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 파리 첫째 날
뽀가 쓰는 3월 23일 Diary
오늘은 파리 여행의 첫째 날.
주말이라 소매치기, 팔찌 강매, 사인단 등등으로 악명 높은 ‘몽마르뜨’를 먼저 가기로 했다. '관광객이 많으면 좀 더 안전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결정했다.
'사랑해 벽'에 먼저 들렸다.
그곳에는 사랑해라는 말이 각국의 언어들로 파란 벽에 가득 쓰여 있었다. 그냥 벽이겠거니 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예쁜 공간이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사람 많은 곳에 서서 찍는 게 부담스러워서 빨리 찍고 나왔다.
어느 커플이 힘들게 셀카를 찍으려 해서 란이가 "찍어 드릴까요?" 하니 엄청 고마워하셨다. 란이한테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한국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사는 유럽이다.
'사트레퀴르 대성당'을 보고, 'Place du Tertre'에 있는 화가들이 모여 있는 광장도 구경하면서 몽마르뜨를 가기 위해 열심히 걸었다. 그런데...
몽마르뜨라고 찾아간 곳은 몽마르뜨 무덤이었고, 아까 그 사트레퀴르 대성당 있는 그곳이 몽마르뜨 언덕의 정상이었다.
응? 팔찌 채우는 사람도 없었고, 사기꾼도 안 만났고, 정상이라면 엄청 높을 것 같았는데... 전혀 힘들지 않아서 더 높은 곳에 몽마르뜨 언덕이 있는 줄 알았다. 대성당이라 사람이 많은가 보다 했는데 몽마르뜨 정상이라 사람이 많은 거였다. 몽마르뜨는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위험을 느낄 새도 없이 다녀와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그렇게 어이없이 몽마르뜨를 일정을 끝내고, 란이의 화방 투어가 이어졌다. 엄청 유명하다는 화방 두 곳을 갔다. 한 곳은 정말 전문적인 화방이었고, 한 곳은 크고 이것저것 많이 있어서 내가 구경할만한 것들도 많았다. 란이는 물감 세트를 샀고, 파리 기념품은 이것으로 이제 끝났다며 좋아했다.
화방 투어가 끝날 때마다 란이가 젤리를 줬다. 아이한테 먹을 것으로 달래면서 데리고 가는 느낌...이 조금 있긴 하지만, 젤리는 맛있으니까 열심히 받아먹어야겠다.
‘파리니까... 바게트를 사야지.' 하는 생각으로 빵집에 갔다. 바게트가 엄청 저렴하고,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이래서 파리에서는 바게트를 사라고 하나보다. 현지인들처럼 바게트를 사서 안고 다니는데, 왜 더 관광객이 된 거 같은 기분일까...?
예전에 파리에 왔을 때, 유람선을 타고 멀리서 봤던 '노트르담 대성당'을 이제야 들어가 봤다. 정말 멋있고 웅장했다. 근데 대체적으로 성당들이 외관은 진짜 큰데, 그에 비해 내부가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노트르담 대성당은 여전히 정말 멋있고, 예전에 본 관련된 뮤지컬이 떠올랐다. '그때 그 뮤지컬의 배경이 이곳이었구나.' 하면서 새로워졌다.
이제 여기서 유명한 '베르띠옹' 젤라또를 먹으러 갔다.
줄이 꽤 길어서 고민하다가 그래도 본점에서 먹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줄을 섰다. 내가 찾는 배 맛은 없었고(이전에 보았던 ‘스노우 캣’이라는 책에서 보고 먹고 싶었던 맛이다!), 그 이외에도 이미 품절된 맛이 많았다. 그래서 그냥 스트로베리랑 유자 요거트로 먹었다. 그냥 맛있는 아이스크림 맛. 안 그래도 쌀쌀한 날씨에 젤라또를 먹고 나니 더 추워졌다. 일찍 숙소나 들어가야겠다.
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숙소 돌아가는 길은 꽤나 험난했다. 근처에 있는 지하철 입구를 찾아 계단을 내려갔는데, 공사 중이라며 입구가 닫혀있었다.
그래서 다른 입구를 찾아가 보니 엘리베이터 입구만 있었다. 작은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몰려서 중량 초과로 문이 닫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안 내리고 버티다가 결국 몇 명이 내려서 문은 겨우 닫혔지만, 엘리베이터 자체가 느려서 한참 동안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겨우 지하철 입구로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가서 표를 사려는데 카드만 가능한 기계 하나뿐이고, 표를 사야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우린 현금밖에 없어서 표를 사지 못하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결국 다른 지하철역을 찾아갔고, 표를 사기 위해 직원을 기다렸다. 한참 기다렸다가 물어봤는데, "내 할 일은 이제 끝났어. 표는 기계로 가서 사."라고 했다..
응? 어쩐지 돈을 세면서 정리 중이더라.. 또 기다린 끝에 현금이 가능한 기계에서 표를 사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 다사다난한 파리 첫날이다...
란이 쓰는 3월 23일 Diary
오후 11시
파리에서의 하루하루는 정말 다사다난하다.
콧대 높고 차가운 파리 사람에게 치여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너무나 친절한 분들에 한껏 행복해하다가, 영어를 전혀 해주시는 않는 분들로 인해 당황해하기도 하면서 정말 다채로운 하루하루를 그려나가고 있다.
사실 나에게 상상 속의 파리는 무척이나 세련된 도시였다. 책이나 영화, 예능프로그램에 비추어진 파리의 모습은 매번 낭만이 한가득 담긴 모습으로 표현되기에 나에게도 그런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달랐다. 조금 삭막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고, 도시 전체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도 한다.
물론 생각 한만큼 아름답긴 아름답다. 파리도 유럽인만큼 모든 건물이 멋있다. 그런데 그걸 반감시킬 만큼 지저분하고 불쾌한 냄새가 도시에 한가득 퍼져있다. 아름다움을 느끼다가도 그 냄새를 맡으면 윽.... 조금 힘들다.
물론 이건 내가 느낀 점이다.
그렇다고 파리가 싫은 건 아니다. 아름답고 오래된 고풍스러운 건물과 예술품을 사랑하는 예술의 도시가 나는 좋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난 파리에 예술을 보러 왔다. 루브르와 오르세, 퐁피두센터, 그리고 시넬리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예술품을 보며 공부하기 위해 파리에 왔다. 파리에 만약 루브르가 없었다면, 시넬리에 화방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여기에 있었을까..?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를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어쩐지 요상한 느낌의 오늘이다.
..
아, 그리고 난 결국 시넬리에 물감을 샀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