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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BR Jul 29. 2020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좋음  

나의 루틴 선생! 무라카미 하루키

오늘만큼은 퇴근하고 쉬고자 했으나 이 책을 읽다가 결국 노트북을 펼치고 앉았다. 처음에는 그냥 휴대폰으로 몇 줄 끼적이다 올려야지 했는데 역시 작은 화면과 키패드가 아직은 답답하다. 하루키 씨는 기어이 나를 쓰게 만드는구나. 하긴, 그게 하루키 씨 글의 매력이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뭐라도 써보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러다 그냥 잠든 날이 훨씬 더 많다는 건 안 비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는 완벽한 루틴의 삶을 가진 루틴 맨으로 유명하다. 그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타임카드 찍듯 정확히 원고지 20매씩 글을 쓰고 매일 저녁 9시에 잠드는 평범하고도 비범한 일상이 유명한 이유는 그게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 어마어마한 성실함이 그를 '무라카미 하루키'로 만들었다. 나는 그런 하루키를 만든 끈기와 성실함으로 점철된 데일리 루틴이 너무 부러워서 그를 나 혼자 루틴 선생이라 부르며 동경한다. 가끔 따라 해보기도 한다. 미라클 모닝도 해보고 100배 절체조도 해봤으며 매일 글 한편씩이라도 써본다고 앉아있다 잠들기도 한다. 번번이 실패하고 또 처음이라는 듯 도전한다. 기분 좋은 자극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소설 쓰기'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항상 그 감촉을 다시 떠올립니다. 그런 기억이 의미하는 것은 내 안에 있을 터인 뭔가를 믿는 것이고, 그것이 키워낼 가능성을 꿈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감촉이 나의 내부에 아직껏 남아 있다는 것은 정말로 멋진 일입니다.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데워 큼직한 머그잔에 따르고 그 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켭니다. 그리고 '자, 이제부터 뭘 써볼까' 하고 생각을 굴립니다. 그때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했다는 경험도 (감사하게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고역으로서 소설을 쓴다는 사고방식에 나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 p.57 소설가가 된 무렵 중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

                                                                                                                                                  

'문장을 만드는 일'이라는 표현. 몇 번을 반복해 쓰고 있을 만큼 멋진 표현이다. 마치 '나는 차분히 그림을 그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냥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문장을 조합해 글을 만들어 나가는 것. 가끔 회사에서 일로서 하는 글쓰기를 하다가 표현력도 딸리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나의 루틴 선생께서는 그런 적이 없었다 라고 하시지만) 그럴 때 이 문장을 떠올리면 조금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과 즐거움!


나는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이 간결하지 못했다. 지금도 깔끔하다 말할 순 없지만 원래는 훨씬 더 복잡했다.  머릿속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생각 잡동사니들 중 무엇부터 꺼내야 하고 어떻게 세련되게 늘어놓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회사에 입사하고 홍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그 문제점을 직면하게 됐다. 단문이 주는 잘 읽히는 친절함과 깔끔한 매력! 왜 예전엔 화려한 수식어가 없는 단문을 성의 없는 글이라고만 여겼을까. 나는 요즘 문장을 학습한다는 각오로 모든 글쓰기에 임한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의외로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글쓰기 업무들도 훨씬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큼지막한 머그잔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오늘은 뭘 써볼까 고민하는 하루키를 떠올려 본다. 나 역시 그러고 싶은데 새벽엔 미친 듯이 졸리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앉아 하루키를 따라 차를 내리고 노트북을 켠다. 샛길로 안 빠지면 일단 성공! 나 역시 하루키처럼 한 번 뭘 쓰겠다고 앉으면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누가 옆에서 말하고 있어도 잘 안 들린다. 산만한 내가 뭔가에 몰입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너무 좋아해서 잘해서 그런 건 아니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그렇다. 뭔가 써내는 것이 고통이라 느껴진 적이 없었다는 루틴 선생이 부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히 여겨온 것은 (그리고 지금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붙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행운의 덕도 있어서 이렇게 소설가가 됐습니다.

... 중략

나로서는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그저 솔직히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자격을 - 마치 상처 입은 비둘기를 지켜주듯이 - 소중히 지켜나가면서 지금도 이렇게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을 일단 기뻐하고 싶습니다. 그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 p.58 소설가가 된 무렵 중                                                 



운명이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천직이라 여기진 다는 건 저런 느낌일까.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하는 신념.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부여잡았다는 자신감. 이 모든 게 운이 좋았어 라며 하늘의 덕으로 돌리는 겸손함의 미덕까지. 이 3종 세트 모두 다 탐난다. 어느 날 문득 야구장에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상처 입은 비둘기를 두 손으로 감쌌을 때, 내가 유명한 소설가로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하늘의 계시가 하늘하늘 손으로 내려와 앉았다는 그 감촉.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하나도 꾸며낸 말이 없을거라 믿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히 여겨왔고 지금도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내 일에 대한 소명 의식, 거기에서 오는 행복과 감사함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릴 거야 하던 나를 이렇게 일어나 앉게 만든 한 문장이었다.


한 2주간 일에 지쳐있었다. 번 아웃이 오기 일보 직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퇴근 후에 무기력해져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렇게 기쁘고 감사할 수 없다. 하지만 역시 나도 참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인지라 주옥같은 글들 속에서 이 문장이 뇌리에 꽂혔다.                                              




일단 기뻐하고 싶습니다.
그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입니다.



루틴 선생의 글이 매력적인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간결함 속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 있는 능력. 본능적으로 나오는 의식의 흐름 또한 숨기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으로 승화시킨다. 하지만 조잡하지 않다. 이성 적여 보이면서도 다분히 감성적이다.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문체.


글을 보면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과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그게 아무리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담아낸 소설일지라도. 아니 어쩌면 내가 아닌 척하는 소설에서 더 많이 묻어 나온다. 나는 저 한 문장에서 작가 본인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일단은 기뻐하고! 그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이야.


단순 반복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반복된 루틴을 매일매일 유지한다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독한 사람만이 쌓아갈 수 있는 능력이고 그가 강한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리스 신화 중에는 제우스를 곤란에 빠뜨린 죄로 산꼭대기를 향해 영원히 돌을 굴려야만 하는 형벌을 받았던 시시포스 신화가 있다. 저 높은 산 꼭대기 위로 짓누르듯 무거운 돌덩이를 굴려 올라가면 그 돌덩어리는 다시 까마득한 저 아래로 허무하게 굴러 떨어져 버린다. 시시포스는 처음부터 다시 그 무거운 돌을 굴려 올라가야 한다. 그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 반복한다. 죽음이라는 끝이 없기에 벗어날 길도 없는 영겁의 세월 속에서 그렇게,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 무거운 돌을 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시시포스의 태도다. 그는 신이 자신에게 내린 형벌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저 행한다. 오히려 굴복하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사람의 삶에 대한 애착에는
세상의 그 어떤 비참함보다
더 강한 무언가가 있다.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에 나오는 이 문장은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감수하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떤 찡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주어진 삶에 대한 강한 애착. 어떻게 보면 지루한 반복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삶에 대한 애착과 열망에서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재 주어진 상황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다음 일은 그다음 일이라고 여기는 것. 당장 1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될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오롯이 어떤 상태인지 느낄 수 있다. 지금 이 좋은 문장을 보며 기뻐하는 현재의 내가 진짜 '나'인 것.


모든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것만도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진리를 기억하자. 막상 어떤 상황에 닥치면 또 까먹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다시 돌아와서 또 이렇게 말하지 뭐.


" 일단 감사합니다. 그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입니다! "

오늘도 이대리는 이렇게 또 하나 배워갑니다. 그리고 내일 또 까먹겠지. 그럼 뭐 어떤가! 그다음 일은 또 그 다음일이 알아서 해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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