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크에서 생일 기념 에프터눈 티
뽀가 쓰는 3월 13일 Diary
아침 6시쯤 엄마에게 보이스톡이 왔다. 졸린 목소리로 받았더니, 새벽이냐며 더 자라고 하셨다.
"얌이는?"
집에 있는 고양이가 엊그제부터 계속 걱정이 되었다. 갑자기 집사가 사라졌다고 시무룩해 있지는 않을까... 너무 걱정된다.
"얌이 잘 있어! 동영상 보냈어."
아빠가 보내준 동영상을 보니 잘 지내는 모습에 조금 안심이 된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려는데 아빠가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주셨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외국에서 생일을 맞게 되다니... 정말 실감이 안 난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몰랐는데 나중에 카톡을 밑으로 내려보니, 생일 축하 메시지가 잔뜩 와 있어서 놀랐다. 다들 너무 고마워서 순간 뭉클했다. 멀리서 축하를 받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이 이상한 기분으로 오늘은...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
£1을 내고 호스텔의 조식을 먹었다. 이 금액으로 조식도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 낸 £1가 기부까지 된다고 한다. 먹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호스텔의 조식이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아침 일찍 나왔다. 그리고 아직 상점이 다 열리지 않은 'Shambles' 거리를 서성거렸다. 사진 찍으면서 놀고 있었더니 9시 반이 지나고, 상점들이 하나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어제 들어가지 못했던 예쁜 상점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근데 너무 일찍부터 돌아다녔나 보다. 다른 거리로 나와서 한참을 여러 기념품 가게를 돌아다녔는데도 아직도 오전 11시밖에 안됐다는 사실이 놀랍다.
계속 돌아다니려니 추워져서 생각보다 일찍 '베티스티 룸'의 애프터눈 티를 먹으러 갔다. 생일날 기분 내기 좋은 곳이다. 엄청 유명한 곳이라 줄 선다고 했었는데, 일찍 와서 그런지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하얗고, 우아한 분위기의 내부가 너무 예쁘고, 아래층까지 좌석이 많은 꽤 넓은 카페였다. 디저트로 채워진 3단 트레이가 2개나 나와서 란이랑 나는 둘 다 놀랐다! 양이 엄청 많아 보였다...
분명 배가 안 고팠었는데 막상 오니 배가 고파져서 점심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3단 트레이에 올려진 디저트, 스콘, 샌드위치도 맛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홍차, 우유, 설탕을 따로 넣어 만들어 먹은 밀크티가 너무 맛있었다. 적당히 달콤하고, 향이 좋은 밀크티와 디저트가 잘 어울려서 환상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밥 다 먹은 후에 즐기는 티타임일 텐데, 이렇게 즐기면 살 많이 찔 것 같다. 그리고 오래오래 이야기하면서 먹어야 하는데... 우린 단숨에 해치워버렸다. 멈출 수가 없는 맛이다.
맛있게 먹고, ‘요크 민스터 대성당’에 들어갔다.
여기를 안 보면, 요크에 왔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우리는 입장권과 함께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는 타워 입장권까지 구입했다. 정해진 시간에 타워를 올라가야 해서 들어가자마자 타워 입구에 줄을 섰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해서 시간이 정해진 것 같다.
소수로 줄지어 계단을 올라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숨차 하는 소리가 들렸다. 275개의 계단 끝까지 올라가는데 별로 힘들지 않아서 체력이 좀 키워진 느낌이다. 아마 유럽 여행하면서 성당 안에 있는 이런 좁은 계단을 올라갈 일이 많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중간에 전망대가 있었는데 확 트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더 있고 싶었지만,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제일 위가 멋있을 것 같아서 따라서 계속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했다. 떨어지지 말라고 해놓은 안전망이 하늘까지 덮여있어서 많이 아쉬웠다. 위험한 곳이라 모두 철창처럼 덮어놓은 것 같다. 마치 새장 안에 갇힌 것만 같았다. 한 바퀴를 빠르게 돌고, 중간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바로 내려왔다.
내려오는데 너무 좁고 빙글빙글 도는 계단이라 어지러웠다. 옛날 사람들은 이 길을 어떻게 다닌 걸까..
요크 민스터까지 봤는데도 아직 2시였다.
‘앞으로 뭐하지.’ 하다가 너무 추워서 코트를 하나 사려고 쇼핑을 시작했다. 이곳저곳 열심히 구경하다가 너무 예쁜 옷가게를 발견했는데 비싼 곳이었다. '입어만 보자.' 하고 입어봤는데 아... 안 살 수가 없다. 이건 사야 해... '그래 오늘 생일이니까!'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그렇게 합리화했다. 오늘 엄청 쇼핑을 했지만, 기분은 너무 좋다.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시간이 너무 안 가서 4시 반에 샌드위치, 샐러드를 사서 숙소로 들어와 버렸다. 방에 돗자리 깔고, 음악 틀고, 씻고, 정리하면서 놀고 있다가, 화장실에서 옷을 손빨래하고 있는데, 그런데 갑자기!?
'똑똑똑'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새로 들어온 게스트였다. 오늘도 우리뿐인 줄 알았는데 침대 위에 걸린 새로운 이름을 보지 못했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새로 온 게스트를 위해 재빨리 돗자리와 여기저기 늘어놓은 짐들을 치웠다.
할머니이셨는데, 혼자 여행 오신 것 같았다. 멋있다.. 나도 나이 들어서 건강히 혼자 여행 다닐 수 있는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제 우리 세상은 끝났다... 우리 둘만 방을 쓰고 있어서 짐을 다 늘어놨던 상태였다. 그나마 일찍 들어와서 다 씻고 정리가 많이 끝난 상태여서 다행이다. 더 늦게 왔으면 더 당황스러울 뻔했다.
8시가 넘어서 할머니가 주무셔서 조심히 각자 침대에 놀다가 9시부턴 호스텔 로비에 나와서 놀았다.
여기가 아이슬란드보다는 확실히 공기가 안 좋은 것 같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비염 약을 안 먹어도 괜찮았었는데 거기서 넘어오니 벌써부터 코가 막힌다. 결국 비염 약을 먹었는데 란이도 달라고 해서 줬다. 먹자마자 코가 뚫리는 거 같다고 한다. 그럴 리가...?
약 기운에 너무 졸려서 자러 가야겠다...
아! 하나만 더 쓰고 자야겠다.
란이가 나에게 사진 찍는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찍는 순간을 보는 것도, 조리개 조절해서 사진 찍는 것도 재밌어졌다. 오늘 사진은 역대급으로 예쁜 사진이다. 뿌듯한 하루다.
란이 쓰는 3월 13일 Diary
오후 10시
오늘은 이상하게 다이어리를 쓸 시간이 없었다. 잠시 쓸 시간도 없을 정도로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그래서 침대에 누운 지금, 이제야 오늘을 정리하려 한다.
오늘은 뽀의 생일. 유럽에서 맞는 특별한 날임에 설렜던 우리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를 했다.
오늘의 일정은 요크를 전부 둘러보기. 생각보다 더 많이 작은 마을인 요크는 어제 잠시 둘러본 결과 모든 곳을 30분~한 시간 만에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곳이었다.
뚜벅이로 다닐 거라 조식은 꼭 챙겨 먹고 가자라는 생각에 조식을 먼저 먹었는데, 우리가 잡은 호스텔은 시리얼과 빵 등을 단 1파운드로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심지어 그 1파운드는 기부를 하는데 쓰인다고 한다. 매우 본받을 만한 보람찬 조식이었다.
조식을 든든히 먹고 시작부터 좋았던 우리는 해리포터의 다이애건 앨리가 배경이 된 쉠블즈 마켓으로 향했고, 생일을 맞은 뽀의 발걸음은 더 활기차 있었다.
어제는 밤늦게 요크에 도착하는 바람에 마켓으로 나갔지만, 상점 내부를 많이 보지 못했었다. 오늘은 일찍 가서 여유롭게 상점가를 둘러보자고 이야기했고, 오픈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쉠블즈 거리를 걸으며 오픈을 기다렸다.
쉠블즈는 한적하고 예쁜 거리. 반할 정도로 예쁜 거리에 사람이 얼마 없어 우리는 마음껏 사진을 찍었다. 얼마 지나고 기다리던 상점이 오픈을 했고, 그 이후 우리가 들어간 보든 상점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예뻤다.
인형가게, 크리스마스 가게, 해리포터 가게, 등등 각자의 개성을 가진 상점들은 집을 변형해서 만든 듯했고, 꼬불꼬불 미로처럼 생긴 상점 내부를 탐험하면서 구경하는 재미란 쏠쏠했다. 아쉽게도 상점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개성 넘치는 예쁜 상점들을 눈에 한가득 담고 다닐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놀러 다니다 보니 배가 고파진 우리는 오늘만큼은 특별하게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해서 생각해 두었던 카페로 향했다.
우리가 간 카페는 베티스 티룸.
에프터눈 티가 매우 유명한 이 카페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블로그로 많이 찾아봤던 곳이었다. 요크를 구경하는 오늘이 마침 뽀 생일이기에 기념으로 가면 참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아이슬란드 때부터 가자고 했던 곳이었다.
카페로 들어가 보니 매우 큰 곳이었고, 소품 하나하나가 너무나 예쁜 고급 카페였다. 자리에 앉아 애프터눈 티 두 개를 시켰고, 우리에게 맛있는 홍차세트와 세 개의 디저트 탑이 두 개나 배달됐다.
비주얼에 놀라 마구 사진을 찍는 와중에 우리가 사진 찍고 노는 것이 귀여워 보였는지 옆에 계신 외국인 부부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였고, 둘이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더 좋았다.
1층에서는 샌드위치 2층에는 스콘, 3층에는 각종 디저트가 놓여있었고 우리는 퀘스트를 클리어하듯이 1층부터 차례차례 맛보기 시작했다. 비싼 가격과 유명세는 괜히 있는 게 아니었는지 모든 음식이 맛있었고 우리는 행복에 겨워 그 시간을 누렸다.
행복한 둘의 파티를 즐기다 다른 일정이 있었던 우리는 다시 여행의 여정을 떠났고, 요크 민스터로 발길을 옮겼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성당이 풍기는 압도적인 경건함에 잠시 긴장하게 되었다. 트인 내부를 볼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내부가 공사를 하고 있어서 보려는 곳에 계속 예쁘지 않은 공사판의 모습이 보이긴 했다. 하지만! 내부의 아쉬움을 탑 위로 올라가는 것으로 다 씻어낼 수 있었다.
탑을 올라가는 신기한 경험도 좋았지만, 꼭대기로 가는 중간 지점에서 예쁜 사진들을 건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요크 민스터는 우리에게 인생 샷을 남기게 해 준 고마운 곳으로 자리 잡았고, 그 감사한 마음을 기념품을 잔뜩 사는 것으로 남겼다.
나는 매일매일 사진을 수정해서 인스타에 올리고 있는데, 오늘 사진을 리터칭 해보니 와.....! 진짜 인생 샷들이 참 많이 나왔다. 그리고 뽀가 정말 사진이 많이 늘었다. 이제는 몇몇 사진은 나보다 더 잘 찍는 듯하다. 항상 열심히 해주는 뽀에게 너무나 고맙다.
뽀야 오늘 생일 정말로 축하해!♡
일기를 쓰다 보니 아까 뽀가 준 비염약을 먹고 졸음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