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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Jan 06. 2022

나보다 우리

2022년을 맞이하며

2022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우리 가족은 아침 늦게까지 푹, 아주 푹 잘 잤다.

여느 주말과 다름없는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지난밤 친정엄마가 가져다주신 새알 만두로 떡만둣국을 끓여 먹고,  따로 또 같이 집안에서만 뒹굴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사실 작년과 올해의 경계를 그 무엇으로도 실감할 수 없고, 새해가 달갑고 기쁠 정도의 감흥을 느끼지 못한지는 꽤 되었다.

그저 '아, 한 해가 또 갔구나. 새해가 밝으면 나는 서른여섯이 되는구나' 하는 정도.

'이제 날짜를 적을  2021 아닌 2022 적어야 하는구나' 하는 정도의 변화 말고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나날들.


1 1일이  하필이면 토요일이었고, 아이들이 어리고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는 핑계로.

새해인지 헌해인지 모르게. 아무렇지 않게.

종일 새해인사 메시지가 핸드폰을 울리고 티브이고 SNS 새해 이야기가 가득했지만 우리에게 2022년의 새해 첫날은 그저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었다.

그저 그렇게  의미 없이 보냈다.


? 그런데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그저 그렇게  의미 없이 보낸  나만이었던  같다.


새해가 되기 며칠 전부터 "엄마,    자면 8 돼요? 엄마,  언제부터 6살이에요?"라고 묻던 우리  꼬마들은 별것도 아닌(지극히 내 주관적 견해) 새해를 손꼽아 기다렸다.

새해 아침 눈뜨자마자 "엄마, 오늘 1월 1일이에요? 우와 그럼 나 이제 8살이에요? 그럼 무빈이는 6살이고?" 하며 떡국을 요청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아직도 귀에 웅웅 거리는 거 보면 꼬마들에게는 정말 의미 있고 기쁜 새해 첫날이 아니었을까.

새벽부터 일어나 일출이라도 보고 케이크에 2022 숫자 꽂고 초라도 불었어야 했나.

내가 너무  감정에 취해 아이들의 기쁜 날을 너무 의미 없이 보낸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갑자기 미안함이 밀려온다.


  

누군가 내게 나이가 몇인가 물으면 나는 아직도 '스물셋'이라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이 먼저 떠오르곤 했다.

내 나이를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게 아마 이때가 아니었을까.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해서  보는 이들 모두가 내 나이를 물었던, 사회초년생 티를 팍팍 내며 일하느라 내 나이를 가장 많이 실감하고 가장 큰 벽에 부딪혔던 그때.

그래서 아직도 나는 내 나이가 스물셋 같고. 나의 기억 속 나이는 스물셋에 머무르나 보다.

그 이후 나이에 대한 실감을 하지 못하고 지내다 보니 진짜 내 나이는 누군가 물어올 때마다 숫자를 세어가며 확인해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잘 기억도 안 나지만, 연말도 새해도 생일도 명절도 그날이 그날 같고 크게 반갑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어차피 한 해가 가면 또 돌아오는 거라 생각해서 그런지 정말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그래도 아이들에게만큼은 조금이라도 생기 있고 즐거운 매일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계절, 매달 이벤트 아닌 이벤트를 계획하고 실천하며 기억에 남을만한 유년시절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조금씩 쌓이며 우리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많은 것들이 나와 남편의 유년시절의 결핍을 보상해주는 것도 같고, 또 지금의 우리에게 많은 감정적, 경험적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거 같아 결국은 우리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


 어느새 나보다 '우리'가 먼저가 되어버린 일상이 자연스럽다.

작년 한 해는 정말 그동안 잊힌,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열정을 다해 살았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여전히 나는 나보다 '우리'가 먼저였다.

참 다행인 건 '나보다 너'였던 지난날보다 '나보다 우리'가 먼저인 작년이 되었다는 거.

너에겐 내가 없지만 우리 안에는 나도 너도 다 있으니까.


내가 나를 잃어버린 시간 동안 소홀히 했던 나도, 나를 찾는 시간 동안 소홀히 하게 된 너도 없이.

올 한 해는 정말 '나나 너 아닌 우리'에게 진심인 한 해를 보내고 싶다.

우리만의 속도로 우리만의 감성으로 우리만의 방법으로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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