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BR Mar 11. 2021

타인은 '지옥'일까, 아님 '구원'일까

이제는 드라마 제목으로 더 유명해진 '타인은 지옥이다'. 사실 출처는 프랑스 작가이자 소설가인 장 폴 샤르트르(1905~1980)가 쓴 희곡 <닫힌 방>이다. 


3명의 사람이 지옥에 가게 된다. 이들이 받은 지옥의 형벌은 창문 하나 없는 방에 갇혀있는 것. 고작 형벌이 이거냐고 다행으로 생각하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형벌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들은 닫힌 방 안에서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를 판단하고 끝없는 괴로움에 고통받는다. 거울이 없기에 자신의 모습을 볼 수도 없다. 이들이 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은 오로지 타인의 시선과 판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진짜 지옥은 '타인의 시선'이었다. 


샤르트르. 그는 '실존주의자'로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표현했다. '실존'은 현실 존재를 뜻하고 '본질'은 정해진 운명을 말한다. 매 순간이 스스로의 선택, 행동으로 창조되는 것이기에 거기에 대한 온전한 책임은 오롯이 나의 것. 그렇기에 나의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어려운 철학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여기까지. 


어제 오래된 지인들과 오랜만에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지인이 가져온 샤르트르의 <닫힌 방> 책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타인은 지옥이다에 관해 덤덤히 히 꺼내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샤르트르에 의하면 현실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사실 우리 스스로의 선택이며 거기엔 어떤 변명도, 정당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로울 수밖에 없게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안의 지옥은 타인이 있기에 존재하고, 구원도 타인만이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의 옆에 또 다른 지인이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인스타를 끊어야 돼, 그게 지옥이야. "


모두가 낄낄 거리며 부정하지 못하자 그가 덧붙인다. 타인의 시선에 비칠 모습에 집중하게 되는 수단. 그로 인해 우리는 나는 저렇게 못 살고 있는데 내가 지금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나만 뒤쳐지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하며 스스로의 지옥을 만들고 있다고.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으면 나만 보는 공간에 모아두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장소에 자신의 일상과 생각, 글, 이미지를 매개로 끝없이 나의 존재를 노출시킨다. 여기 이렇게 내가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우리의 모습은 우리의 선택들로 만들어지지. 장 폴 샤르트르



하긴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한다면 뷰티, 패션 꿀팁, 말 잘하는 법부터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법까지 그딴것이 뭐가 중요할까.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재밌는 사실은 우리는 타인과 타인의 시선을 갈구하면서도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내가 자유 존재를 가진 사람임을 인지하듯, 타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가지고 있기에 어떤 관념과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판단할지 모르기 때문.  이렇듯 우리는 <닫힌 방> 속의 세 사람처럼 끊임없이 타인을 통해 내 존재를 비춰본다. 


과연 나 스스로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모두 괜찮다며 수용해줄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