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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Jan 26. 2021

좋아하는 거, 더 이상 미루지 마세요.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은 내게 전율이다. 음악을 생각하면 요의가 느껴져 자꾸만 사타구니에 힘을 주게 된다. 남자랑 처음 손 잡았을 때 같은 찌릿함도 느껴진다. 음악을 연주할 때나 들을 때면 닭살이 돋기도 하고 가슴 한쪽이 저릿하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사랑하는 남편은, 나보다 더욱 음악을 사랑한다. 그에게 음악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음악이 그고 그가 음악 이므로 다른 수식어는 필요가 없다.


나는 열 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다. 바이올린은 줄곧 나의 위로였다. 친구였고 무기였다. 음악을 더 알게 해 준 고마운 도구다. 그러나 실력으로 치면 볼 것도 없이 아마추어이다. 아마추어가 프로를 만나 프로의 연주를 들으며 사니 남 부러울 게 없다. 동전을 넣으면 음료수가 나오는 자판기처럼 남편의 귀로 들어간 음악은 피아노 선율이 되어 흘러나온다. 나는 옆에서 그의 옆구리를 찔러 무엇이든 연주해 달라고 조르기만 하면 된다.


우리에게 음악은 그런 것이다. 그런 우리가 음악을 별로 안 하고 사는 것은 그래서 애통한 일이다. 남편은 돈 버느라, 나는 밥 짓고 애 키우느라 그렇게 됐다. 핑계인 것 같아 좀 우습지만 세상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게끔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길거리 악사의 자유로움이 부럽다. 진짜 길거리 악사가 되려면 일단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평생 쓰고도 남을 만한 재산이 있거나 정반대, 그러니까 음악만 먹어도 배부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길바닥에서 음악을 한다면 대게 후자에 속할 것이다. 청중 손에 들린 핸드백에 시선이 꽂히거나 추운 겨울 따뜻한 라테 한 잔에 동공이 흔들리면 곤란하다.


나는 자주 흔들려서 음악만 하고 살지는 못하는 거다. 먹고 싶은 건 먹어야 하고 갖고 싶은 것을 다 포기하며 살긴 싫으니까, 음악 대신 안일한 일상을 선택한다. 남편은 어떨까. 가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는 그를 본다. 춤추는 건 쥐약인 그가, 어쩔 수 없이 그 사이에서 춤같지 않은 춤을 춘다. 스텝은 자주 꼬이고 그걸 보고 있자니 참 안타깝다.


한쪽 구석에서 썩어가는 악기를 모처럼 꺼내보았다. 튜닝을 하니까 뒤죽박죽 하던 삶까지 조율되는 기분이 든다. 남편은 그랜드 피아노를 사고 싶었겠지만 그랜드 피아노 기능이 있는 전자 피아노를 친다. 그래도 그걸 가지고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멋들어지게 연주하니까 괜찮다. 이렇게 좋아하는 음악. 우리 둘이라도 종종, 뭐라도 함께 연주하며 지내면 좋았을 텐데 왜 그러지를 못했을까.  


미루고 사는 게 습관처럼 돼 버린 세상이다. 먹고사는 게 해결되지 않으니까 요즘 젊은이들은 더 많은 것을 미루며 살고 있다 들었다. 미루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는 세대이다. 연애, 결혼, 출산 심지어는 취업과 건강, 인간관계까지 포기하고 산다는 ‘N포 세대’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포기하는 거니까 비참하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깝지만 내 앞가림도 못하는 내가 딱히 해줄 말도 없다.


이어령 선생은 말했다.


쓰러져 죽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라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삶으로 가라, 내 삶은 내 것이므로 남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젊은이들의 가장 큰 실수는 나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 그러니까 내일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이 순간의 현실을 잡아요. 지금 젊음을 열심히 살아야 늙을 줄도 알고, 열심히 늙음을 살아야 죽음의 의미도 안다는 거죠. 나 자신이 그렇게 살았어요.”


이건 '시대의 지성' 입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지만 나보다 세상을 많이 산 늙은이의 입에서 나온 증언이기도 하다. 그렇다. '젊음’과 ‘안일’은 결코 융화할 수 없는 단어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좋아하는 걸 위해 생업을 버리라!’ 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돈 안 드는 취미라면 더더욱, 시간을 쪼개서라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면 좋겠다.


지금까지 살아본 결과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아도 되는 세상은 절대 올 것 같지가 않다. 나와 남편이 음악만 하며 살 수 없었듯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안 바뀌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으니까 나는 오늘 내가 뛰고 싶은 방향으로 뛴다. 그러므로 시간을 내서, 미루지 않고 음악을 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나의 사랑하는 음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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