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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Apr 29. 2021

파리

자려고 누웠다가 파리 생각이 나 뒤척인다. 파리가 들어왔길래 창문을 열었다. 내보내 주려던 거였다. 갑작스레 탈출의 기회가 생기자 우왕좌왕한 파리는 오히려 옆쪽으로 날아 방충망과 창문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갇혔네.’

재빨리 창문을 잠그는 동시에 ‘잘됐다’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게 스스로도 너무 사악해서 고개를 내젓는다. 도로 놔주지는 않는다.


빨래를 개면서도 찝찝한 마음이었다. 놓아줄까. 죽여버릴까. 그러다 파리 입장에서도 갇히는 편이 하드커버 백과사전 같은 걸로 세게 맞아 죽는 것보단 낫겠지 생각한다. 아니다. 나처럼 폐쇄공포증, 공황장애가 있는 파리일지도 모르잖아. 내가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처럼 차라리 머리가 깨져 죽는 게 낫겠다 여길지도 몰라. 그렇다면 전기충격이 나을까? 그게 더 인도적인 방법이긴 하겠다. 어차피 죽을 목숨 숨이 완전히 끊길 때까지의 고통의 시간은 좀 줄여주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전기충격기에 맞는 배터리가 없는걸.


내가 구해주지 않는 이상 파리는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다. 방충망이 열리면 자연이고, 창문 안쪽이 열리면 우리 집 부엌이다. 양쪽이 다 선하게 보이는데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다니, 파리는 지금 초조하다. 좁은 방충망 구멍 사이에 몸을 쑤셔 넣으려는 시도도, 창문에 거듭 헤딩을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파리는 무지무지 괴롭게 죽어간다. 내일이나 모레, 파리의 사체는 하늘을 향한 체 창틀에 널브러져 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다시 놓아주지 않는다!


인간이란 참으로 잔인하지 않은가. 잔인하고 우악스럽고 위대하다. 사실 이건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건데(인간은 어쩌자고 이런 잔인하고 우악스럽고 위대한 기계를 발명했을까) 오늘 파리를 죽이면서 비슷한 감정이다. 아니 어쩌면 잔인함은 위대함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구역질이 났다. 그리고 막막하기도. 인간이 아무리 위대하다 한들 신은 아니다. 신과 같이 선하지도 않다.


  수도 없는  알려고  봤자 소용이 없는데, 방충망에 몸을 쑤셔 넣어도, 창문에 헤딩을 해봐도 어차피 나는 나를 구원할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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