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BR Sep 20. 2021

나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내가 된다

오늘의 밑줄 ::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 홀딱 반했다. 그녀는 에세이라는 말보다 수필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언어의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사람의 글이어서 나는 더 좋았다. 그녀가 나는 왜 김연아가 아니고 나인가 분해서 울었다는 2018년 3월 26일 월요일의 글을 읽고, 2021년의 나는 이슬아가 부러워 울 뻔했다.


모두들 남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본인 스스로이며, 그 누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말라고. 온갖 자기 계발서와 유튜브에서는 외친다. ' 너 자신으로 살라! ' 누가 모르나. 누가 뭐래도 내가 제일 귀하 다는걸. 하지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있지 않을까. 아 나는 왜 김태희 한예슬 박수진 아이린 김연아가 아니고 나인가. 우스갯소리라도 한 번쯤은 내가 아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꿈을 떠올려 본다. 김연아 말고도 이슬아가 써 내려간 내가 되고 싶은 남의 목록은 꽤 구체적이어서 매력적이다. 결혼 전의 탕웨이, 첨밀밀 시절의 장만옥, 데이비드 오 러셀 감독과 일하던 시절의 제니퍼 로렌스. 요조와 장강명의 유튜브 채널 '책 이게 뭐라고'에서 패널로 등장한 그녀는 말한다. 


" 저는 이 세상에서 탕웨이, 그녀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고요. 첨밀밀 시절의 장만옥이 화양연화 시절보다 볼이 더 통통해서 아름다웠고요. 러셀 감독과 일하던 시절의 제니퍼 로렌스는... (중략) 갑자기 싸다구를 날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요. "


구체적인 대사를 들으며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에 표현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녀의 '고요'체만큼은 확실하다. 그녀만의 어투가 그대로 묻어 나오는 듯한 담백하면서도 촉촉한 문장. 하지만 이렇듯 되고 싶은 것이 많은 그녀는 '하지만 나는 영영 나더라'라는 현실로 돌아오며 나에게 오늘의 문장을 남겨 주었다. 나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내가 된다.



그 사실이 지겨워 죽겠을 때가 있다.
그 사실이 지겨워 죽겠을 때가 있다.



나 역시 영영 나라는 존재일 것이라서 이슬아처럼 지독하게 탁월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을 보며 감탄하다가  결국 스스로가 싫어 눈물을 흘릴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왜 김연아가 아니고 나인가, 나는 왜 피겨를 안 타고 글을 쓸까 눈물을 방울방울 흘렸다는 귀여운 이슬아의 글을 보면서 솔직함과 포장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오늘 100퍼센트 솔직하게 살았는가. 뜬금없이 이쪽으로 의식의 흐름이 흐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매일 같이 긍정적인 글로 훈훈하게 마무리하던 나도 오늘은 대놓고 비뚤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의 나를 포장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걸 솔직함으로 보기엔 너무 어렸다. 성년의 날이 언제였는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나이를 먹고도 아이처럼 내내 심통이 나 우울해 있던 내 모습이 오늘따라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삶의 매듭 하나를 풀면 또 다른 매듭 하나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빌런급으로 빠르게 등장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번엔 꽤 큰 대형 매듭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풀지 않고 도망가고 싶다. 손도 대기 싫어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나로 살 수밖에 없다. 이걸 인정하면서 그래도 피부는 포기할 수 없지 하며 영양 크림을 바르고 림프절을 꾹꾹 눌러본다. 역시, 나는 나다. 아무리 지겨워 죽겠더라도.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내가 되는 내가 미워 죽겠더라도. 


나를 데리고 사는 법이 수월해지려면 나는 아직 더 수행이 필요할 것 같다. 지독하게 탁월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 채, 심플한데 화려하게 해 주세요를 외치는 진상 손님처럼. 오늘도 나는 계속 나로 살아간다.





#오늘의밑줄 #일간이슬아 #일간이슬아수필집 #나는지칠줄모르고계속내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심하고 곤란해하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