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 옆 작은 나라, 모나코
뽀가 쓰는 3월 30일 Diary
아침 겸 점심으로 햇반에 보크 라이스와 맛다시를 비벼 먹기로 했다. 부엌에 갔는데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트로이가 있었다. 맛다시를 설명해주면서 맛보시라고 했는데 숟가락으로 푹 퍼서 드셔서 깜짝 놀랐다. '엄청 매울 텐데....'
괜찮다고 하셨다가 결국 맵다며 두 손 들었다. 그래도 맛있다고 하는 걸 보고 란이가 선물로 하나 드렸다. 비빔밥 양념이라고 하니까 비빔밥 엄청 좋아한다고 하셔서 우리가 더 기뻤다. 트로이는 한국에 4일 정도 여행한 적이 있고, 밴쿠버에서 살 때 중국인 친구가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많이 먹어봤다고 한다.
트로이랑 대화를 하고 있으니 대학 영어 교수님 생각이 났다. 영어를 쉬운 단어로만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말하고, 말 못 하고 있으면 그 문장을 정확히 영어로 먼저 말해주셔서 감사했다.
오늘은 모나코 가는 날. 버스를 타고 모나코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전망을 보기 위해 많이 찾는다는 스타벅스. 전망이 멋있게 보이는 곳은 아니었다... 그냥 앉아서 쉬다가 모나코 구경을 시작했는데 딱히 사진 찍을 마음도 들지 않았다.
끝부터 끝까지 열심히 걸어서 모나코 대공궁까지 올라갔다. 나라가 작아서 걸어 다닐만한 거리였다. 길을 걷고 있는데 저쪽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 3명이 말을 걸었다.
"봉쥬? 헬로? 곤니찌와?"
다 무시하고 지나쳤더니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언어의 인사를 총동원했다. 중학생들이 어떤 일로 말을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이 되든 이상한 상황이라 무시하고 왔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웃긴다. 젤리로 꼬시려던 것 아니겠지 설마...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도 모나코는 자체는 볼 것도 없고, 바다도 니스가 더 예뻐서 아쉽다. 여기는 카지노와 레이싱 경기의 나라이고, 부자들이 스포츠 카를 몰고 오는 나라이다. 마카오 생각이 많이 나는 곳이다.
아마도... 여기 오는 길에 본 니스가 너무 예뻤나 보다. 반짝거리는 바다와 해변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서 빨리 니스로 돌아가고 싶다.
란이 쓰는 3월 30일 Diary
오후 1시 16분
니스에서는 매일매일 버스를 타고 근교로 나가고 있다. 오늘 갈 니스의 근교는 모나코이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영화가 있다. 앤 헤서웨이라는 눈이 아주 매력적인 여배우가 나오는 ‘프린세스 다이어리’라는 영화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여주인공이 알고 보니 한 왕국의 공주였다는 설정의 이야기로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에게 다양한 상상을 자극하는 귀여운 영화였다.
이 영화 속에는 제노비아 라는 아주 작은 가상의 나라가 나오는데, 예전부터 나는 그 나라가 모나코와 매우 비슷하다 느꼈었다. 그래서 니스를 계획했을 때 내가 상상하는 모나코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나코를 꼭 들르겠다 마음먹었고,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모나코를 가기 위해 우리의 숙소에서 버스정류장까지 30분 정도 걸어야 했고, 지금 탄 버스로 40분 정도 이동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걸어오는 동안에 있었던 즐거운 애피소드들을 정리하려 한다.
버스정류장을 오는 동안 우리는 니스 해변을 쭉 걸어왔다.
너무 예쁘고 푸른 해변이었다. 심지어 ‘이게 바로 지중해의 해변인가?’ 하는 기분마저 들게 할 정도로 예쁜 해변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니스와 파리가 너무 지저분해서, 예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바다는 푸른빛으로 맑게 반짝이고, 그 주변으로 있는 흰색 돌들은 푸른 바다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었다.
바다에 눈이 뺏겨 구글맵도 보지 않은 체 걷고 있던 우리는 한 시장을 만났다. 보통 블로그나 인스타 등에서 여행정보를 얻는데 그 정보들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시장이라 더욱 반가웠다.
우리가 구경하게 된 시장은 다양한 공예품을 파는 마치 한국의 플리마켓 같았고, 다양한 공예품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림을 그려서 판매하는 작가들과 클레이를 구워 작은 소품을 만드시는 작가들을 만나니 너무 반가워서 할 줄도 모르는 프랑스어를 하면서 반가움을 표현했다. 내가 한 프랑스어라곤 고작 ‘봉쥬~’였지만 표정과 엄지 척 등의 표현으로 충분히 나의 반가움을 어필했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어디를 가든,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심지어 그들은 나처럼 젊은 사람이 아닌 자녀들이 나보다도 나이가 많을 것 같은 연장자분들이다. 그분들이 작업을 하며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떠한 감동이 바다처럼 밀려들어온다. 그리고 반성하게 된다.
나는 사실 유럽을 오기 전에 때때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림을 그리고 작업을 하기엔 나는 좀 늦은 것 같아, 나는 왜 재능이 부족할까, 조금 더 해보자, 더 열심히 해야만 해..’등의 채찍질을 상당히 많이 했었다. 욕심이 많아서인지 항상 스스로에게 더 많은 요구를 했고, 그로 인해 몸을 힘들게 하곤 했다.
다행히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스트레스는 덜 받았지만, 누구보다 빨리, 더 멋지게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에 굉장히 아등바등 살아왔다. 지금까지도 즐겁게 작업을 하시는 그분들을 보면 스스로가 초라해졌다.
빠르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아직 나는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인데, 왜, 누구보다 빨리라는 속도에 집착했는지 스스로 창피했다.
그리고 반성했다.
“나는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뿐이야. 지금 하는 것처럼 꾸준히 하자.” 하고.
지금까지 나는 시간이라는 굴레에 얽매여서 살고 있었다. 나의 시간과 다른 사람의 시간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사회 속의 한 일원으로 살고 있는 나는, 사회가 만든 기준의 시간에 맞추려고 힘들게 따라다녔다. 평범한 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사회가 만든 성공이라는 기준에 근접하기 위해.
하지만 그 시간은 나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유럽에 와서 조금 직시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천천히 가려한다. 지금도 여전히, 꾸준히 작업을 하시는 그분들처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 더 행복하게 쓰려한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산책을 하듯이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일기를 쓰다 보니 모나코 근방에 거의 도착한 듯하다.
뽀가 피곤했는지 옆에서 자고 있는데 이제 깨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