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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BR Oct 16. 2021

나의 꿀로이는 월급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이대리통신 :: 월급과 반려식물에 대한 의식의 흐름 기록 

연봉이란 무엇일까




'추석이란 무엇인가'란 칼럼으로 칼럼계의 스타로 떠올랐던 김영민 교수. 그의 글은 참 찰진 매력이 있어서 자주 글을 끄적이곤 하는 나는 그저 부럽기만하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연봉이란 무엇인가. 

그 이전에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일'이란 것이 사회에서 내가 1인분의 몫을 하며 사는 구성원임을 인정받는 티켓 같은 것이라면 연봉은 사회에서 측정한 몸값을 의미하는걸까. 조금 슬퍼진다. 감사하고도 귀여운 연봉. 우와 이번에 이만큼 올려서 이직을 했구나 해도 곧 귀엽게 느끼게되고야 마는 사람의 마음이란.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다. 만족감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가장 큰, 마지막 숫자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우주의 자원은 무한하다던데... 어떻게 하면 무럭무럭 내 몸값을 자라나게 할 수 있을까. 물론 내 능력을 탄탄히 키워 내 몸값을 높이는게 제일제일 먼저겠지. 그렇게 마음 먹은지 5분도 안지나 졸려오기 시작했다. 이래서 기적같은 스토리의 영화 주인공이 못되는 것인가. 그럼 어떠하랴. 나는 이미 내 인생의 주인공인걸? 실 없는 생각을 하던 모처럼 야근이 없는 날, 집에 돌아와보니 처음 입사할때 두 손가락만한 크기도 안될만큼 작았던 내 산세베리아 화분이 보였다. 종이컵만한 크기밖에 안되는 귀요미. 바로 나의 반려식물 '꿀로이'였다.


나의 꿀로이로 말할 것 같으면


자, 몇 안되는 나의 구독자 여러분께 오늘은 나의 반려식물 '꿀로이'를 소개시켜드리겠다.


상견례 시작!


달달한 고액연봉의 꿈을 먹고 사는 '꿀로이'



허니 산세베리아


무려 '허니'라니! 본명부터 달달해서 마음에 들었다. 국민대표 공기정화 식물로는 스투키와 쌍벽이다. 자생능력이 뛰어난 식물로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란다. (그래서 나에게 간택당한 너) 밤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방출하여 공기정화에 탁월하단다. 집안의 거실이나 침실에 두면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이 아이를 분양 받자마자 볕 안드는 사무실 내 자리에 데려 갔었다.


워낙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아이였기에 그나마 그 험난한 환경에서 잘 버텨주었다. 꽃을 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식물이란다. 아주 정성스럽게 잘 키워야 볼 수 있다는데... (영영 볼 수 없는거니) 꽃은 향기가 매우 좋고 꽃이 피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이 이야기를 지금 인터넷에서 보았다. 나는 행운이라는 말을 아주아주 좋아하므로 이런 얘길 본 이상 꽃을 피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진다. (하지만 금방 까먹는다.)


약 일년 전 쯤, 이 아이는 내가 좋아하고 따르는 자칭타칭 '식물집사' 언니가 분양해주었다. 언니네 집에 놀러갔을 때 벽면을 가득 채운 세계문학전집과 어우러진 푸릇푸릇한 식물들 때문에 나는 그만 들떠버리고 말았다. 언니는 매일같이 다양한 푸르름을 자랑하는 그 아이들이 뿌리가 다치지 않게 분갈이를 하고, 각각의 아이들의 특성에 맞춰 적절한 양의 물을 주며 그들이 가진 숭고한 생명에 대한 의지를 지켜 보았다. 그녀는 여리게 생긴 그들이 적절한 물과 햇빛만 주어지면 얼마나 강한 생명에 대한 의지를 보이며 미세하게 자라나는지, 그게 얼마나 기특하고 숭고한 과정인지, 나에게 얘기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너무 기특하지 않아? 물만 주면 이렇게 알아서 기특하게 자라. 얘 봐. 너무 예쁘게 꽃까지 피웠어. 정말 기특해! 아 너무 예쁘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는 늘 소녀같고 예뻤다. 그게 뭐라고 작은 식물 하나에 설레어 하는 모습이 환갑이 넘어도 언제나 예뻤다.


월급이란 무엇인가에서 식물의 생명력이란 무엇인가로 옮겨온 뜬금없는 의식의 흐름. 나는 다시 내 눈앞에 놓인 작은 생명을 바라 보았다. 언니의 집에서 이 아이는 언니가 옮겨놓은 아주 작은 모종 중 하나였다. 언니는 푸른 식물 화분들 중 하나 분양해 주겠다며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골라 보라고 말했다. 더 크고 무성히 잘 자라고 있는 화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는 이 작은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아기때부터 내가 키울 수 있을것 같아서였다.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돼. 물을 더 많이 주게 되면 오히려 죽을 수 있어. 언니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컵만한 귀여운 유리 화분에 이 아이를 조심스레 넣어 주었다.


나는 이 아이를 사무실 내 책상 위로 데려갔다. 한 달에 한 번이나마 물 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그 날을 월급 날로 정했다. 월급이 들어온 것을 은밀하게 확인하는 절차는 내가 꽤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사회 생활을 한지가 아무리 오래 되어도, 나는 늘 월급 명세서가 들어오는 그 날, 은행 어플에 로그인해 선명히 찍힌 월급을 행복하게 바라 보았다. 잠시 묵념. 밥벌이를 하게 해 준 모든 것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치욕의 밥벌이를 잘 견뎌준 내 자신, 고맙다. 저녁에 맛있는거 먹자. 짧은 묵념이 끝나면 이 아이에게 물을 줘야 하는데, 가끔 그것도 잊어버려 며칠 뒤에 아 맞다를 외치며 괜스레 미안한 마음을 담아 듬뿍 물을 주곤 했다. 이 아이에게도 그 물은 밥벌이를 위한 월급인 셈이었다.


나는 이 아이가 실컷 물을 먹고 남은 물을 쉬 하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며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 당시 나는 프로 뒷북러 답게 이미 다 끝난 드라마인 '이태원 클라쓰'에 빠져 있었다. 주인공 박새로이는 그 당시 나의 뉴 이상형이었다. 강인하고 줏대 있는, 그렇지만 선하디 선하며 사랑 앞에선 세상 순수한 그런... 그래, 이 아이의 이름은 '새로이'를 기반으로 하되, 허니 산세베리아니까 '허니'... '꿀'을 붙여주자. 역시 난 작명의 천재야.



'허니(꿀) + 강인하고 캐 멋진 박새(로이)' 
= 그렇게 이 아이는
'꿀로이'가 된 것이다.



꿀로이는 꿀로이가 된 뒤로 몇 달간 내 책상을 지키며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다가, 회사가 이사를 하기 직전 다시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선... 믿을 수 없게 그 몇달 간 보다 훨씬 더 쑥쑥 잘 자라고 있다. 역시 나보다는 엄마가 (훨씬)더 적절한 '물'이란 월급과 햇빛도 공급해주고 사랑과 애정(기특해 예뻐 죽겠어)도 함께 주고 있는걸로 예상된다.


그렇게 오랜만에 꿀로이를 마주하며 다시 적절한 연봉이란 얼마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올리고 싶다, 몸 값. 그러기 위해선 내 능력을 키우자...로 다시 돌아오며 내 눈앞에 쌓여 있는 책을 딱 석줄만 읽자고 나를 다독이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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