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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BR Oct 16. 2021

상수동, 멀미의 이유 그리고 하늘색 꿈

이대리통신 :: 꿈을 꾸기 위해 있는 힘껏 현실을 살아갑니다  

월 마다 나가는 클라이언트 월미팅이 있다. 레몬을 보기만해도, 아니 떠올리기만해도 입 안 한 가득 침이 고이는 조건반사처럼 상수동에 있는 그 클라이언트사로 가는 길을 떠올리면 조건반사처럼 '멀미'로 속이 울렁거린다. 싫어서가 아니다. 여기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약 일년 전, 처음 이 클라이언트사의 상수동 사옥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꾸물꾸물 올라오는 구토를 억누르기위해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고 있었다. 그 전날 같은 본부 직원들과 미친듯이 들이부었던 소맥때문이었다. 사실 그렇게 많이 들어간지도 몰랐었지만 그 날 택시안에서야 비로소 그 양을 가늠할 수 있었다. 전날 저녁 나는 분명 제안서를 쓰기 위한 준비를 하며 야근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우리 본부 직원들도 다 같은 상황이었을 뿐인데... 어쩌다보니 다른 본부의 회식에 불려가 합류하게 되었고, 결국 그 직원들은 다 집에가고 우리 본부 직원들만 덩그러니 남고 말았다. 한 손에 이미 만취해 떠나버린 다른 본부장님이 들려주신 법인카드를 들고서. 이들의 손에 카드가 들렸는데 그냥 집에갈리 없다. (코로나19 영업제한이 있기 전이었다) 치킨집에서 가볍게 맥주나 한잔 하고 갈까에서 시작해 모두들 뭐가 그리 신났는지 새벽 3시에 2차로 간 곰탕집에 앉아 있었다. 본부 동료들의 입담은 개콘보다 코빅보다 더 웃겼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먼저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내가 집에가면 더 웃긴 드립이 나올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수동으로 가는 나의 첫 멀미는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숙취가 동반된 멀미였다. 멀미에 숙취가 더해져 죽을것만 같았던 나는, 달리는 택시 안에서 창문을 열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곤 바람을 맞으며 세상의 온갖 청량하고 상쾌한 것들을 떠올렸다. 어제의 나레기를 욕할 여력도 없이 속절없는 시간은 흘러갔고 택시 안에서의 40여분간이 나에겐 40년처럼 묵직했다. 나와 함께 그 미팅에 동행했던 우리팀 직원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음 달도, 그 다음 달도 정말 희한하게도 이 곳에 가기 전날이면 어김없이 평소엔 없던, 하지만 너무 유혹적이어서(웃길것 같아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술자리가 생기곤 했고, 굳이 술이 아니더라도 이 미팅이 끝나고 회사까지 복귀하는 길은 어김없이 막혔다. 찔끔 가다 서고 찔끔 가다 서고 그러다 막히고... 또 막히고... 우웩.


누적되어가는 경험이 주는 조건반사는 정말 놀라웠다. 그 날 아침도 어김없이 나는 멀미가 났다. 차이가 있다면 기존 오후에 잡혔던 미팅과는 다른 오전 미팅이었다는 점. 끝나니 점심시간이었던지라 부장님과 근처의 핫플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하고 복귀했다는 점.


멀미에 가려졌던 상수동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클라이언트사의 사옥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건물이지만, 위치가 살짝 애매해서 주변에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 곳곳에 훌륭한 인테리어의 맛집들이 숨어 있었다. 그중 히트는 이 곳이었다. 


위스키 병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커피의 원두! 공간 컨셉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



유메(yume) : 꿈(夢)


일본어로 '유메', 한국어로 '꿈'이라는 이름을 가진 상수동 한복판의 힙한 카페. 평범한 카페같이 보이지만 그냥 카페가 아니다. 술과 커피가 함께하는 곳! 칵테일부터 양주 보틀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있다. 무엇보다 핑크핑크한 70~80년대의 일본의 잡지 감성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감각적인 인테리어, 그리고 가격까지 감동적이이었다. 



일본에 살았을때,
일본에는 커피와 술을 자연스럽게
함께 마실 수 있는 곳이 많았거든요.
한국에는 카페가 많지만
이런 칵테일카페는 많이 없는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차렸어요.

- 유메 사장님



감탄병. 그리고 질문병. 직업병인지 이런건 그대로 못지나치는 나. 너무 맘에드는 공간을 발견할때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아주 마음껏 감탄하고 주인장에게 묻는다. 이렇게 멋진 공간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사장님이 직접 꾸미셨나요? 이 소품들은 어디서 구하셨나요? 아마도 이 작고 핑크핑크한 보물 창고 같은 곳은 사장님의 오랜 '꿈'이었을수도.


뜬금없이 추억의 히트송. 박지윤의 '하늘색 꿈', 그 노래의 예쁜 가사가 떠올랐다.


아침햇살에 놀란 아이 눈을 보아요

파란 가을 하늘의 내 눈 속에 있어요

애처로운 듯 노는 아이들의 눈에선

거짓을 새긴 눈물은 아마 흐르지 않을거야


세상사에 시달려가듯 자꾸 흐려지는 내눈을 보면

이미 지나버린 나의 어린 시절 꿈이 생각나


(작고 깨끗하던 나의 꿈이 생각나 그때가 생각나)


난 어른이 되어도

(시간이 아무리 흘러간다해도)

하늘빛 고운 눈망울

(오-오 나의 가벼운 눈빛을)

간작하리라던 나의 꿈

(잃고 싶지 않은 나의 어린 시절)

어린 꿈이 생각나네


- 하늘색 꿈 (박지윤) 中



난 어른이 되어도 하늘빛 고운 눈망울. 간직~ 하리라던 나의 꿈. 어린 꿈이 생각나네. 휴... 망했다. 하늘빛 고운 눈망울은 물건너 간지 오래고 2021년의 가을, 그 고운 눈망울의 소녀는 상수동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의 숙취와 멀미로 고생하며 밥벌이를 하는, 기특하게 돈은 벌지만 마음은 살짝 흐려진 어른이 되었다. 나의 꿈은 뭐였드라. 내 하늘색 꿈은? 내가 그리고 싶었던 미래의 모습은? 하지만 나는 5분 뒤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해야될 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유메. 또다시 어떤 꿈을 꾸게될지 모른다. 어릴적 하늘색 꿈과는 또다른 꿈일지도 모른다. 또 뭐가 될지 모를 나의 꿈을 위해 나는 오늘도 나의 현실을 살아간다. 이것이 내 눈앞의 리얼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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