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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Sep 15. 2020

서른아홉의 여행-코로나 시대의 여행(4)

뜨겁게, 뜨겁게 안녕


1. 그 남자


그날 저녁 트랜튼(Trenton)의 정취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레스토랑 밖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만 바라보아도 밀려오는 감상과 슬픔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마지막 밤이었다.


랍스터를 먹기 위해 줄을 섰다. 나는 참을성 없는 성미를 지녔지만 그날 저녁은 모든 것을 참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남편은 밖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나는 실내에서 줄을 섰다. 줄 서 기다리는 동안  어쩐지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순간이 아쉬웠다.


살아 있는 랍스터를 사 가는 것과, 살아 있는 랍스터를 죽여서 먹고 가는 것에는 가격 차이가 있었다. 주문의 순서는 이랬다. 자기 차례가 오면 직접 랍스터를 고르고 무게에 따라 책정된 가격을 확인한다. 금액이 적힌 주문서를 받는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추가 주문을 한 뒤 계산대에서 대금을 치르면 끝. 집게발이 고무줄로 묶인 랍스터들이 커다란 아이스박스 같은 곳에서 불편한 몸을 꿈틀대고 있었다.


내 차례가 다가왔다. 까만 피부에 까만 장화를 신은 젊은 남자가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사실 그를 레스토랑 밖에서부터 보아 알고 있었다. 아까 밖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는 다름 아닌 장작불에 랍스터를 찔 때 발생한 것이었다. 레스토랑 안에서 손님들이 살아있는 랍스터를 고르면 바깥으로 가져와 장작불에 넣어 죽이는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나는 그를 뚫어지게 관찰했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젊은 남자를 이유 없이 훔쳐볼 정도로 변태적인 취미를 가진 건 아니다. 외간 남자에게 쉽게 흑심을 품는 실없는 여자는 더더욱 아니고. 그저 그가 움직일 때마다 만들어내는 그 고유하고도 예술적인 몸짓을 관찰할 뿐이었다. 노동이 어지간히 몸에 밴 사람들의 몸놀림은 예술적이고도 순결하다.


내가 자주 가는 뉴욕의 베이글 집. 거기서도 같은 걸 보았다. 이른 새벽 시간에도 베이글 집의 남자에게서는 피곤한 기색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몸짓, 춤을 추듯 빠른 스텝으로 베이글을 토스트 하고, 크림치즈를 바르고, 봉투에 담는 남자의 모습을 나는 홀린 듯 바라보곤 했다.


내가 살아있는 랍스터 네 마리를 고르자 주인아저씨는 무게를 쟀고, 가격이 어떠냐고 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젊은 남자가 나를 흠칫 바라보았다. 그리곤 지체 없이 낡고 굵은 그물 망태에 내가 고른 랍스터를 한 마리씩 넣기 시작했다. 랍스터를 하나씩 들어 올릴 때마다 그의 거칠고 그을린 손에는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는 쉴 새 없이 레스토랑 안팎을 오가며 벽돌로 만든 찜기의 뜨거운 나무 뚜껑을 열어 망태를 던져 넣었다. 적당히 익었을 때 꺼내려면 절대 방심해서는 안될 것이다. 불이 약해지면 장작을 추가로 넣을 것이다. 어쩌면 거기 쌓여 있는 장작은 그가 손수 팬 건지도 모른다.


미 북동쪽 구석, 사람도 많이 살지 않는 메인 주(Maine). 남자는 거기서도 시골 마을인 트랜튼 사람이다. 추운 겨울에는 그나마 있던 관광객도 발길을 끊는, 국립공원 입구의 허름한 식당이 그의 일터이다. 남자의 하루는 권태로워 보이지도, 그다지 빡빡해 보이지도 않았다. 이곳 사람들의 노동은 어쩐지 신성해 보였다. 착취가 아니라. 은밀히 그를 훔쳐보며 나는 혼자서 그의 노동을 그런 것으로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도시의 삶에 넌더리가 나서인지, 여행 중의 지나친 감성 때문인 건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때론 이성과 현실과 상황을 마비시키는 것이 여행인지라 그 밤, 모든 것이 '낭만'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진 건지도 모르겠다.


해가 완전히 넘어갔는데도 트랜튼의 하늘은 오히려 푸른빛이었다. 찜통에 랍스터를 던져 넣고 죽기를 기다리는 사이 그 남자는 푸른 밤하늘을 몇 번이나 올려다볼까. 밤하늘의 별을 헤고, 또 헤지 않을까. 랍스터의 삶과 죽음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목도하며 생의 의미에 대해 철저히 철학하지 않을까. 그런 그가 부러운 나는 진정 잘못된 걸까. 노동하는 그를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 기쁨이자 슬픔이었다.  


내일이면 현실로 돌아가야 할 서른아홉의 애처로운 도시 여자는 비린내가 나는 천막 안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2.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맛있는 랍스터 해부  

작은 스피커에서 내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렸다. 보스턴에서 이미 랍스터 맛을 알게 된 아이들은 음식이 나오기만을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고 남자가 막 건져 올린 망태 안의 랍스터는 그을린 트레이 위로 옮겨졌다.


랍스터의 맛은 환상이었다. 보스턴 로이 무어(Roy Moore)의 랍스터가 짭짤하고 잘 익은 맛이라면 여기의 랍스터는 덜 짰고 탱탱한 식감이 살아있었다. 먹어 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랍스터 해부는 추잡하기 그지없는 작업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스스로 해부할 능력이 없으니 그것까지 도와야 했다. 사방으로 물과 육즙이 튀었다. 레스토랑에서 제공해준 앞치마를 두르고 우악스럽게 살을 발라냈다.

보스톤 로이 무어 랍스터

얼마 전 랍스터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랍스터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요리할 때는 산 채로 펄펄 끓는 물에 넣기보다는 전기충격기 같은 걸로 기절시킨 다음에 넣는 게 동물권(動物權)을 고려하는 처사라는,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일찍이 스위스는 살아있는 랍스터를 끓는 물에 넣는 셰프들을 처벌하였다. 바야흐로 인류의 진보는 갑각류의 하나인 랍스터의 안락사 문제에도 두 발 벗고 나서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걸 보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것 같은데 정작 인간인 우리의 처지는 오늘날,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나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집게발도 맛있었지만 살이 꽉 찬 꼬리의 쫄깃함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머리 쪽은 먹을게 거의 없어 그냥 버린 적도 있는데 사이사이 숨어있는 고소한 살점의 맛을 본 뒤로는 내버리지 않는다.


정신없이 다 먹고 나서야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진 랍스터의 잔해 더미를 발견했다. 죽을 때만 불쌍한 게 아니라 죽고 나서도 발기발기 찢기는 운명. 정말이지 눈물겨운 희생이었다. 이런 랍스터를 위해서라도 뉴욕에 돌아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때는 몰랐지만 손이고 뭐고 비린내가 스며들어 있었다. 우리는 신속히 잔해들을 치우고 비누로 손을 박박 씻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몸에 밴 랍스터의 비릿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게 고맙기도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남자에게 작별을 고했다. 랍스터가 익어가며 피어오르는 뜨거운 연기가 우리를 따라왔다.

3. 안녕, 서른아홉의 여름이여




아침 일찍 뱅거를 출발해 점심쯤 포틀랜드에 도착했다. 무사히 카드를 되찾았다. 예상치 못한 포틀랜드의 재방문은 떠나야 하는 이의 발길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점심은 지난번부터 찍어둔 <mami>라는 일본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먹는 일본음식이 맛있어봐야 얼마나 맛있겠냐고? <mami>의 음식은 정말로 다 맛있었다. 치킨 가라아게, 오코노미야키, 타코야키, 야키소바 모두!

알고 보니 포틀랜드에는 굉장한 맛집들이 많기로 유명하단다. 거기를 다 섭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매년 이곳으로 휴가를 와야겠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건너편으로 역사가 오래된 듯한 건물이 보였다. 1902년에 지어졌으니 120년이 다 된 건물이다. 1층은 식당이었고 2층과 3층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아파트에 살면서 온종일, 길가로 난 창 밖을 구경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보면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바르셀로나를 빼고는 이렇게 나를 설레게 한 여행지도 없었다.


서른아홉의 여름은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매정하게. 슬프고도 아름답게. 별 기대도 없이, 단지 바이러스의 지긋지긋함에서 해방되기 위해 시작한 여행이었다. 걱정했던 숙소는 아늑하고 편안했고, 기대없이 찾아온 여행지는 지친 도시인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충만함으로 가득했다.  


나는 리알토의 ‘summer is over’을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






여행지에서는 한 장도 못 읽은 시집을 여행가방을 정리하며 펼쳐보았다. 마침 나를 위로하는 시가 거기 있었다.


파도의 말

                              이해인

울고 싶어도

못 우는 너를 위해

내가 대신 울어줄게


오랜 나날

네가 그토록

사랑하고 사랑받은

모든 기억들

행복했던 순간들


푸르게 푸르게

내가 대신 노래해줄게


일상이 메마르고

무디어질 땐

새로움의 포말로

무작정 달려올게



아카디아의 샌드비치(sand beach)를 떠올리며, 달려와줄 파도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작별을 고해야겠다. 서른아홉, 그 불안했던 여름과 여행과 나에게.


안녕.

뜨겁게, 뜨겁게 안녕.


(feat. 뜨거운 안녕/toy)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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