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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BR Sep 19. 2021

얼마든지 반복되어도 좋을듯한 일요일 오후

오늘의 밑줄 :: 이슬아&남궁인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으로 그녀의 세계에 입문했다. 사랑하는 이가 등 뒤에서 나를 안을 때면 나는 순식간에 한가하고 무능해진다는, 나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내가 된다는 표현력이 가능한 글에 대한 재능. 월 구독료 1만 원! 매일 뭐라도 써서 보내준다며 연재 노동자를 자청, 사상 최초 글 구독 서비스 <일간 이슬아>를 창간한 당당함과 기획력. 쓰고 또 쓰고 지쳐도 또 쓰고야 마는 근성까지. 무엇보다 쓱쓱 잘 읽히며 몰입하게 만드는 그녀의 매력적인 글에 반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몇 달 뒤 2020년 한여름 호를 시작으로 일간 이슬아의 정식 구독자가 되었다. 그 뒤로 그가 출간한 <부지런한 사랑>은 나의 글쓰기 모임 '글 요일 선데이'를 유지하는데 많은 동기 부여가 되었다. 누군가를 쓰게 만드는 일, 함께 글을 쓰는 즐거움을 맛보는 일에 대한 가치를 두 번 곱씹어 삼키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녀가 '남궁인 응급실 전문 의학의 이자 작가 선생님'과 함께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란 책으로 돌아왔다. '순두부찌개 적임과 까르보나라적인(슬아 작가 피셜)' 면모를 함께 갖춘 남궁인 선생과 '조선 힙스터(남궁인 작가 피셜') 이슬아 작가는 서로 너무너무 나도 다른 성향의 사람이었으나, 두 사람도 인정한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글쓰기'에 진심이라는 것. 너무 많이 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은 쓰고 또 쓴다. 슬아 작가는 글쓰기가 본업이라지만 생사의 길목을 넘나드는 코로나 시대 응급실 전문의 남궁인 선생의 글쓰기 사랑은 아무리 들어도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곧 우. 사. 오의 내 맘대로 독서 감상문을 올리는 걸로)


감상문에 앞서 예쁘게 와닿았던 문장들부터 먼저 공유해볼까 한다. 



어떤 월화수목금토요일을 보냈건 간에
일요일에는 늦잠을 잔 뒤
천천히 아침을 먹고선 후식과 함께
텔레비전 앞으로 가고 싶습니다.

... 중략


다 보고 나면 옆 사람도 저도
스르륵 잠이 들겠죠.
꿈에선 여러 영화가 섞일 테고요.
낮잠에서 깬 뒤엔 부은 눈으로 
서로에게 물어봅니다.
무슨 꿈 꿨냐고.

그럼 잠 냄새 폴폴 풍기며 각자 호소합니다.
방금 꾼 꿈이 얼마나 무섭고 이상했는지.
다행히 그것은 모두 꿈입니다.
저에게 <출발! 비디오 여행>은
이런 시간까지 포함된 무엇이에요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p110~111 | 

이슬아&남궁인 - 이슬아의 편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갖는 리추얼 의식. <출발! 비디오 여행>이라는 29년도 넘은 오래된 TV 프로그램이, 그녀에겐 이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엄청나게 재미있지도, 탁월하지도 않은. 그저 몹시 꾸준하고 평이하고 안정적인 즐거움을 주는 매개체. 갑자기 내 기억은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 8시 30분으로 돌아갔다. 일요 모닝의 알람과도 같았던 '디즈니 만화 동산' 10시까지 잘 수도 있는데... 그게 뭐라고 졸린 눈 비벼가며 디즈니 만화 동산이 열리는 타이틀 송을 들었다. 반은 졸았고 반은 귀여운 구피를 비롯한 디즈니 주인공들을 보았다. 그 '반은 졸고', '졸린 눈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보려다 다시 잠드는' 그 반복의 순간이 꿀맛 같았다. 마치 에어컨 바람이 추워 얇은 이불을 코끝까지 올렸는데 에어컨은 끄기 싫고 스르르 잠이 들락 말락 하는 그 찰나의 순간처럼. 그것은 행복이었다.

다시 이슬아의 출발 비디오 여행으로 돌아가서, 나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을 그 리추얼이 가져다 줄 안정감을 떠올렸다. 나 역시 눈물 나게 갖고 싶은 순간이다. 낮잠에서 깬 뒤 아직 부은 눈으로 서로에게 묻는 것. 무슨 꿈 꿨는지, 저녁은 뭘 해 먹을지. 나중엔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고 싶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서
점차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될 때
더 깊은 사랑을 느꼈다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얼마든지 반복되어도 좋을 듯한
일요일 오후마다 
그런 사랑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얼마든지 반복되어도 좋을 듯한 일요일 오후' 같은 그런 순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서 반복됨을 느낄 때 더 깊은 사랑을 느꼈다고 이야기 한 남궁 선생님의 문장 역시 너무 좋아서, 내가 슬아 작가였더라도 답장에 저 문장을 되짚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반복되면 '지겹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 텐데. 이런 디테일을 하는 두 사람이어서. 이들이 주고받는 서간문이 때론 웃기고 아슬아슬(남궁 선생님이 삐졌을까 봐)하다가도 갑자기 찡해지고 더욱 소중하게 읽히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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