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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BR Sep 19. 2021

아빠 삼진 씨의정원

이 구역의 환경미화는 내가 책임 진다

이제는 하다 하다 빅 사이즈의 국화 화분과 집에서 가장 비싼 분재까지 나와있다. 장소는 다름 아닌 아파트 현관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공간. 바로 언제부턴가 우리 아빠 삼진 씨의 정원이다. 다행히 우리와 앞 집과의 현관 사이는 꽤 떨어져 있는 데다 저쪽 편 집들과는 아예 반대편이라 저런 큰 나무며 꽃 화분을 놓아두더라도 통행의 방해는 전혀 없다. 하지만 우리 층에 사는 모든 이웃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는 삼진 씨의 정원을 볼 수밖에 없다. 총 3대의 엘리베이터 오른편에 놓인 이름 모를 꽃 화분들. 우리 모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길 기다리며 찰나의 시간, 멀찌감치 놓인 그의 작은 정원을 감상한다.


첫 시작은 아주 작은 꽃 화분 세 개였다. 보이는 것과 다르게(아빠 미안 사랑해) 예쁜 꽃과 나무 가꾸기를 좋아하는 삼진 씨의 첫 환경미화였다. 우리 층 사람들이 잠시나마 예쁜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겠냐는 발상이었다. 엄마 정숙 씨는 작은 화 분 몇 개 정도는 괜찮겠다며 조용히 거들었고 막내 젬제미는 간식이나 내놓으라며 왈왈 짖어댔다. 그리고 나는 반대했다. 아파트 복도가 우리만 쓰는 공간도 아니고 다른 이들 반응이 어떨지도 모르는데 굳이...?


하지만 나의 의견은 묵살되었고 삼진 씨의 환경미화는 꿋꿋하게 진행되었다. 작은 꽃 화분 세 개의 구성은 점점 계절의 색과 삼진 씨의 기분에 따라 더욱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아 뭐지. 삼진 씨는 점점 이 공간의 아름다움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층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반가운 인사와 함께 아저씨가 조용히 물어 오셨다.


" 혹시... *호에 사시는 부부의 따님이신가요? "


나의 부모와는 이미 인사를 튼 분이심에 확실했다. 나는 가족의 평화로운 이미지를 위해 마스크 바깥의 눈으로 최대한 활짝 웃으며 그렇다 대답했다. 아저씨는 혹시 달마다 바뀌는 저 복도의 정원이 나의 부모이자 *호에 사는 부부의 작품인지 물으셨다. 나는 조심스레 나의 부친 작품이라 대답했고 아저씨는 나보다 더 크게 휘어진 눈웃음으로 말씀하셨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꽃, 볼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고. 너무 감사히 잘 보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기분이 좋으시다니 제가 더 기분이 좋네요.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들으시면 좋아하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기분 좋게 헤어지며 삼진 씨의 정원에 대해 생각했다. 그걸 보는 사람들이 있다니. 더군다나 예쁜 꽃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고 하시지 않는가. 그의 투박한 성정 속에 아주 가끔 나오는(아빠 미안) 따뜻한 진심이 통한 것이다. 그날 저녁 *호의 부부이자 나의 부모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기분 좋은 삼진 씨는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봤다 카드나...?"


"응."


"기분 좋다 카드나?"


"응."


"예쁘다 카드나?"


"그렇대도."


칭찬받아 너무도 기분 좋은 두 눈이 반달처럼 잔뜩 휘어져 있다. 그 뒤로 그의 작은 정원은 점점 더 아름답고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젠 거실에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있던 비싼 분재까지 저렇게 떡 하니 나와있다. 노란 국화는 가을의 상징인 겁니까. 저 큰 국화 화분은 대체 어디서 사 온 걸까. 양쪽 대칭을 맞추며 노오란 국화 화분을 놓고 미소 지었을 삼진 씨를 떠올리니 내 마음도 조금은 따뜻해진다. 다음 번은 무슨 꽃일까. 어떤 화분일까.


나의 아빠가 이런 소소한 행복을, 주변의 많은 이들과 주고받길 빌어 본다. 그래서 그의 눈이 잔뜩 휘어지도록 웃는 날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우리 가족의 사진 액자가 하루라도 빨리 도착해서 거실의 허전한 벽을 채우는 일이다. 오늘 아침도 모처럼 집에 있는 그의 잔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일어나 있다. 그래도 화분이 더 커지는 것은 막아야 할 텐데 무슨 수로 막지, 하고 생각하면서.



#월계동통신 #우리가족 #가족이야기 #아빠의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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