걸 다 준비해줄 테니 너희는 그저 아이들 먹을 거랑 이불만 챙겨 오면 된다는 삼촌의 말에 혹했다.

정말 다 준비해주신다고요? 우리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가능해요?

이렇게 흔치 않은 기회가 생겼는데, 그래도 안 가면 예의가 아니지! 라며 고민 끝에 가게 된 캠핑.


사실 남편과 나의 계획은 일요일에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오는. 딱 '캠핑의 맛'만 느낄 수 있는 1박 2일이었다.

토요일까지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하니 남편은 월요일 휴가까지 내고 일요일만 기다렸다.

그런데 열정 부자 캠퍼 삼촌이 답사 갔다가 바로 자리를 펴는 바람에 계획과 달리 하루 일찍 우리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 캠핑이 시작됐다.


토요일 아침.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뒹굴거리다가 삼촌의 호출로 캠핑지 답사에 나섰다.

캠핑지에 도착하니 토요일엔 바람이 많이 불거라고 했는데 바람 한 점 없이 맑고 해가 비친다.

삼촌은 말없이 텐트를 치기 시작했고 옆에서 거들던 우리는 약 30분 만에 텐트를 완성했다.

어? 생각보다 수월하다. 해볼 만한데?라고 생각이 들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하하.

우린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당연히 캠핑은 물 건너갔다 생각했는데 삼촌은 비가 와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집에 가서 짐을 챙겨 오라고 하셨다.

우린 흔들리는 눈동자로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짐 챙기러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바다나 밭에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 바다 보며 먹다오 긴 했었는데,

캠핑은 처음이라 제대로 된 침낭도 없고, 캠핑 준비물이랄 것도 없었다.

부랴부랴 아이들 이불이랑 무릎담요 여러 개, 두꺼운 옷들을 챙기다 보니 이미 차는 가득 찼다.

계획했던 캠핑 날이 핼러윈데이라 미리 준비해둔 핼러윈 가랜드며 앵두 전구며 꿈에 부풀었던 핼러윈 데코는 도저히 넣을 자리가 없어 포기하고 생존 필수템들만 챙겨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다녀온 사이 삼촌은 텐트 내부 세팅부터 저녁식사 준비까지 마무리하셨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과 함께 저녁 준비를 하고 바다가 보이는 캠핑장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행복한 저녁을 만끽했다.

역시 밖에서 먹는 고기가 제일 맛있고, 날이 좀 추우니 더 맛있고, 잔잔히 들려오는 파도소리도 밤하늘을 가득 채운 수많은 별들도 우리를 축복하는 듯 모든 게 완벽했다.

'와 행복해. 이런 게 캠핑이구나. 너무 낭만적이다. 아름답다. 즐겁다. 너무 좋다!!!'

라는 생각도 잠시, 저녁식사를 마무리하자마자 현타가 왔다.

남은 음식과 쓰레기, 식기를 정리하고 차가운 물로 기름기 많은 그릇들을 맨손 설거지하면서 한번.

아이들이 그동안 눌러왔던 캠핑 욕구가 폭발했는지, 하고 싶었던 게 얼마나 많았는지 쉴 새 없이 엄마를 불러서 한번,

중간중간 도보 3분 거리(뭐 이 정도는 애교라고 하던데 내겐 너무 멀었던)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것에서 한번,

텐트 문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여러 번.

아이들은 너무 즐겁고 행복한데 우리만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은지, 남편과 나만 너무 불안했다.

그래도 잘 놀았는지 생각보다 일찍 잠든 아이들.

전용 캠핑장이 아니라 전기도 없는 이곳에서 파워뱅크로 돌리는 전기매트며 석유난로며 삼촌이 준비해준 캠핑용품들이 너무 좋아서 놀라고 감사하면서도.

잘 때 이불 따위 덮지 않는 아이들이 혹시나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걱정돼서, 아이들 화장실 셔틀 하느라 남편과 나는 맘 편히 잠도 못 잤다.


다음날 아침.

하룻밤 만에 3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 남편과 나.

"와… 진짜 이건 아니다! 이대로 2박은 무리야. 이러다가 우리가 병나겠어"라며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자자고 이야기했다.

아침은 간단히 3분 함박스테이크와 라면으로 때우고 고된 심신을 달래고자 근처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와서 마시며 나름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하루 더 자고 싶다고 애원하고 삼촌도 하루만 자긴 아깝다며 애들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하루 더 자라고 하셔서 고민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2박을 결정했다.


"이번 캠핑이 시작이자 마지막이다!!!!!"를 못 박으며 남은 시간 아이들과 여기서만 할 수 있는 놀이를 하되, 요리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일요일을 불태웠다.

프로펠러 날리기, 낚시, 솔방울로 인형 만들기, 숯으로 그림 그리기, 소꿉놀이, 술래잡기, 스파클라 불꽃놀이, 등등등.

아이들 입에서 심심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정말 열심히 놀았다.

그리고 약속대로 점심은 중국음식을 시켜먹고 저녁은 횟집에서 회를 떠 와서 먹었다.

첫날의 찬물 설거지 더 이상의 요리는 거부. 설거지도 다 집에 가서 하려고 모아놓고 이튿날 밤은 아이들도 나도(남편만 빼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셋째 날 아침.

나만 홀로 새벽에 깨어나 바다 산책을 하고, 근거리에 위치한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를 사고 돌아왔다.

짐을 싸고 정리하며 아이들과 주변 쓰레기를 줍고 텐트 앞에서 우리만의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2박 3일의 처음이자 마지막 캠핑이 어땠느냐는 질문.

아이들은 2박 3일간의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을 줄줄 읊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화장실이 멀어서 힘들었고, 양말을 벗지 못해 싫었다고 했다.

(잘 때 양말 벗고 자면 추울까 봐 양말을 못 벗게 했더니 이게 참 불편했던 모양이다. 상상도 못 했던 답변^^)

다음에 또 오고 싶냐고 물었더니? 다음엔 텐트 말고 호텔에서 자고 싶다고 했다. 하하하.

응. 엄마 아빠도.

우리도 너무 힘들었고 지쳤고 피곤해서 다신 잠까지 자고 오는 캠핑은 하고 싶지 않다고.

그래도 너희들이 너무 재밌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만족하고 다음에 잠만 자지 않는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많은 캠프닉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니까 낮에 열심히 놀고 잠은 꼭 집에 가서 자자고 이야기했다.


아이를 키우며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지만, 유독 안전만큼은 과하다 싶을 만큼 예민하게 구는 남편과 나에게 캠핑은 정말 큰 도전이었다.

남들은 이 좋은 계절. 그 좋은 제주에서 즐기지 못하는 우리를 아쉬워할지 몰라도.

남들 다 좋아하고 꿈꾸는 캠핑이 우리에겐 참 안 맞고 힘든 도전이었다.

이번 계기를 통해 우리가 정말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맞춰가야 할지에 대한 조금 더 뚜렷한 방향을 깨닫고 나눌 수 있었다.

앞으로는 우리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뭐든 해봐야 안다.

만약 이번에 오지 않았다면 계속 캠핑 가는 꿈만 꾸고 부러움만 가지고 살았을 텐데, 이번 계기를 통해 이젠 수많은 감성캠핑 사진을 봐도 부럽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사진 한컷의 행복보다 그 뒤에 따르는 수많은 고생이 눈에 보여서랄까.

물론 요령이 생기고 즐길 줄 알게 되면 충분히 더 즐거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우리에겐 캠프닉 정도가 최선임을 알고 더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것에 만족한다.


2박 3일의 짧고 굵은 행복 누림 후 아직까지 피로가 풀리지 않아서, 쌓아놓은 캠핑 짐들이 정리되지 않아 신경 쓰이지만 그래도 글 쓰며 다시 되새겨보니 힘든 것보다 좋았던 것이 더 많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좀 더 크고 우리에게 좀 더 여유가 생긴다면 다시 또 하게 될지도?라는 여지를 남겨두며.

 

누구보다 캠핑을 싫어하고 힘들어하면서도 2박 3일 동안 군말 없이 우리를 잘 케어해준 남편과

귀한 경험 편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캠퍼 삼촌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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