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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Sep 04. 2020

서른아홉의 여행-코로나 시대의 여행(2)

여행과 낭만


 1. 도시 안의 바다


벽돌 길, 몇 백 년 된 건물들 사이로 세련된 젊은이들이 걸어 다녔다.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힙’함이 그들에게서 묻어났다. 그곳의 적당히 뜨거운 태양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처럼 포틀랜드(Portland, Maine)에는 고풍스러움과 트렌디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포틀랜드 하면 오레곤 주의 대도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오레곤의 포틀랜드는 1845년 건설된 도시로 이곳에 비하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포틀랜드 시내의 아기자기한 가게와 맛집들이 늘어선 빌딩을 조금만 벗어나면 올드포트(old port)가 나온다. Fort Allen Trail을 걷기 위해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왼쪽에는 바다가, 오른쪽에는 기찻길이 있었고 그 가운데로 길이 나 있었다. 운동복을 입고 드문드문 조깅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까 지나온 룰루레몬(lululemon)에서 요가 바지라도 하나 사 입고 올걸 그랬나, 멋 낸다고 입고 온 꽃무늬 원피스가 약간은 쪽팔렸다. 나는 운동복이 찰떡 같이 잘 어울리는 여자들이 정말 부럽다. 멋내기용 말고 진짜 운동을 하니까 운동복을 입은 여자들. 검게 그을린 피부와 약간의 근육, 아무렇게나 묶어 올린 머리가 운동복과 어우러져 당당해 보인다. 당당할 만도 한 것이 어떤 종류의 스포츠든 인내와 꾸준함,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즐길 수가 없다.


유목민으로 살고 싶지만 짐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딱 달라붙는 운동 바지와 탱크톱 입은 여자들을 동경하지만 운동은 하기 싫다. 더군다나 요즘은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뭔가를 읽으며 보내니까 하루에 천 보나 걷는지 모르겠다. 선글라스를 끼고, 오른손엔 귀여운 멍멍이 한 마리를 끌고, 운동복이 잘 어울리는 군살 없는 몸매로 멋지게 트레일을 뛰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실실 웃음이 나왔다. 오늘따라 꽃무늬 치마는 왜 이리 펄럭거리는지 나는 자꾸만 치맛단을 여미었다.  



눈부시게 펼쳐진 바닷가 앞에 한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포틀랜드에서 태어난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그의 얼굴과 시가 거기 있었다. 휴가지 바닷가에서 시인을 만나다니! 약 200년 전 그도 이 자리에서 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영감을 받아 시를 썼을 것이다.


화살과 노래


나는 공중을 향해 화살을 쏘았으나,

화살은 땅에 떨어져 간 곳이 없었다.

재빨리도 날아가는 화살의 그 자취,

누가 그 빠름을 뒤따를 수 있으랴.


나는 공중을 향해 노래를 불렀으나,

노래는 땅에 떨어져 간 곳이 없었다.

그 누가 날카롭고 강한 눈이 있어

날아가는 그 노래를 따를 것이랴.


세월이 흐른 뒤 참나무 밑동에

그 화살은 성한 채 꽂혀 있었고,

그 노래는 처음에서 끝 구절까지

친구의 가슴속에 숨어 있었다.


사실 내가 트렁크에 꾸역꾸역 챙겨 온 책 한 권은 다름 아닌 시집이었다. 막상 한 장도 읽지 못해 자책하고 있었는데. 기대치도 않게 이곳에서 시인을 만나다니,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서른아홉의 너는 어서 시를 읽고 글을 써라! 온 우주가 나를 이렇게 응원하는가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래, 화살과 노래처럼 나의 글도, 세월이 흐른 뒤 어딘가에 남아 있다면. 누군가의 가슴에 꽂혀 있다면!


주변을 찬찬히 살피며 걸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저택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사실이지만, 작가들의 로망이 포틀랜드의 그림 같은 별장에서 몇 날 며칠이고 머물며 글을 쓰는 거라고 한다. 나도, 나도, 나도, 그러면 좋겠다.   


시인의 마음으로 남은 걸음을 이어갔다. 기차 덕후인 우리 집 세 남자도 아무 불평 없이 기찻길을 따라 걸었다. 지구 끝까지도 걸으라면 걸을 남편은 그렇다 치고, 걸핏하면 안아달라 어리광을 피는 막내까지 힘든 것도 모르고 걷고 있었다. 작은 모래사장에는 비키니를 입은 예쁜 언니들이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귀여운 푸드 트럭에서 커피와 간단한 샌드위치를 팔았다.


우리도 배가 고파 레스토랑을 찾아가기로 했다. 차를 세워 놓은 곳까지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길, 꽃무늬 원피스만 뺀다면 모든 것이 흡족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 나올 요량으로 호텔로 돌아갔다. 해가 지면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짬만 나면 잠을 청하는 남편은 천장이 뚫어져라 코를 골고 있었고 지친 기색이 전혀 없는 아이들은 상어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나는 아직 여행의 흥분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잠들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로 어정쩡하게 침대에 앉아 있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는 순간에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날의 우울함을 생각한다. 바보 같은 습관인 건 나도 안다. 이건 여행을 좋아해서라기 보단 일상에서의 도피에 마침내 성공한 사람이 느끼는 아쉬움이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일상이란 감옥과도 같으니까. 월요일과 화요일은 친구네서 보냈고 오늘은 포틀랜드, 그리고 어느덧 내일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싱숭생숭했다. “하루 더 머물면 어때?” 잠에서 깬 남편에게 내가 먼저 제안했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지만 남편은 “그냥 내일 돌아가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하루 더 지내게 되더라도 포틀랜드 보다는 아카디아 국립공원을 가보고 싶은데..라고 했다. 나는 아카디아 국립공원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분명 하루 만에 돌아보기는 힘들 거라고 단정해버린 뒤 꿋꿋이 포틀랜드에서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합의를 보지 못한 상태였지만 우리는 서둘러 다운타운으로 향해야 했다. 곧 해가 질 것이기 때문이다.



뉘엿뉘엿 해는 넘어가고, 레스토랑이나 *펍(pub) 말고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좀 실망한 눈치였다. 깜깜한 여기를 뭐하러 왔느냐고 차라리 호텔방이면 재밌게 놀겠다고 내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징징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 확 다시 돌아갈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포틀랜드의 밤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서 애들 입에 주스라도 물려줘야 되겠다.


                     *퍼블릭 하우스의 줄임말로 캐주얼한 선술집


골목골목마다 예쁜 불을 밝힌 야외 식탁에서 사람들은 식사를 하거나 와인, 칵테일, 맥주 등을 마시고 있었다. 그중에는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도 있었고 낮보다 더 화려한 차림새로 젊음을 뽐내는 어린 여자들도 있었다. 배는 불렀지만 우리도 퓨전 한국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항구도시의 아름다운 밤 풍경과 그곳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징징대던 아이들도 이제는 빨대로 연신 음료수를 들이켜고 깔깔거리면서 자기네들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의자에 기대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그곳의 풍경, 아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보다 집이나 호텔에서 식사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건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바이러스가 아니었다면 굳이 야외 테이블에만 앉아있을 이유도 없다. 주변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 테이블은 빈자리 나기가 무섭게 바로 다시 채워졌다. 사람은 많아졌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호텔 여행을 감행한 사람답게. 나는 오히려 같이 둘러앉은 그들에게서 전우애를 느꼈다.


위험을 무릅쓰고 밖에서라도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저마다 동행인들과의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른 테이블의 생면부지 사람들을 서로서로 곁눈질하며, ‘그래, 다들 잘 살아있구나. 나도 이렇게 잘 살아있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의 존재 안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기도 하고 과장되게 떠들기도 하면서. ‘나도 괜찮아, 너도 잘 버티길 바라’라고. 우리는 이렇게 모여 서로를 위안하고 안도하는 중이었다.


이것은 우리 집 근처 망해가던 지중해 음식점이 야외 테라스를 차려놓고부터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갑자기 셰프가 바뀌어 요리 맛이 기가 막혀졌을 리도 없고 이런 난리에 획기적인 마케팅 전략을 도모해 사람들을 끌어들였을 리도 없다. 오히려 바이러스가 마케팅에 일등공신이었다면 몰라도. 주말 저녁에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던 식당이었다. 그러나 차양 아래 그럴듯한 식탁을 차리자 사람들은 몰려들기 시작했다. 야외서 맛대가리 없는 치킨구이를 씹으며 사람들은, 아! 미스터 벨테카스도, 미시즈 소티리우도 안 죽고 잘 살아있구나. 169가의 케니 할아버지도, 마야네도 다 건강하구나라고 동네 사람들의 안녕을 확인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안부를 묻고 사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아기가 자면서도 끊임없이 발끝으로 엄마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인간은 인간의 온기를 확인함으로써 안심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든 한정된 자유와 제도 안에서라도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살아야 한다.


깊어가는 밤. 아이들을 재우지 않아도 된다면 더 오래, 별빛 같은 사람들의 눈빛과 미소, 손짓을 훔쳐봤겠지만 이제 그만 일어나야 했다. 내일의 일정은 아직 정하지도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3편이 이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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