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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Oct 17. 2020

노화-나는 오늘도 조금씩 늙어간다

얼마 전부터 급격히 늙어가는 육체를 인지하고 있다. 나의 몸은 25세 이후부터 시나브로 노화하고 있었겠지만 서른 중반까지만 해도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별로 없었다.


처음 가슴이 철렁했던 것은 눈밑 주름 때문이었다. 잔주름이 아니라 커다란 주름이 눈밑을 깊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서서히 골을 파고 있었을 텐데 내 눈에 띈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다.  


눈밑 주름만 그런가, 팔자 주름, 이마 주름, 목주름, 심지어 가슴팍에까지 주름이 생겼다.

어린 시절, 가뭄처럼 쩍쩍 갈라진 노할머니의 주름을 보고 경악했던 날이 떠오른다. 할머니의 주름은 깊을 뿐만 아니라 문신처럼 온몸을 무섭게 휘감고 있었다. 나는 아직 어린이로서, 탱탱하고 재생능력이 말도 못 하게 좋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국에는 모든 인간이 저러한 형상이 될 거란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할머니라는 존재를 아예 사람이 아니라 코끼리나 낙타와 같이, 나와는 전혀 다른 종(種)으로 여겼던 것도 같다.


어린이가 생로병사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웃기지만 자기랑 어떠한 관련도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곤란하지 않나. 그때 누군가 나에게 저것은 코끼리나 낙타의 운명이 아니라 바로 ‘너의 미래’라고 얘기해줬다면 할머니의 주름을 조금 더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텐데 말이다.


밀려오는 당혹스러움을 애써 감추며 거울 앞에 선다. 아이 둘을 출산한 몸은 어딘가 모르게 기우뚱하다. 넓어진 골반, 모유 수유 때문에 늘어진 가슴. 한 손으로는 도저히 잡히지 않던 풍성한 머리카락도 절반으로 줄었다. 그나마 그 절반의 일부는 하얗게 새고 있다! 마흔도 안 된 내 나이를 중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어르신들이 보면 새파랗게 젊은 게 나이 타령이냐고 나무라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어려 보이기 위해 암만 발버둥 쳐봐야 소용이 없다.


중력의 힘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늘어지기 시작한 나의 거죽을 바라보면서 서글프다. 슬프다는 감정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걸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동료가 나에게 물었다.

“애기들은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운데, 할머니는 왜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늙어가는 줄 알아?”

“모르겠는데. 왜인데?”

“애기는 앞으로 살 날이 많기 때문이야. 귀여워야 다 자랄 때까지 누군가가 돌봐줄 거 아냐. 노인들은 그렇지 않아. 갈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쭈글쭈글한 노인의 얼굴을 보면서 떠날 때가 되었구나, 아쉽지 않게. 어린 아기처럼 탱탱하고 귀엽다면 어떻게 쉽게 저 세상으로 보내줄 수가 있겠어.”


당연한 얘기인 것 같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늙는 게 슬픈 건 보잘것없는 몰골이 된다는 것과 그것은 곧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흙에서 왔으니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게, 비주얼에서 아무런 매력도 느낄 수 없는 흙덩어리로 변모해가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제삼자들이야 노인의 볼품없고 쭈글한 몸을 바라보고서 응당 갈 때가 됐다며 보낼 준비를 한대도 정작 노인들 자신은 그만큼의 대비가 되어 있는 건지 의문스럽다. 어르신들이 종종 내뱉는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에는 과연 몇 퍼센트의 진심이 녹아있는 것일까.


주름도 주름이지만, 제기능을 못하는 몸뚱이도 걱정스럽다. 건강을 위해서 가려 먹고, ‘일부러’ 운동해야 할 나이가 왔다. 마흔은, 건강 유지를 위해 노력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운명이 극명히 갈라지기 시작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서른 초반만 해도 음식 가지고 유난 떠는 사람들을 꼴불견이라 여겼다. 먹고 죽고 말지. 오염된 먹거리를 만든 것이 인간인 만큼 자기들만 좋은 것 먹으려는 게 못마땅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어리석었다.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고 건강 관련 책을 이것저것 찾아 읽으면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내 몸을 구성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나쁜 음식은 우리의 면역체계를 망가뜨리기도 하고 뇌에 치명상을 입히기도 한단다. 굳이 몸에 안좋은 음식을 찾아먹어 가며 명을 단축시킬 필요는 전혀 없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는 지났다. 오늘도 친구와 역류성 식도염 얘기를 했다. 나이 먹으니까 소화가 잘 안되지 않니? 목구멍이 타는 듯한 증상이 종종 나타나고 먹고 나서 바로 누웠다가는 무조건 탈이 나고? 맞아, 맞아.

건강유지를 위해 ‘노력’이 필요한 나이. 영양제를 한 줌씩 털어 넣어야 할 나이. 신진대사가 활발치 못해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나이다.



사십대에 접어들어 나타나기 시작한 내 몸의 변화. 그것을 인지할 뿐 아니라 인정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다짐한다. 70대에 60대의 내 모습을 그리워하고, 60대에 50대의 나를 그리워한다면 그것은 늙어진 몸뚱이보다 더 슬프고 비참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20대를 그리워하기보다 50대에 그리워할 나의 40대를 기쁘게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가 될 것이다.


다시 거울 앞에 선다. 서른아홉의 나와 마주한다. 슬퍼하지 않고 사랑할 것이다. 내 주름과 뱃살을, 탈모를, 푹 패인 눈가와 기미까지 말이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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