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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오니

새 학기 첫 반장선거

by 김보람 Mar 16. 2025


“엄마, 나 0표 받았어… 너무 속상해.”

새 학기 학급 임원 선거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개학하면 꼭 반장 선거에 나가고 싶다며 개학 전부터 틈만 나면 후보 연설을 준비하던 딸이었다. 속상해하는 딸을 위로해야 했는데, 순간 풀이 죽은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아… 미안, 엄마도 너무 놀라서 웃음이 먼저 나왔어.”

애써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다독였다.

“저런… 속상했겠다. 그래도 반장 선거에 나간 것만으로도 엄마는 우리 오니가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해. 반장이 되면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궂은일도 도맡아야 하는데, 그걸 하기 싫어하는 친구들도 많잖아. 그런데 너는 당당하게 입후보했어. 도전한 것 자체가 정말 멋져.”

그러자 딸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근데 더 속상한 건 부반장 투표할 때 1표를 받았다는 거야. 근데 그거 내가 찍은 거야… 진짜 말도 안 돼…”

맙소사. 반장 선거에서 0표를 받았는데 부반장 선거에 또 출마하다니! 우리 오니의 적극성은 정말 대단하다. 도대체 누굴 닮은 거지?

“괜찮아, 오니야. 학기 시작한 지 이제 이틀밖에 안 됐잖아. 친구들이 오니의 장점을 아직 알아보지 못했나 봐. 원래 1학기 첫 반장은 첫인상으로 뽑히는 경우가 많거든.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너의 진짜 모습을 더 알아가게 될 거야. 남은 기간 동안 너의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 주고, 다음 반장 선거를 노려보는 건 어때?”

그러자 딸의 눈빛이 반짝였다.

“맞아, 엄마! 나 이미 다음 반장 선거에서 뭐라고 말할지까지 다 생각해 뒀어. 다음번엔 꼭 더 많은 표를 받을 거야. 2학기 반장은 학생자치회 회장단이라 전교학생회에도 참석할 수 있대. 나 진짜 꼭 2학기 반장 될 거야.”

“그래그래, 넌 할 수 있어! 엄마가 응원할게!”

와, 우리 오니! 0표의 충격에서 벌떡 일어나 금세 다음 반장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 내 딸! 기특하다, 내 딸! 엄마가 좀 웃긴 했지만, 늘 너를 응원한다는 사실은 잊지 마. 우리 가족은 언제나 너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1호 팬이란 걸.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온 가족이 모여 반장 선거에 대한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지만, 생각보다 출마한 아이들이 많았고, 자기보다 더 열심히 준비해 온 친구들이 많아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다 보니 준비했던 후보 연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고 한다. 결국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한마디로 후보 연설을 마쳤다고.

반에는 총 24명의 학생이 있었고, 그중 여학생이 13명, 남학생이 11명이었다. 그런데 반장 후보가 무려 9명이나 출마했고, 그중 8명이 여학생이었다. 출마한 아이들은 각자 자기 이름을 뽑았고, 남학생들은 대체로 남학생 후보를 뽑아 결국 8표를 받은 남학생이 반장이 되었다고 한다.

남편이 한마디 했다.

“넌 왜 너를 안 뽑았어?”

그러자 딸이 대답했다.

“나는 자기를 뽑으면 안 되는 줄 알았어. 근데 부반장 때는 자기 이름을 뽑아도 되는 줄 알고 뽑았더니, 1표 받은 거야.”

오, 역시! 0표에 상처받고 좌절하지 않고, 바로 부반장 선거에 나가 자기 이름을 뽑을 수 있는 수정보완 능력까지 기특하다. 또 실패했지만, 바로 다음 선거를 준비하겠다는 딸의 모습에서 백 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가 떠올랐다.

그동안 뭐든 하고 싶어 하는 적극적인 딸이라, 이 거친 세상에서 혹시라도 상처받지 않을까 늘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보다 더 열심히 응원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마음을 어찌 감추고 내려놓을 수 있을까.

우리 오니, 우리 오뚝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그리고 뭐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넌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내 딸이니까!

잘한다. 잘하고 있다. 잘할 것이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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