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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Dec 09. 2021

요즘 당신의 고민은 무엇입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새로운 건 다 재밌고 신기했다.

늘 앞서가고 싶었고, 무언가 해내고 싶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하다 보니 딱하나 매우 뛰어난 건 없는데 고만고만 나쁘지 않게 잘 해내는 편이었다.

그래서 진로 고민을 하다가 사람을 좋아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던 나는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꿈 많던 대학시절에는 사회복지로 내가 세상이라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실무에 들어가 보니 내가 하는 일이 생각보다 고되고 큰 영향력이 없어 보였다.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이마가 4cm나 찢어졌고, 뇌진탕으로 입원한 내게 의사는 다시는 이런 일 하지 말라고 했다.

사회복지로 세상을 구하려다 내가 클라이언트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공부했고 노력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는데 맘처럼 쉽지 않았다.

어릴 적 엄마는 늘 내게 너는 열심히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더 많은 게 인생이라는 걸 사회생활을 하며 뼈저리게 느꼈다.

어릴 적 엄마의 말이 맞다고 믿을 수 있었던 건 엄마의 백그라운드 안에 있어서 뭐든 가능했던 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뭐라도 해보겠다고 다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20대를 지내다 스물아홉에 결혼과 동시에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면서 당장 눈앞에 펼쳐진 일상에 치여 살았다.

세상을 구하기는커녕 내 눈앞에 있는 생명체 하나도 구하지 못할 것 같아 전전긍긍하며 보낸 시간들.

그러다가 첫째가 다섯 살이 되고 보육에서 교육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이젠 나무만이 아니라 숲을 봐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가 소중했지만 오늘만 살고 말 것이 아니라면 내일 그리고 더 먼 미래도 내다봐야 했다.


하필 그 시점에 코로나가 터졌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골머리를 앓던 내게 다가온 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공포였다.

나의 모든 시선과 생각이 아이에게 빠져있는 동안 세상은 빠르게 흘러갔는데 나만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불안감을 떨치고자 just do it으로 뭐든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2년. 뭔가 열심히 하긴 했는데 쌓이긴 쌓인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고여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멈춰있었던 만큼 남들 하는 거 따라 하면 중간쯤 가 있을 줄 알았는데 난 또 그 자리였다.

내가 따라간 만큼 앞선 자들은 더 앞서 나갔을 테니까.

해도 해도 안 되는 느낌이 들고 답답한 마음이 들어 여름 즈음부터는 진짜 맥이 탁 풀렸다.


나는 늘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나.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그냥 두면 나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텐데 너무 애썼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봤다.

그랬더니 그동안 겨우 만들어 놓은 루틴이 깨지면서 불안감이 더 커졌다.

내가 이만큼 해도 못 따라간 걸 내려놓으면 더 멀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 쉬고 싶은 마음 반, 따라가고 싶은 마음 반. 반반 마음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렇다고 다시 틀에 박힌 생활을 하며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데 어쩌지?

그럼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 다시 나의 루틴을 짜 보자.

시간대 루틴이 아니라 할 일 목록을 그날 안에 처내는 방식의 루틴으로 살아봤다.

그랬더니 불안감은 좀 줄어드는 것 같았으나 규칙적이지 않은 습관에 더 허덕이고 있었다.


연말이 가까워오고 어떻게 하면 내년은 조금 더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을까?

나는 요즘 이게 가장 고민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읽은 글에서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자연스러운 것과 내 맘대로 살고 싶은 것은 다르다고. 자연에는 규칙과 질서가 있단다.

나는 늦잠을 자도 해와 달은 늦잠을 자지 않고,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때가 되면 꽃은 진단다.

그 어느 것 하나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가지고 있단다.


세상에. 그동안 내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한 것은 규칙과 질서가 없어서였구나.

내가 진짜 자연스러운 것과 내 맘대로 살고 싶은 것을 혼동하고 있었구나.

나에게도 규칙과 질서가 필요했던 거다. 그게 루틴인 거다.

남들이 하는 거 좋아 보여서 따라가는 루틴 말고, 진짜 내 루틴. 그게 필요한 거였다.


이걸 깨닫고 나는 요즘 플래너 작업 중이다.

나의 일상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이 모든 것을 쓸모 있는 기록으로 남겨놓기 위해 고민한다.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갈피를 잡아가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나의 루틴을 완성시키고 싶다.

오롯이 나를 위한 나만의 루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의 루틴까지.


요즘 너무 설렌다. 완성된 루틴으로 살아갈 2022년이 기대가 돼서.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늘 있을 만큼 하루가 짧고 긴장되지만,

시간에 쫓기는 내가 아닌 시간을 조율할 줄 아는 내가 되어있길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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