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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Sep 01. 2020

서른아홉의 여행-코로나 시대의 여행(1)

서른아홉에 떠나는 여행. 마흔 전 여행이라고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것도, 별 다를 것도 없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여행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만은 확실했다. 7년째 한국에 방문하지 못한 남편이 안쓰러워 지난 겨울 영주권이 나온 직후 이번 여름엔 반드시 한국엘 방문하자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봄 사이 우리 아빠는 병상에 눕게 되셨고 전 세계는 감염병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둘 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둘 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남편은 결국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올해도 못 밟게 되었다. 아픈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국경을 넘는 건 이런저런 위험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울하게 뉴욕에 묶여 있던 우리는 격리가 필요 없는 그나마 가장 안전한 휴가지에서, 김 빠진 콜라 같은 심신을 달래보기로 했다.


계획


어차피 아이들 중심의 여행이 될 수밖에 없는(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동선이 매우 한정적이고, 갑자기 배가 고프다거나 똥이 마렵다고 주저앉는 상황이 벌어질게 뻔했다) 상황에서 나는 어디를 다녀볼까 보다 어떤 물건을 챙겨야 하는가에 더욱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지인의 집에 들러서 하룻밤 묵을 예정이었으므로 가는 길은 대충 3시간 반 만에 끊겠지만 오는 길은 사정이 다를 것이다. 태블릿부터 비상약, 긴 팔 옷, 잘 때 안고 자는 인형, 비눗방울 놀이, 마스크, 메이크업 리무버, 3M 소독제, 조미김 등을 빠짐없이 챙겼다. 그리고 어김없이 유목민의 고단함을 떠올렸다. 나는 이번에도 노마드, 노마디즘, 미니멀 같은 단어와는 좀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내 짐을 보며 남편은 “제발 좀 가볍게 가자!”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부탁으로 한국서부터 공수해온 질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이 우리 집 책장에 몇 년째 그대로 꽂혀만 있는 걸 보면 그도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나는 터질 것 같은 트렁크에 매니큐어 하나를 쑤셔 넣고 그 위에 책 한 권을 얹으며 이 정도는 더 넣어도 손해 볼 게 전혀 없다고 중얼거렸다. 짐을 내려놓기는커녕 계속 얹기만 하면서 노마드적 삶을 동경하는 인생이라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가서는 또 무얼 더 이고 지고 돌아올 것인가. 떠나 왔으므로 다 버리고 다 잊자, 제발 이제는 자유로워지자고 계획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나다.


여행에 있어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주로 애들이지만 그 외에도 장애가 되는 요인이 있다면 그건 또 바로 나다. 나의 저질체력도 문제지만 여행에 대한 확고한 나의 신념 때문이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여건만 된다면 패키지 관광여행처럼 ‘찍고만’ 오는 여행은 절대 하지 말자는 거다. 여러 곳을 찍고만 오느니 차라리 잘 찍힌 그림엽서를 보는 게 낫다. 메뚜기처럼 이리 뛰었다 저리 뛰었다 하는 여행은 생각만 해도 질색이다. 그래서 남편의 계획에 있던 국립공원 방문을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여행에 있어 계획이 틀어진대도 용납할 수 있는 여유는 우리 둘 모두에게 있었다. 우리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행에 임하기로 했다.


숙박


1. 지인의 집

서른아홉 해 동안 일구어 온 인간관계가 헛되지 않다고 느낄 때는 잊고 지낸 친구가 안부를 물어올 때나, 오랜만에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을 나눌 기회가 주어졌을 때다. 이런 관계는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서로가 자리하고 있어서 몇 달만에, 심지어 몇 년 만에 만나더라도 어제 헤어진 사이 같다. 특히 남편이 공부한 미시간 주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만나 이제는 미국 전역에 퍼져 직장 생활을 하는 우리의 지인들은(물론 미시간과 한국에도) 항상 서로가 서로의 방문을 반긴다. 플로리다, 시애틀, 위스콘신, 시카고, 보스턴, 메릴랜드, 뉴욕 등 각지에 퍼진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지역을 지날 때마다 서로를 맞아주고, 재워주고, 먹여준다.


새로이 정착한 지역에서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어엿한 직장인으로서지만 학생 시절 서로를 살피던 따뜻함 그대로 안부를 묻고 그때와는 또 다른 고민을 나눈다. 메인(Maine) 주로 가는 길, 바쁜 와중에도 그들은 우리를 위해 스케줄을 조정하고 맛난 음식과 포근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더군다나 이번에 쾌적하게 증축한 집에서, N형님이 좋은 곳으로 이직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더욱 행복했다. 남의 일에 내 일처럼 기뻐할 수 있는 것 역시 특별한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언니가 막 부친 뜨거운 해물파전을 찢어 주었다. 맛있다, 맛있다! 를 연발하며 입에 넣다가 이런 인간관계를 많이 가진 내가 ‘진짜 부자’다!라는 생각이 들어 뭉클했다. 그리고 더없이 행복했다. 전에 큰 아들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우리는 부자야?”/ “응, 그럼 부자지.”

“우리는 돈이 많아?”/ “아니, 근데 돈이 많은 것만 부자가 아니야. 마음이 부자인 것도 부자야.”

그때 막내가 끼어들어 말했다.

“엄마 우리는 식물이 많으니까 식물 부자지?”/“그럼, 우리는 예쁜 식물들이 많아서 식물 부자야.”


집에 돌아가면 새파란 식물들이 우리를 반겨줄 것이고 여기 우리의 여행길에서는 사랑하는 지인들이 두 팔 벌려 우리를 반긴다. 식물 부자, 사람 부자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호사이다.


2. 호텔


여자의 ‘감’ 이란 걸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체험을 통해 몸소 증명할 수가 있다. 가령 우리가 살 동네를 정할 때 나는 학군이나 한국 커뮤니티의 규모를 따지기보다는 ‘동네의 이름’을 본다. 몇 번이나 동네의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 이름이 상상하게 만드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살 곳을 정했고 그 결과는 거의 성공이었다. 남편은 나의 이런 태도에 그저 “너는 사이코가 확실해”라고 대응했지만 그가 틀렸다. 이것은 여자의 신비한 감이자 예민한 촉을 가진 나의 직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나의 감을 의지하여 머물 지역을 정하고 호텔을 예약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호텔은 지은 지 얼마 안돼 깨끗하고, 넓고, 게다가 예뻤다. 오죽하면 우리 큰 아들이 호텔방에 들어서지 마자 나를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을까. “오늘이야말로(요즘 즐겨 쓰는 표현) 내가 엄마 아들로 태어난 게 정말 기뻐. 엄마 아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이런 호텔에 올 수가 있었겠어?” 나는 아들의 말에 신나서 미리 준비해 간 3M 소독제로 남편과 함께 열심히 각종 손잡이와 바닥, 테이블 위를 열심히 닦았다. 코로나 전, 호텔에서 주의해야 할 게 있다면 ‘베드벅’ (bedbug)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베드벅보다 더 눈에 띄지 않는 적을 대상으로 싸워야 한다. 웃프다고 해야 할지, 서른아홉 나의 여행은 실상 시작부터 끝까지 바이러스와의 전쟁이기도 했다.  

물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호텔에 간 사실만으로도 나를 미친 엄마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고 본다. 나도 그들에게 일일이 내가 호텔에 묵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은 행복했고 그래서 나도 좋았다. 우리는 뉴욕주와 여행이 서로 허가된 지역에 머물렀고 사람을 가까이서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지냈다. 지금 같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들의 기준에서 나는 미친 여자겠지만 나 하나쯤 더 미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지 말이다.


호텔 선정이 훌륭했다면 여행의 반은 성공이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래서인지 모든 일정이 순조로웠다. 피곤한 다리를 끌고 들어와 깨끗한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편안한 침대에 누워 쉬면 다음 날엔 절로 여행에 대한 전투력이 상승했다.

호텔에서는 맘 놓고 이불킥을 할 수 있다.

전업주부에게 호텔이란 화장실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소진되는 수건을 보며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되고 이부자리 정돈에 신경이 예민해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널브러진 장난감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아도 되고 모두가 동등히 먹고 동등히 쉬는 것이다.  3월 중순 이후로 아이 둘과 삼시 세끼와의 사투를 벌인 나에게 이 정도의 보상은 사치도 아니었다.


아침에는 1층에 내려가 투고(To-Go) 박스에 포장된 아침거리를 집어와 호텔방에서 먹었다. 시리얼과 바나나, 베이글 따위었지만 아침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행복했다. 물론 이런 호텔 생활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계속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즐거움이 아니다. 수건에 뭐가 묻어있을지, 시리얼 박스와 우유 박스, 커피 컵 뚜껑에 뭐가 묻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불 안, 베갯속에 바이러스가 숨어 있다 의심하면 잠자리고 뭐고 편치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해야 할 만큼의 방역을 했고 나머지는 나의 영역이 아니라고 믿었다. 나는 어느 면에선 강박증 환자지만 위생과 건강에 있어서 또 그렇게까지 예민한 사람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2편이 이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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