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BR Oct 30. 2022

나는 순식간에 한가하고 무능해진다

오늘의 밑줄 :: 이슬아 수필집 中 (이슬아 지음)

나는 순식간에 한가하고 무능해진다.



안아주는것 만으로도 나를 순식간에 한가하고 무능해지게 만들어주는 존재.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이는 이 문장이 이렇게 감미롭게 쓰일줄이야. 이게 이슬아 매직인가. 너무 신기하게 로맨틱한 느낌이라서 발견하자마자 밑줄을 그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품 속에서는 내가 뭘 얼마나 잘 하고 못하는 사람인지는 아무 상관없어지는 느낌이다. 역시 그녀는 이슬아라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느낌을 너무 잘 표현해냈다. 



걔가 내 앞을 혹은 내 뒤를 안고 있는 동안엔 
내가 뭘 얼마나 잘 하는지는 
잠시 아무 상관 없어지는 느낌이다. 
동시에 나는 내가 나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잠시나마 아득한 기억을 더듬게 만드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어 읽어 보았다. 그리고는 다른 의미로 한가하고 무능해진 기분을 느끼며 웃어 버렸다. 이 문장이 비단 사랑만의 이야기는 아닌듯 싶었다. 무언가 너무 좋아하는 대상이 있을 때, 그래서 거기에 나도 모르게 집착의 마음이 생겨버릴 때 우리 모두는 약자가 된다. 세상 모든 관계는 무자르듯 50대 50같은 스머프 마을이 아니어서 에너지를 많이 낸 쪽이 결국 스스로 그 크기를 더 키워가게 되어있다. 언뜻보면 이런 에너지를 더 받는 쪽이 갑일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런 희귀한 순간은 
남을 통해서만 
아주 가끔 가능해진다.


우리 모두는 사실 자유와 주도권을 갈망하면서도 사실 가끔은 나의 자유를 빼앗아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나는 늘 그런 모순을 자발적 구속이라고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던 아무 상관 없어지며 에고를 날려 버릴 수 있는 희귀한 순간은 이 글에서처럼 '(내가 좋아하는)남'을 통해서만 가능한 황홀한 감정이기에, 기꺼이 무능해짐을 택하면서라도 그 순간을 맛보고 싶은것이 아닐까. 문득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웨하스 의자>에 나왔던 문장이 떠오른다. '누군가를 어딘가에 가둘거라면 그 세계가 전부라고 믿게 해줘'


가끔은 바보가 되어도 좋다. 아니 나는 나 혼자만 똑똑한 천재보다 가끔은 자아가 무너지는 바보로 지내고 싶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나를 어떤 순간에 있어 한가하고 무능해지게 만들어 주세요. 나에게 그런 희귀한 순간이 되어 주세요!



#이슬아 #이슬아수필집 #오늘의밑줄 #나는순식간에한가하고무능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황금시대'는 언제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