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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Nov 30. 2021

나의 모든 시원찮은 물건들과 고등어와

사실 지금 졸라 피곤한데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근데 그런 마음을 이기고 쓴다. 땡스기빙 연휴 내내 집에서 손님을 치르었다. 주말에도 바빴다. 오전에는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세탁소에 들른 것 말고는 좀 쉬었지만 오후부터 또 열일을 하였다. 무려 낙엽을 치웠다. 집 앞을 잔뜩 덮은 낙엽을 남편도 나도 연휴 내 도저히 치울 시간이 없었다. 내일 청소차가 와서 낙엽을 가져갈 것이므로 오늘은 무조건 한쪽으로 쌓아 두어야 했다. 오래간만에 힘들게 몸을 썼다. 더 힘들었던 이유는 도구가 따라주지를 않아서였다. 바람으로 낙엽을 날려서 치우는 기계를 Blower라고 하는데 우리 집에 있는 블로워가 영 시원치가 않았다. 시원치 않은 기계를 들여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없는 것보단 낫지만 있어도 딱히 가려운 데를 속 시원히 긁어줄 수 없다는 걸. 좋은 걸 시원하게 지를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누구나 그렇게 시원하게 인생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시원치 않은 물건들이 우리 집 안에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지려고 했다.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우울해지도록 내버려  것인가 그것은 각자의 책임이다. 나는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달랬다. 낙엽을 치우는 쿨한 여자. 나는 혼자서 렇게 나를 추켜 세웠다. 멋지다, 멋져! 남편을 의지하지 고도   있는 일이 많다! 한껏 나를 칭찬해주고 나서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저녁밥을 했다. 정말 졸라 피곤했지만 꿋꿋이 콩나물국을 끓였다. 며칠 전에 사둔 콩나물은 오늘 쓰지 않으면 시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콩나물 국을 끓이며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있다는 고등어(루시드폴, 고등어) 구웠다. 가사에는 ‘나를 고를 때면  눈을 바라봐줘요라고 했는데 아쉽게도 대가리가 잘린 냉동 고등어였다.


저녁밥을 대충 준비해두고 나니 남편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두 대의 차를 굴려도 되지만 우리는 한 대만 굴린다. 그냥 내가 가도 되니까. 튼실한 몸뚱이 두어서 뭐하나 낙엽도 치우고 남편도 픽업하고 그러면 된다.


샤워를 하고 나니 급피곤이 몰려왔다. 모레는 스티브의 생일이다. 아마존에서 생일 선물을 고르게 해 주었다. 스티브는 매우 흡족해하며 몇십 불짜리 몇 개를 장바구니로 열심히 날랐다. 생각한 금액을 초과하였길래 책을 두 권 빼라고 했다. 아들이 순순히, “너무 많아, 빼도 돼, 빼도 돼”하고 두 번이나 말해주어 고마웠다. 아이는 감사할 줄을 알았다. 아이들은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도 방으로 들어왔다.


등판과 모가지와 어깨와 허리, 옆구리가 쑤신다.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라서 짜증나지 않는다. 나는 시나브로 늙고 있는데 어느 때보다 투지가 넘친다. 무엇보다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

고등어를 구운 김에 루시드폴의 음악을 듣는다. 음악이 있어서 행복하다. 어제는 투자를 위해 경매에서 구매한 뒤 새로 싹 고친 나의 올드 바이올린 2호를 켜보았다. 적어도 이생에선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소리가 났다. 천국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악기 소리가 좋아서 주제에도 안 맞는 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되는 데만이라도 드문드문 연주해 보았다. 시원찮은 악기만 써 봤어서 그런가 정말 소장 욕심이 날 정도로 좋다고 여겨졌다. 세상에는 몇 천만원짜리 악기를 시장에서 고등어 고르듯 고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엄마가 쥐여준 고가의 악기로 억지로 바이올린을 배운 친구들은 절대로 모를 희열을 나는 어제 느꼈다. 경매에서 좋은 바이올린을 고르는 안목도, 훌륭한 바이올린 장인을 찾은 것도 다 나의 능력이다. 오로지 내 힘으로 이 올드 바이올린 제2호를 탄생시킨 것이다! 나는 멋지고 행복하게 연주하였다.


자, 그러니 이제 불평할 것이 없다. 시원찮은 나의 모든 것들은 마침내 내가 시원하게 뭔가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게 진짜 감각적으로 너무 시원하단 걸 느끼게 해 준다. 이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겠는가.


감사히 하루를 마무리한다. 게다가 글을 하나 더 써서 승리한 기분이다. (졸라) 수고 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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