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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green Aug 15. 2020

[예능] 거대한 연습장에 그리는 동심의 세계

2020년 6월 19일, '나 혼자 산다', MBC

며칠 전 방송을 탄 배우 유아인의 집이 화제입니다. 넓은 거실, 통창이 돋보이는 와인 룸, 호텔 같은 화장실 등 충분히 시청자들을 놀라게 할 만한 공간이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린 여러 점의 미술작품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마이클 스코긴스(Michael Scoggins)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유아인 씨가 혼자 저녁을 먹던 식탁 뒤로 스코긴스가 그린 남성용 소변기가 보입니다. “Michal S. 2010”이라는 서명이 표기된 이 작품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1917년작 <샘(Fountain)>을 그린 것입니다. 


마이클 스코긴스, <샘>, 2010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마르셀 뒤샹, <샘>, 1917

미술사와 관련한 책을 읽다 보면 여러 명의 ‘현대미술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데요, 이러한 비공식적인(?) 별명으로 소개되는 화가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뒤샹입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그동안 옳다고 여겨졌던 가치관에 회의를 느낀 예술가들이 기존의 논리와 의미에 도전하는 다다(Dada) 운동을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으킨 바 있습니다. 프랑스의 예술가였던 뒤샹은 전쟁을 피해 뉴욕으로 망명하여 뉴욕 다다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이후 현대미술의 흐름에 있어, 뒤샹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평가되는 작업이 바로 ‘레디메이드(Readymade)’로 남성용 소변기를 작품으로 내세운 <샘>이 가장 유명합니다. 뒤샹은 전통적 예술관을 전복시키고자 했던 다다이스트로서 미술작품을 둘러싼 일종의 신화와도 같았던 원칙들-작품의 유일성, 작가의 독창성 등-을 레미메이드-기성품 작업을 통해 단번에 뒤집고 있지요. 뒤샹은 상업용으로 판매되던 남성용 소변기에 “R. MUTT 1917”이라는 서명을 한 후 <샘>이라는 제목을 붙입니다. 이 소변기는 한번에 수백수천개씩 만들어지는 기성품으로 유일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또한 이것을 뒤샹이 직접 만든 것도 아니지요, 심지어 작가의 서명도 본명이 아닌 가상의 인물 “R. MUTT”라는 이름으로 적고 있어요. 하지만 뒤샹은 실용품에 작가의 서명을 더하는 것만으로, 다시 말해 그것이 놓인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기성품을 예술품으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뒤샹은 <샘>을  ‘앙데팡당전 (독립전)’에 출품하게 됩니다. 이 전시는 소정의 참가비만 지불하면 누구나 작품을 출품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운영방침을 내세웠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위원들 간에 <샘>의 전시 허가 여부에 대한 논쟁이 붙었습니다. 뒤샹은 이 과정을 공론화하며 무한한 자유를 표방하는 전시마저도 실제로는 ‘예술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고 주장합니다. 뒤샹이 일으킨 이 스캔들을 통해 관객들은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미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뒤샹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샘>은 현대미술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마이클 스코긴스, <별이 빛나는 밤 (고마워요 빈센트)>, 2009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c.1665; 마이클 스코긴스, <진주>, 2013

스코긴스는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소변기를 그저 어린아이가 낙서하는 것처럼 연습장 종이에 끄적거립니다. 스코긴스는 뒤샹의 작업 뿐만 아니라 과거의 명화를 채택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2009년작 <별이 빛나는 밤 (고마워요 빈센트)>과 2013년작 <진주>는 각각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그런데 스코긴스가 그린 그림들의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보통의 캔버스가 아닌 학생들이 사용하는 노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지요? 하지만 작품의 사이즈를 확인하는 순간 한 번 더 놀라게 되는데요, 스코긴스의 그림들은 거의 평균적인 성인 키보다도 큰 편입니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패러디한 <진주>의 세로 길이는 무려 170cm예요. 일반적인 노트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캔버스가 줄이 쳐져 있는 연습장처럼 보이도록 일정하게 선을 긋고 바인더와 마찬가지로 구멍을 뚫어넣는 것이지요. 한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스코긴스가 이렇게 큰 사이즈의 캔버스를 활용하는 이유는 어린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라고 해요. 그리고 그림마다 등장하는 “MichaeL S.”라는 서명은 어린아이로서의 (자신의 또다른) 자아라고 설명합니다. 작가 내면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어린이로서의 정체성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서명을 하는 필체 역시도 정말 어린아이가 쓴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어린 시절 글씨를 보며 연습했다는 설명도 덧붙입니다.   


마이클 스코긴스, <검은 예술가>, 2012; <게이 예술>, 2013

그렇다고 해서 스코긴스의 작품들이 어린아이마냥 순진무구한 주제만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검은 예술가>와 <게이 예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종, 성적 지향과 같은 상당히 정치적인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위의 두 작품 모두 연습장에서 찢어낸 한 페이지처럼 보이고, 구깃구깃하게 구김이 간 부분들도 있지요, 이러한 표현들 역시 작가가 의도적으로 어린이가 자신의 노트에 장난으로 끄적거린 낙처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것입니다. 아무리 무겁고 심각한 문제라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생각보다 금방 해결되는 일들이 있잖아요? 아마도 스코긴스는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모든 종류의 차별들을,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이들의 손에 쥔 색연필로 쓱쓱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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