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걸린 나에 대한 시선
나는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간호학과를 다니면 졸업 전 3학년과 4학년 두 해에 걸쳐 병원 실습을 하게 된다. 쌀쌀하던 4학년의 어느 가을날, 학생 간호사의 신분으로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서 실습을 했다. 그전까지 정신건강에 대한 건 교과서에서 배운 게 다였고 관심은 있었으나 나와는 관련 없는 별개의 주제라고 생각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별관에 위치해 있었고 들어가는 입구는 삼엄했다. 카드를 찍어야만 문이 열렸고 관계자 외에는 쉽게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병동에 들어서자 다양한 환자들이 눈에 보였다. 그들 중 일반 병동의 환자처럼 아파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신질환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겉모습만으로 섣부르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해야 했다. 이분들은 어쩌다 마음의 병에 걸려서 입원까지 하게 되셨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첫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간호사 선생님 뒤에 붙어 환자들의 병실을 확인하는 라운딩을 했다. 어느 1인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스님이 계셨다.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는데 애써 놀란 척을 하지 않으려고 두 눈에 힘을 주었다. 그래, 스님도 마음이 아프실 수 있지. 침착한 마음으로 마지막 병실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신부님이 계셨다. 이번에는 정말 놀라서 표정 관리가 안되었다.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할 것 같아 병실 밖으로 나갈 때까지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그날 실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서 종교인을 환자로 마주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종교인도 사람이고 사람이면 당연히 아플 수 있는 건데 나는 왜 상상하지 못했던 걸까? 외과나 내과 병동에서 스님이나 신부님을 만났다면 나는 이 정도로 놀랐을까? 도대체 그동안 내가 가졌던 정신질환에 대한 이미지는 얼마나 왜곡되고 편협한 거였을까?
그리고 정확히 6년 후, 나는 영국 런던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서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을 쉬어야 했다. 말이 쉬는 거지, 내 머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자괴감과 죄책감, 후회, 두려움 등 모든 감정들이 서로 엉키고 들러붙어 긴 터널을 만들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살고 싶지도 않았다. 터널에 갇혀 있는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서 종교인을 마주하던 어린 나의 모습이 자주 생각났다. 나는 내가 이리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분들도 모르셨겠지? 침상에 앉아 담담한 표정으로 간호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그분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그분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어리석은 나의 모습까지도. 나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국 NHS (국민보건서비스)를 통해 두 차례에 걸친 심리치료를 받았고 GP (영국 일반의), 사회복지사, 영양사, home treatment team (정신건강 의료진이 집을 매일 방문해주는 서비스)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분에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신질환에 걸릴 것을 미리 알고 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신질환은 신이 아닌 이상, 내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이다. 그래도 요즘은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지고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과 시선이 많이 좋아졌다. 텔레비전을 틀면 어렵지 않게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마주할 수 있고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은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나는 그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주변의 시선이나 가족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내려두고 마음 놓고 실컷 아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사회가 다리가 아픈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팔이 아픈 사람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것처럼, 색안경은 내려놓고 진심 어린 두 눈으로 그들을 바라봐 줄 수 있다면 세상이 참 따뜻해지지 않을까. 나는 요즘에도 그 시절 무지했던 내 자신을 타이르곤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플 수 있는 거야. 그렇다고 너무 겁먹지는 마. 나는 네가 마음 놓고 아플 수 있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