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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BR Oct 27. 2022

세상에 없는 과자, 세상에 없는 꿈

손톱 깎다가 잠이 들었지
가위바위보 너에게 이겼네
그렇게 먹은 맛있던 과자
와사비와 녹차 믹스된 소스
찍어먹었던 우리
세상에 없는 과자를 나는 먹었네
세상에 없는 너와

- 요조 '세상에 없는 과자' 中


녹차 맛이 나는 과자를 와사비 소스에 찍어 먹는다는 건 무슨 맛일까. 


홍대에서, 요조님을 두번째로 만났다. 두 번 다 일로 만났다. 내 일을 하다보면, 아아아주 가끔은 성덕이 되거나 덕업일치를 이루는 순간이 온다. 너무 애정하는 아티스트를 직접 만나 인터뷰나 촬영, 혹은 행사를 함께하는 일 말이다. 비록 손에 꼽을 정도로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돌이켜보니 제법 있다. 그중에는 예상 못했던 거만함에 더러 실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더 퐁당 빠져 팬이 되어 버리는 일도 생긴다. 


안광이란 이런 것이구나. 처음 봤을 때는 인지하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예쁜 실물과 반짝반짝함을 뿜는 눈빛에 놀랐다. 나긋나긋 배려심 있는 말투와 어떤 질문을 던졌을때 가만히 생각하는 신중한 무표정까지, 실제로 만나보니 깊이 있는 매력을 가진 아티스트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책을 달고 사는 나의 생활권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20대 초반, 인턴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의 출근송 리스트엔 언제나 Yozoh&김진표의 '좋아해'가 있었다. 그때까진 목소리와 노랫말이 참 예뻤던 뮤지션으로 인지하고 있다가 그녀가 '책방무사'라는 독립 서점을 차렸다는 소식을 듣고 스물스물 관심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갔을 때 '책방무사'에 찾아 갔다가 하필 문 닫은 날이라 아쉬워하며 유리 창 바깥에서 빼꼼히 그 안을 들여다 보던 일, 장강명 작가와 진행하던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나 그녀의 목소리로 녹음된 오디오 북을 들으며 잠들었던 기억들까지.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이 은은한 추억이 주는 강한 연결고리 때문에,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 때 괜히 더 반가운 마음이 일었더랬다. 


그리고 오늘이 고작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이젠 반가운 마음에 더해 조금 익숙해진 느낌까지 들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온 이야기였을까. 아주 웃기게도 나는 그 분 앞에서, 지금은 직장인이지만 언젠간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털어 놓고 있었다. 그것은 조용조용 대화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요조님의 재밌는 질문들과 성숙한 배려 덕분이었다. 


대화 중 우연히 '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나는 항상 수면장애를 달고 사는 사람으로서, 쉽게 잠들지도 못하고 겨우 잠이 들어도 수많은 꿈을 꾼다. 아마도 내 머릿 속엔 꿈 자판기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짧은 에피소드가 조각조각 재생되는 미니 시리즈부터 영화 한 편을 찍은 것 같은 장편의 서사까지. 모든 (개)꿈이 그러하듯 하나같이 말도 안되고 허무맹랑하고 어이가 없는 꿈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아주 가끔은 지금 적어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대박적 스토리가 펼쳐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해도 참 아련한 러브 스토리나 미스테리 공포 살인극은 정말 되새기고 되새겨서 글로 쓴 뒤에 어딘가에 팔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아무도 산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조님이 친구의 꿈을 산 이야기를 들려 주었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요조님과 나의 눈 앞에 테이블과 맥주 한 잔이 놓여지는 상상까지 하고 말았다. 허무맹랑하지만 재밌는 꿈의 진가를 아는 아름다운 '꿈 수집가' 요조님은 친구의 꿈이 너무 재밌어 그 꿈을 사서 예쁜 노래를 만들었다. 그 노래는 바로 '세상에 없는 과자'. 


누군가의 꿈에 등장한 녹차 맛의, 와사비 소스를 찍어 먹던... 세상에서 제일제일 맛있었던 그 과자는, 꿈에서 깨어보니 '세상에 없는 과자'였고, 현실 속에선 그 맛을 다시 볼 수 없어 그 누군가를 슬프게 만들었다. 


모든 꿈은 허무맹랑하지만, 그 안에서는 말이 안되는 일도 말이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꿈에서도 느껴지던 그 맛은 과연 어떤 맛이었을까. 재밌는 노랫말이지만 절묘하게도 멜로디는 어딘가 서글프다. 그 꿈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다신 맛 볼 수 없는 맛이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있으면 아침에 잘 깨지 못한다. 내가 꾸는 어이없을 정도로 디테일한 서사를 갖춘 수많은 꿈들은 아티스트가 아닌 나에게 오늘 당장 도움을 주는 일은 아니겠지만, 요조님에게 약속했다. 언젠가 진짜 재밌는 꿈을 꿔서 요조님에게 팔고 말거라고. 


그래서 난 오늘 밤 서울에 있는 '책방무사' 2호점에서 요조님의 싸인을 받아온 '오늘도, 무사'를 읽고 잠들 것이며,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꿈을 꿀 것이다. 진짜진짜 모르는 일 아닌가. 언젠가 내가 꾼 이상한 꿈이 말도 안되게 예쁜 노랫말로 쓰여질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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