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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BR Oct 30. 2022

예쁜데 못 끼는 반지

인스타그램 스폰서 광고에 낚여 어느 쥬얼리 샵을 구경했다. 보다보니 너무 예쁜 원석 반지가 있는거다. 중앙엔 천연 블루 토파즈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링을 둘러싼 채 또르르 박혀 있는 큐빅이 완벽하게 빛나고 있었다. 묵주반지 같이 생겼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0만 원 아래만 되었어도 미친척 하고 질렀을텐데 무려 19만원대다. 그냥 20만원이란 얘기다. 


나는 문득 너무 예쁘지만 매일 끼고 다닐 수 없어 결국은 모셔 놓은 나의 첫 묵주 반지를 떠올렸다. 아주 오랜만에 보석함에서 그 반지를 꺼내 왼쪽 검지에 껴본다. 너무 잘맞는다. 내 피부였으면 좋겠다, 반짝반짝 안 떨어지게. 너무 예쁜데 끼고 다닐 수 없다. 얼핏 보면 꽃이지만 십자가를 의미하며 동서남북으로 뻗어있는 큐빅 때문에 겉 옷을 입고 벗을 때, 엉킨 머리를 쓸어 넘길 때, 혹은 스타킹을 신고 벗을 때 어김없이 십자가 부분이 걸려 빠지질 않았고 옷과 스타킹은 찢어 놓기 일쑤였다. 이것도 속쓰려 죽겠는데 문제는 반가운 이들과 손을 마주치거나 스칠 때도 그들을 아프게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쥬얼리는 때론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내 의식의 흐름은 묵주반지의 모습을 닮은 블루 토파즈 반지에서 나의 첫 세례 기념 묵주반지로, 처음 스텔라가 되던 그 날로 차례차례 흘러갔다. 


파파 프란치스코


서른이 되던 해, 카톨릭 세례를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는 교회를 다녔었고 그 뒤론 대부분의 날들을 종교란 것을 잊은채 10년간 살았으니 나름 개종이라면 개종이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 5일 방한이 그 계기였다. "하느님 믿으세요"라는 말 한 마디 없이 방한 이후 한국인의 천주교 개종률을 어마어마하게 끌어올려다는 파파 프란치스코의 방한.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붉은 구두 대신 소탈한 검은 구두와 낡은 가방을 들고 만면에 웃음을 띤채 손을 흔드는 모습에 홀린 나는, 천주교 신자도 아니면서 프란스치코 교황의 웃는 얼굴이 새겨진 방한 기념 티셔츠를 가족 수만큼 주문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10계명을 접하게 되었다. 다른건 다 기억 안나는데 이거 하나 기억난다. 


타인의 종교에 관대하라 


'다른 이의 믿음을 존중하고, 개종시키려 하지 말라'는 그 문장을 듣고 머리에 띠잉 하고 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꼭 이거이거여야 해,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해, 이 길이 맞아, 이길이 옳아를 외치는 말들에 익숙해진 탓일까. '있는 그대로 두고 어떤 것이든 존중하라'는 그 가르침은 내 마음에 너무나 훈훈한 온기로 내려 앉아 버린 것이다. 아 저런게 종교라면, 내가 결국 멀어지고 말았던 가르침이 사실 저런 것이라면 한번 기대어 봐도 좋지 않을까. 그러고나서 2년 뒤, 나는 그 빡세다는 명동성당의 6개월 교리 수업을 (할아버지 제사로 못 간 거 한 번 빼고) 정근상으로 마무리하며 '별'을 뜻하는 스텔라(Stella)가 되었다. 빛을 내뿜는 의미의 별이라기보다 별이 가진 뾰족한 돌기들이 나와 닮았다 느껴왔기 때문이다. stella가 새겨진, 너무 예쁜 내 묵주반지를 감싸고 있는 작은 돌기들의 감촉을 느껴본다. 묵주기도 많이 하라고 내가 내게 기념으로 선물했던 성물인데... 미사를 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난다. 


삼천포로 빠졌던 내 의식의 흐름을 돌려돌려 다시 현실. 

예쁜데 매일 못 끼는 반지, 예쁜데 너무 꽉 껴서 못 입는 옷들을 생각한다. 반지 케이스에, 옷장 옷걸이에 고이 잠들어 있는 존재들... 나름의 빛을 내뿜으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도 수도 없이 튀어나온 뾰족한 돌기들 때문에 부드럽게 섞이지 못하는 별들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저 예쁜 블루 토파즈 반지는 포기해야겠다. 조금 더 부드러운 곡선으로 스타킹을 찢지 않을, 혹시라도 부딪힐지 모르는 여린 살들을 위협하지 않는 예쁜 반지를 다시 찾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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