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 산책하기
뽀가 쓰는 3월 31일 Diary
오늘은 거의 11시가 다 돼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옆을 보니 란이는 벌써 일어나 있었다. 놀라서 언제 깼냐고 물어보니 아까 깼다고... 둘 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그림 그리면서 놀다가 4시가 돼서야 밖에 나왔다. 란이가 해리포터 기숙사 뱃지를 그리고 있길래 옆에서 열심히 따라 그렸는데 쉽지 않다. 전체 형태 잡는 것이 제일 어렵다. 란이는 슥슥 잘 그리던데 난 안된다. 그림은 아닌가보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을 것 같았고, 어제 니스 바다가 너무 예뻤기에 오늘은 니스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주말시장이 열려서 구경하다가 마그넷 하나를 샀다. 상점에서 파는 마그넷보다 훨씬 의미 있는 직접 만든 집 모양 마그넷이다. 길거리 상점들을 구경하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먹으면서 바다로 향했다. 그리고 해변에 돗자리 펴고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너무 좋다. 이게 얼마 만에 바라보는 바다인지.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니스 전망대에 올라 니스를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해변가에는 사람들이 누워 있고,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바닷가를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까지... 모두들 여유로운 니스의 모습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는데 경찰 아저씨가 삑삑 불면서 뭐라고 설명을 하신다. 아하... 전망대 문 닫을 시간이라고 내려오란다. 우리는 타이밍 딱 맞춰서 잘 보고 내려왔다.
어제부터 느끼는 거지만, 저녁의 니스는 보기에 조금 위험한 곳이다.
담배 냄새가 온 거리에 풍기고, 어제는 여기저기 싸우는 사람들을 봤고, 여기저기 노숙자들이 많이 보였다. 이건 여기뿐만이 아니라, 런던으로 넘어오고 나서 계속 보는 길거리 풍경이다. 한국이 더 그리워지는 저녁이다.
7시 반에 숙소로 들어와서 저녁으로 컵 떡국(여기서 떡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다.)과 맛다시를 이용해서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란이의 아이디어는 성공할 것인가.... 컵 떡국을 만들어서 맛다시만 넣고 맛을 봤는데 음... 이건 아냐... 그래서 설탕을 더 넣고, 전자레인지에 몇 번 돌렸더니...
어? 떡볶이 맛이 비슷하게 나서 신기했다. 맛다시로 떡볶이 만들기 성공! 하나는 떡국으로 만들고, 하나는 떡볶이로 만들어서 트로이를 불렀다. 호스트인 트로이가 우리 음식에 관심을 보여서 꼭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트로이는 둘 다 맛이 꽤 괜찮다면서 컵 떡국을 사진 찍어갔다. 그러면서 어떤 음식 좋아한다며, 정확한 음식 이름은 말하지 못하고 설명했다. 옆에서 란이가 "회덮밥?!"이라고 하자 맞다고 했다. 그걸 어떻게 맞췄지...
저녁을 부엌에서 먹고 있으니 트로이랑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트로이가 우리 보고 학생이냐고 물었다. 우린 둘 다 곤란한 표정으로 사실은 일을 그만두고 왔다고, 한국 나이를 말해줬더니 놀라워했다. 우리를 20살이나 21살 정도로 봤다고 한다. 트로이에게 바로 "땡큐!" 했다.
저녁 니스의 어두운 분위기가 호스트의 따뜻함으로 지워진 저녁이었다.
란이 쓰는 3월 31일 Diary
오후 1시
어제는 무엇인가 힘든 날이었다.
힘들어서인지 사진도 별로 못 찍고, 모나코가 생각보다 별로 예쁘지 않게 느껴졌다. 모나코를 다녀오고, 그 피곤함은 더 많이 몰려와서 오늘 우리는 아주 늦게까지 늦잠을 잤다. 9시정도 되었을 꺼라 생각했을 때 시간을 보니 이미 11시였고, 우리는 느지막이 잠에서 깨서 침대에 굴러다녔다.
오늘은 니스 시내를 구경하면서 여유롭게 보내기로 한 날이기 때문에 더 여유롭게 굴러다녔다.
우리가 며칠 지내본 니스는 굉장히 작은 마을이다. 오늘 우리가 오늘 다녀올 곳도 사실 어제 지나갔던 해변과 전망대이다. 어제는 사진도 못 찍고 급하게 지나만 갔으니 오늘은 사진을 찍으면서 꼼꼼히 구경해봐야겠다. 근데 왜이리 귀찮은지 모르겠다.
좀 더 굴러다니고 싶다.
오후 10시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굉장히 재밌는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여행을 계획하고 짐을 쌀 때, 한식을 좋아하는 나에게 우리 엄마는 걱정이 되었는지, 가끔 밥을 구해서 같이 먹으라며 어디선가 맛다시를 사와서 챙겨줬었다.
맛다시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맨날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니스에 도착한 날 아시안 마트에서 떡국 인스턴트를 구하게 되었다. 떡국을 보고 이걸 어떻게 맛있게 먹을까 생각하다가 뽀와 나는 당장 가장 먹고 싶은 떡볶이를 만들어보자 하고 계획하게 되었다.
계획한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로 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고 우리는 오늘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떡국에 뜨거운 물을 넣고 잠시 떡을 불리느라 기다리고 있는데 짜잔! 트로이가 부엌으로 왔다.
우리가 라면같이 생긴 무언가를 보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더니 평소 한식에 관심이 많던 트로이가 궁금증이 생겼는지 그게 무엇이냐 물어봤다.
설이라는 한국 명절에 먹는 음식이고, 이름은 떡국이라고 이야기해주었더니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는 트로이를 보고 우리는 뭔가 한번 맛을 보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트로이를 위해서라도 더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떡국에 맛다시와 설탕을 넣고 섞어준 뒤 전자레인지에 넣어버렸다.
완전한 떡볶이는 아니지만 맵고 달달한 떡볶이가 완성됐다!
우리가 급할 때 먹는 인스턴트 떡볶이 맛이랑 비슷했다!
진정한 떡볶이는 아니지만 이거라도 맛을 보게 하고 싶어서 우리는 트로이에게 시식을 권했고, 트로이는 너무 기뻐하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들었다.
물론 우리는 그 와중에 트로이에게 실제 떡국과 떡볶이는 이거보다 훨씬 맛있다는 것을 강조했고, 흉내만 낸 것이다 는걸 강조했다.
트로이는 알겠다며 떡국을 먼저 맛보았다.
두근두근.....
오! 하며 맛있다고 하는 트로이!
해변에서 먹으면 좋겠다며, 만드는 방법을 물어봤다.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요리법을 트로이에게 알려주고, 다음은 떡볶이를 권했다. 맛다시를 많이 넣었기에 매울 수도 있어서 크게 물 한 컵을 옆에 준비해두고 떡볶이 한 숟갈을 주었다.
생각보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트로이는 아주 맘에 든다며 떡볶이라는 이름을 몇 번이고 말했다. 우리의 음식에 이렇게나 관심을 가져주는 트로이가 고마웠다.
여행을 다니면서 만나는 이런 다양한 관계가 너무나 재밌다. 오늘은 트로이랑 재밌는 애피소드를 남겼는데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일기를 쓰면서 떡볶이라는 단어를 많이 써서 그런지.. 또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