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없는 방학 확정
한 달 전부터 방학 스케줄을 짜고 있는 나란 여자. 뭔가 좀 과해 보일 수 있겠지만, 이제는 이게 그냥 내 리듬이다.
매년 똑같이 방학 일정은 한 달 전에야 공유되고, 그 일정표에는 아주 정직하게 ‘딱 한 달’만 방학이라고 적혀 있다.
여름이 고작 한 달이라고? 제주 살면서 이건 좀 아니잖아!!!
5월이면 이미 반팔 입고 돌아다니고, 6월부터는 하천이고 바다고 뭐고 다 물에 들어가 놀고, 진짜 10월 초까지는 여전히 햇살이 따갑고, 물도 따뜻해서 산이고 바다고 놀거리 천국인데!!!
그런데 그 여름을 즐기라고 겨우 한 달만 방학을 준다? 맛보기만 보여주고 풀버전은 유료라는 식이지.
정말 너무 치사하잖아!
제주의 여름이 5월부터 10월까지라 생각하면,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7월부터 9월까지가 여름방학이라 해야지. 아니, 추석까지는 방학이라 쳐야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나도 남들처럼 방학이 너무 힘들고, 특히 하루 세끼 챙겨 먹일 생각 하면 벌써부터 오금이 저릴 정도지만, 아이들이랑 이렇게 정답게 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서 이제는 한 달 전부터 움직이는 것도 당연해졌다.
이번 여름도 마찬가지.
일정표를 펼쳐놓고 하나씩 적어나가다 보니 방학은커녕 더 바쁜 스케줄이 완성되어 있었다. 왜 그런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너무 많으니까.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경험도 너무너무 많고, 가족과 함께 할 시간도,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너무너무 넘치니까.
그렇지만 모두 다 가질 순 없는 법. 그래서 방학에는 늘 방과 후 수업도 쉬고, 아이들과 놀겠다는 마음으로 일정을 잡는다.
그런데 올해는 첫째가 컴퓨터랑 한자 방과 후를 안 할 수 없다고 한다.
자격증반이라 방학에도 수업을 해야 하고, 심지어 컴퓨터는 주 5회, 오전 9시부터 학교에 가야 하는 시스템이란다.
뭐? 9시? 방학은 늦잠도 자고, 뒹굴거리기도 해야 제맛인데... 이건 뭐 학기 중보다 더 힘들다.
혹시나 해서 “그냥 쉬는 거 어때?” 슬쩍 떠봤더니 선생님이 꼭 신청하랬다며 포기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하는 딸. 응, 그렇다면… 뭐 어쩌겠어. 결국 방학 없는 방학 확정.
둘째도 8월부터 축구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는데, 새로운 FC에는 내 계획에 없던 오전 훈련까지 있어서 우리 아들은 방학 내내 축구만 하게 생겼다. 심지어 누나 따라 자기도 컴퓨터 방과후 하고 싶다며 신청했는데, 오전훈련을 하려면 이 또한 취소해야 하는 상황.
하... 뭐가 맞는 거니 정말.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하게 해주는 게 엄마인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하나하나 테트리스를 맞춰본다. 스케줄을 점검하면서, 아이들에게 “방학 동안 하고 싶은 거 세 가지씩 적어보자”라고 했더니,
딸은 요리하기, 스노클링, 한자 자격증 합격하기 아들은 바다 낚시하기, 축구장 가서 경기 관람하기, 건담 조립 완성하기
성별도 성향도 다르니까 하고 싶은 게 다른 건 너무 당연한데, 달라도 어쩜 또 이렇게 다른지^^ 그나마 바다에서 스노클링이랑 낚시는 어떻게든 하루에 묶어서 할 수 있으니, 그나마 겹치는 지점이 있어 참 다행이다.
남편과도 일정 조율하고, 함께하면 좋을 이벤트성 일정도 하나둘 넣다 보니, 이미 방학 계획표는 ‘풀’ 상태.
지금 내 머릿속엔 이 계획표에서 뭘 뺄 수 있을지, 어디에 쉬는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쉬는 것도 계획이 필요한 육아한정 J맘) 그 고민만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 방학 준비하면서 내가 꼭 하려고 한 일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집 비우기. 방학이 되면 집에 있는 시간이 확 늘어나니까 공간이 꽉 찬 느낌이면 괜히 더 답답하고 지친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묵혀두었던 책이랑 장난감, 아이들 안 입는 옷들 정리하면서 하나씩 ‘비움’을 실천 중이다. 그냥 비우는 게 아니라, 공간을 찾고 있다는 기분으로.
집에서 제일 고가의 자산은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을 치워서 생기는 빈자리라는 걸 잊지 말아야지.
두 번째는 방학 쟁여템 채우기. 삼시 세 끼 기본이고, 간식은 덤인데, 그걸 매번 고민하는 게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크다. 그래서 미리 인터넷에서 “방학 쟁여템” 검색해서 간식이랑 냉동밀키트를 주문했다. 냉장고가 든든해야 방학이 든든할 테니까.
세 번째는 엄마 체력 만들기. 여름방학은 결국 체력전이다. 비타민부터 자양강장제, 파스까지 미리 쟁여두었고, 다음 주부터는 하루 30분 자전거 타기도 시작할 예정. 잠도 최소 7시간은 자고, 한동안 귀찮아서 포기했던 십자화과 스무디도 다시 챙겨 마실 생각이다.
아이들 방학을 무사히, 즐겁게 보내기 위해 나도 나만의 루틴과 체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럼, 이제 좀 준비가 된 걸까? 방학이 시작되기도 전에 살짝 지친 기분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좋은 기억 하나라도 더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계획과 준비만이, 엄마의 짜증지수를 낮춰줄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아니까.
이번 방학은 왠지 더 재밌을 것 같은데!?
길고 긴 우리만의 방학을 잘 즐겨보자!!!
준비됐나, 라거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