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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람 Feb 03. 2022

책상 좀 써도 될까요?

예비초등생 공부방 만들어주기


"책상 좀 써도 될까요?"

", 깨끗이 써야 해요. 그리고 쓰고 나면 정리하세요"

요즘 딸아이와 나의 18번 대사다.


얼마 전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맞아 공부방 책상을 마련했다.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개인 책상을 마련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주변에서 하도 책상을 사줘야 한다길래 고민 끝에 외할머니 찬스로 공부방을 만들어줬다.

책상 하나 사는데도 뭐 이리 생각할 게 많은지. 몇 날 며칠을 줄자를 들고 방을 옮겨 다니며 고민했다.


책상, 침대 풀세트를 구매해 딸아이만의 방을 만들어줄까?

책상세트만 사서 공부방과 잠자는 방을 나눠줄까?

딸만 사주면 당연히 아들이 자기 것도 내놓으라고 난리가 날 텐데, 그럼 딸 아들 둘 다 사줘야 하나?

아들방 딸방 나눠서 풀세트를 사줘버릴까? 그러기엔 예산이 너무 오버되는데?

근데 잠자리 독립도 못했는데 방을 꾸며준다한들 분리가 될까?

잠자는 방, 책방으로 나눠서 둘이 지내보라고 할까?

그럼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장난감들이며 수많은 짐들은 다 어디로 보내야 하지?

종일 방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뭘 버리고 뭘 사야 할지, 지금이 과연 때가 맞을지, 어떤 걸로 사야 후회가 덜할지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남편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갑자기 단전에서부터 화가 올라 피가 끓어 넘친다. 왜 나만 고민해야 해!?


뭘 해도 백 퍼센트 만족은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최대한의 효과를 보고 싶은 나는 계속 머릿속으로만 계산기를 돌렸다.

그런데 남편이 기다리다 지쳐 직접 보고 결정하자며 가구점에 데려갔다.

사실 책상이며 의자며 브랜드까지 다 정해놓긴 했는데, 책상 크기가 계속 고민스러웠다.

어차피 사주는 거 두 개씩 사서 하나로 모아 같이 쓰다가 나중에 방 분리를 해주면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생각했던 것 달리 책상 두 개는 자리 차지를 너무 할 것 같아 포기하고 큰 책상 하나에 의자 두 개를 사게 되었다.

한 달 넘게 고민했는데?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네.

왜 나만 고민하냐고 불평할 때마다 의견을 내도 어차피 내 생각대로 할거 아니냐며 헛웃음을 짓던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뭐 나만 좋으려고 이렇게 고민하나^^

어차피 내 맘대로 할 거라도 애정 어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낄낄.


결제하기 직전, 아니 결제한 후에도 같이 쓰는 책상 말고, 작아도 자기 혼자 쓰는 책상을 갖고 싶다던 딸아이를 어르고 달래 쓰다가 불편하면 바꿔준다는 약속과 함께 공부방이 생겼다.

자기 물건에 욕심이 생긴 여덟 살의 딸은 책상이 도착함과 동시에 할머니 최고 내 책상 내 책상 노래를 부르며 책상 사용할 때는 꼭 자기 허락을 맡아야 한다고 엄포했다.

그래서 책상에 뭐하나 올려놓거나 잠시 앉더라도 딸아이의 허락을 구하게 되었다.


사실 여덟 살에게 책상에 앉아하는 공부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만, 엉덩이 붙이는 힘이라도 길러줄 겸 공부방을 만들어준 건데, 이건 뭐 장난감 가지고 와서 놀기에 더 바쁘다.

어느 날은 이불을 가져다가 텐트를 만들고, 어느 날은 약국이, 또 어느 날엔 식당이 되는 참 귀여운 멀티태스킹 책상이다.

이렇게  하나의 너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겠지.


아직은 뭘 해도 엄마가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녀석들의 등쌀에 오늘도 책상에서 종이인형놀이를 하는 딸아이에게 책상 사용 허락을 구하고 앉아 글을 쓴다.

조만간 내 책상도 하나 들여야겠다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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