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시술이라고는 하나, 허벅지에 관을 삽입해 심장까지 밀어 넣어 약물을 투여하고, 부정맥 발작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부정맥의 원인이 되는 전기 회로를 발견하면 고주파로 지져 태워 버린다고 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 엄마의 몸에서 벌어지게 될 일이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 죽겠는데 시술을 집도할 심 교수님 일행은 그런 나를 신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거 많이들 하는 거예요. 그렇게 걱정할 일 아니에요~!"
그렇게 말해주시니 안심이긴 하다만 이 분들은 이걸 매일 봐서 그런지 영 가볍게 여기는 눈치다. 마치 찢어진 손가락을 꼬매고 붕대 몇 번 감아주는 정도의 치료처럼.
한 집에 살면서도 바보 같게도, 몰랐다. 아무리 날 낳은 엄마지만 내 몸이 아니다 보니 그게 그녀를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 왔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 증상이 약하게 찾아올때 엄마는 잠깐 하던 일을 중단시키고 심장을 부여잡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운 좋으면 몇 분 이내에 잦아들기도 했고, 심할 때면 응급실을 찾게 되기도 했다. 그런 증상이 어쩌다 한 번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매일 약한 부정맥 증상이 수시로 찾아왔었다고 한다.
나의 엄마 정숙 씨는 호리호리한 몸으로 나름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 그녀의 심장에 부정맥을 유발하는 잘못된 전깃줄이 생기게 된지는 꽤 오래됐다. 힘들어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도무지 티를 내지 않는 착한 그녀를 오랫동안 괴롭힌 지병이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을 텐데 by 프로 걱정러 L양의 코로나 검사
전극도자절제술. 심장에 관을 삽입해 혈관을 지진다는 이 시술은 무지한 나에게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괜한 수술로 엄마를 잃으면 어쩌지 하는 극단적인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엄습했다. 처음 시술 일정이 정해졌을 때, 가뜩이나 엄살 심하고 겁 많은 나는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엄마의 부정맥 증상이 그렇게까지 심한지 몰랐고, 참 무심한 딸이었다는 자책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찾아들었다.
회사에 휴가를 냈고 보호자의 신분으로 엄마를 따라나섰다. 코로나로 인해 주보호자 1인을 제외한 면회는 금지사항. 병원에 주보호자 1인으로 입원실에 상주하려면 코로나 검사 후 음성 확인을 받아야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심란한 마음으로 이름과 인적사항을 뱉어내고 코와 목 안을 훅 찌르는 코로나 검사 막대와 마주했다. 2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그 모든것이 끝났다. 콧 속으로 들어가 뇌까지 후벼 팔 것 같은 기분 나쁜 막대의 느낌보다 혹시 내가 무증상자 이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합리적 의심에 그야말로 쫄깃하게 마음을 졸였다. 기분 탓이란 참 무섭기도 하지. 괜히 머리도 뜨거운 것 같고 목도 아픈 것 같고 갑자기 온몸이 쑤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실상 내 머리의 열은 36.5도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사랑의 온도였고 미칠듯한 피로감은 제안서로 인해 연이은 야근 때문이었다.보통 코로나 검사 결과는 하루가 지나야 나오지만 주보호자는 당일 오후 5시에 결과가 나온다. 엄마의 검사실을 따라다니면서 프로 걱정러의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만약에 확진이라면? 우리 팀은? 우리 회사는? 우리 모임 사람들은 은 모두 일상생활을 중단한 채 검사소로 직행하는 건가. 내가 다 나아도 사람들이 나를 바이러스 벌레 보듯 피하진 않을까.
오후 5시. 나는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문자를 확인했다. '음성'이라는 두 글자가 마치 '구원'으로 보이는 마법. 나는 그렇게 훈장처럼 '음성' 문자를 들고 원무과로 뛰어가 보호자 팔찌를 발급받았다. 이제 온전히 엄마 걱정만 하면 된다. 와중에도 휴대폰은 바쁘게 울려댄다. 엄마 병실에 노트북을 꺼내 들고 앉아 기획 기사를 수정하고 제안서 앞단 장표를 엎치락뒤치락 바꿔보며 5분에 5초씩 현타에 휩싸였다.
엄마의 전기 회로, 딸내미의 전기 회로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구멍 뚫린 것처럼 비를 뿜어대던 하늘을 바라보며 아침 일찍 병동으로 향했다. 엄마와 긴장을 풀기 위해 병실에 달린 TV와 최대한 쓸데없는 내용의 수다에 집중했다. 링거를 꽂아 놓은 엄마 팔목이 유난히 더 가늘어 보였다.
엄마의 심장에 삽입된 관이 찍힌 엑스레이 사진을 눈 앞에 마주하게 된 건 시술이 시작된 지 한 시간만의 일이었다. 아주 간혹 부정맥이 유발되지 않는 경우 시술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최악의 경우는 실패할 수도 있고, 심정지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왜 하필 무섭게도 심장일까. 엄마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심장 속 전기회로를 내가 직접 지져버리고 싶었다.
"아주 잘 제거됐어요."
조금은 뺀질거리고 뭐든 대수롭지 않게 말해 미워 보였던 담당 교수님이, 세상 천사 같아 보였다. 수술용 파란 비닐 모자는 엔젤링 같았고 등 뒤에 잠깐 날개가 보였던 것 같기도. 긴장이 스르르 풀리며 세상 모든 것이 감사했다. 이제 다시 회사에서 벌어지는 헬파티와 같은 자잘한 걱정들이 난무한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심장의 부정맥을 유발하는 전기회로를 절단하는 시술은 있는데, 뇌 속에 불안감과 잡생각을 유발해 생활을 어지럽히는 전기회로 절단 시술은 왜 없을까. 이번 일을 지나 보내며 나는 새삼스럽게도 내가 얼마나 찌질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 다시금 맞닦뜨리게 됐다. 그렇게 매일 나의 바닥을 보며 아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쩐담 하며 보듬고 사는 것도 지겨워 죽겠다. 그런데 그런 지겨운 몸을 이끌고 다시 조금은 가벼워진 머리로 커피와 빵을 사러가는 내가 너무 어이없어 피식 웃음이 났다.
겪어보지 못했던 생소한 류의 감정들을 과연 또 겪게 될까 할 때쯤 어김없이 새로운 감정들이 찾아든다. 그럴 때마다 유튜브, 책, 갖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보고 또 보며 되뇌던 '현존'과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용' 따위는 잊어버린 채 또다시 허둥댄다.
잠깐 내 옆에서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든 엄마를 바라본다. 더 불편한 자세로 보호자 침상에 엉거주춤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도 바라본다. 그래도 잘 버텨줘서 고마워. 이렇게 내 옆에서 아직 내 엄마로 건강하게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