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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Dec 16. 2021

2021년을 마무리하며

해방 타운에서 마무리하는 2021년.


비 내리는 12월의 서울 밤. 나는 지금 해방 타운에 왔다.

엄마의 유방암수술 후 정기검진을 핑계로 3년째 이어지는 엄마와 나에게 주어지는 고마운 시간.


연일 이어지는 코로나확진세로 내내 걱정하다 정기검진을 빼먹을 수 없어 감행한 서울행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벌 것도 아닌 확진자 수에도 벌벌 떨며 마스크두겹, 페이스쉴드, 모자, 롱 패딩, 비닐장갑, 손소독제, 메디 록스 분무기까지 챙겨 다녀왔던 작년 겨울의 서울행에 비하면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마스크 두 겹을 시작으로 손소독제 샤워, 숙소 밖에선 물 한 모금조차 용납하지 않는 코로나 염려증 큰딸의 엄호를 받으며 상경해 피곤한 엄마는 일찍부터 잠을 청하셨다.


지난가을 휴식 워크숍에서 꿈꿨던 나의 휴식 리스트  하나를 지금 이뤘다.

해방 타운에서 맞는 나만의 시간.

서울에 올 때마다 묵는 조용한 동네의 깨끗한 호텔 방안. 늦은 밤이라 고요한 이 방안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맙고 찡한 나의 엄마는 옆 침대에서 주무시고, 나는 조용히 일어나 겨울비 내리는 서울의 야경을 배경으로 잔잔히 흘러나오는 캐럴을 들으며 한 해를 정리하는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아까 낮에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다던 엄마의 말에 잠시 들렀던 롯데몰 정전으로 한번(진짜  커피를 주문하고 결제하려는 순간 정전이 돼서 결제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수많은 재난영화가 떠오르며 급히 쇼핑몰을 빠져나와 호텔로 왔다. 커피도 하나 못 사고), 그리고 오늘 오후 갑작스레 발생한 제주 지진 소식에 한번, 눈앞이 캄캄하고 어쩌면 다시 제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일은 없었고, 그만큼 서로의 존재 자체에 감사할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2021년을 마무리하기에 너무적합한 오늘이다.


코로나 2년 차여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생각했지만 적응될만하면 다시 도돌이표가 되어버리는 코로나 일상에 좌절하고 또다시 일어나 힘을 내야만 했던 2021년이었다.


작년 말 새해를 맞이하는 나의 큰 목표는 예비초등생 첫째의 입학 준비와 어떻게 하면 나의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였다.


우리 집 생애주기가 바뀌는 지점 중 하나. 첫째의 초등 입학.

첫째의 초등 입학으로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게 짧아질 나만의 시간이었다. 점차 적응이 되겠지만 어쩌면 내게 가장  변화.


등원과 함께 시작돼 하원으로 종료되는 나만의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거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래서 올해만 할 수 있는 것, 지금이라서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최대한 내 시간에 열정을 다했다.

그동안 정말 듣고 싶었던 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도 이수하고, 취미생활도 꾸준히 하고, 브런치 작가도 되고,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찬찬히 쌓아간 나의 1년의 기록이 무엇보다 뿌듯한 12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혼자였다면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이뤘다.

그중 가장 뿌듯한  나만의 닉네임 '제주도시여자' 찾아내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있게  것이다.

아직 많은 사람이 보지 않지만 세상에 꺼내놓는 나의 글을 매주 써 내려간다는 것 자체가 정말 좋다.


그리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사진 정리를 하다 보니 참 많은 걸 했더라.

매달, 매계절 우리만의 이벤트를 계획하고 만들어간 사진을 보고 있자니 한 해가 정말 꽉 찬 느낌이었다.

어쩜 이리도 열심이었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사진을 가득 채운 우리의 어제들이 너무 고마웠다.

나는 늘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천천히 쌓아가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꿈꾸는데,

올 한 해 정말 소소하게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함께하는 시간의 양과 질에 따른 고민이  뒤따랐지만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낸 것만으로도 감사한 한 해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것들을 견디고 이뤄낸 우리 가족 모두 멋졌다.


이제 곧 2021년도 끝이 나겠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토록 평온한 시간을 보낼  있는 나의 오늘이 참 좋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역시나 내사랑 덕분이었다.

바쁜 연말에 휴가까지 내고 아이들을 봐주는 당신의 사랑과 배려에 오늘  한 번 감사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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