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스타 감독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의 역작 <타이타닉>(1997)은 1912년 4월, 영국의 사우스햄프턴에서 출항하여 뉴욕으로 가던 중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감독은 비극적인 사고를 각색하면서 그 시대적 배경을 그림으로도 은근히 보여주는데요, 영화 <타이타닉>에는 피카소와 모네, 그리고 드가의 작품이 등장합니다. 모네와 드가는 인상주의(Impressionism), 피카소는 입체주의(Cubism)를 대표하는 화가인데 오늘은 피카소의 작품 세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 합니다. ‘로즈’(케이트 윈슬렛 분)의 약혼자 ‘칼’(빌리 제인 분)이 로즈가 정리 중인 작품들을 “돈 낭비”라 조롱하며 그 중 한 그림의 작가가 누구인지 묻습니다. 로즈가 대답해요, “무슨무슨 피카소라고 했는데.” 칼이 다시 말합니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는 유명해지지 못할 거야.” 절대 유명해지지 못할 거라던 피카소는 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화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피카소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07년에 제작한 <아비뇽의 아가씨들(Les Demoiselles d'Avignon)>입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충격적인 요소는 화면 오른쪽에 위치한 두 여인의 기괴한 모습입니다. 특히 바닥에 앉아 있는 여인의 경우, 관람객으로부터 몸을 반대로 돌리고 있지만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어요. 그녀의 얼굴 역시 무엇인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피카소 역시도 이 그림이 일으킬 파장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림을 완성한 지 9년이 지난 1916년이 되어서야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대중 앞에 내놓습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의 제목을 <아비뇽의 사창가>로 지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전시를 기획한 프랑스의 시인 앙드레 살몽(André Salmon)이 <철학적인 사창가>로 제목을 바꾸었다가 다시 <아비뇽의 아가씨들>로 수정하여 지금까지도 이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모네, 드가와 같은 인상주의자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시각적 리얼리티’를 지향했다면, 입체주의자인 피카소는 ‘대상을 해체한 후 재결합’하여 그리는 ‘관념적 리얼리티’를 추구합니다. 피카소는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시점만으로는 그것의 본질을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대상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해체-재결합’을 선택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를 인상주의와 입체주의의 방식으로 각각 그린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인상주의자들은 나무를 고정된 하나의 시점으로 본 모습으로 그릴 거예요. 다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이나 날씨 같은 것들입니다. 새벽녘 어스름한 곳에 놓인 나무와 저녁 노을 아래 놓인 나무, 혹은 해가 쨍쨍 빛나는 밝은 날에 바라보는 나무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흐린 날에 바라보는 나무의 색깔은 모두 다를 테니까요. 입체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무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그것의 본질을 보여주는 방법은 무엇인가’입니다. 그래서 입체주의자들은 나무를 정면에서도 바라보고 위에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땅 속의 뿌리까지도 내려다볼 거예요. 그리고 각각의 상황에서 포착된 ‘나무의 모든 면’을 화면 위에서 재결합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다시점을 구현하는 피카소의 방식은 그동안 하나의 단일한 시점으로 화면을 구성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굉장히 파격적으로 느껴졌겠지요?
피카소가 처음부터 입체주의의 화면 구성 방식을 보여줬던 것은 아닙니다. 입체주의 이전의 작품을 ‘청색 시대’와 ‘장밋빛 시대’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먼저 청색 시대(Blue Period, 1901-04)에 그려진 그림들은 마치 피카소의 눈 앞에 파란색의 필터가 있어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1901년 초, 피카소의 친구이자 예술가였던 카사게마스가 연인과의 이별 후 자살합니다. 당시 20살의 젊은 청년이었던 피카소는 함께 예술을 꿈꾸었던 친구의 비극적인 죽음과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화가로서의 절망, 그에 따른 필연적인 생활고로 인하여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었고, 이러한 고뇌가 반영된 것이 바로 청색 시대의 화면입니다. 청색 시대의 대표작인 <삶(La Vie)>은 무언가 불행해보이는 연인들(전면의 남성이 카사게마스입니다), 그리고 당시 피카소가 즐겨 그렸던 소재인 어머니와 아이가 등장하는데요, 화면을 뒤덮은 청색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맹인의 식사>도 <삶>과 마찬가지로 우울하고 절망적인 느낌을 주는데, 피카소가 당시에 가졌던 염세주의와 서러움을 소외된 이들에게 이입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그저 불행한 곳이라 인식하던 피카소의 그림이 조금씩 부드러워집니다. <파이프를 든 소년>과 <곡예사와 어린 어릿광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피카소의 눈 앞에 놓여져 있던 파란색의 필터가 분홍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청색 시대에 불행한 인물들이나 빈곤층을 즐겨 그렸던 피카소가 장밋빛 시대(Rose Period, 1904-06)에 주로 그린 주제는 곡예사나 어릿광대와 같은 서커스 단원들입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거주지를 옮긴 피카소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후원자도 생겼습니다. 작품이 팔리면서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가던 피카소는 1904년 페르낭 올리비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 시기에 그려진 그림에서 느껴지는 분홍빛의 부드러운 분위기는 피카소의 행복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합니다.
1906년, 피카소는 올리비에와 함께 아프리카와 가까운 스페인의 한 도시에 머물며 정제되지 않아 거친 원시미를 보여주는 이베리아 조각(기원전 6-3세기에 이베리아 반도-유럽의 남서부, 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제작된 조각)을 접하게 되는데 <두 누드>가 이 시기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두 누드>의 두 여인은 강인하고 투박한 이베리아 조각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으로, 특히 활 모양으로 둥글게 표현된 눈과 끌로 쳐낸 듯 단순하게 그려진 코와 입은 1년 후 그려진 <아비뇽의 아가씨들>의 오른편에 위치한 여인들의 얼굴과 상당히 유사하지요. 회화와 조각, 드로잉 등을 모두 합친 피카소의 작품 수는 무려 50,000여점으로 추정됩니다. 이 어마어마한 숫자를 단순하게 피카소가 작업한 햇수로 나누어보면 하루에 2점씩 완성한 셈이 됩니다. 피카소는 작업속도가 빨랐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피카소의 통상적인 작업 스타일과는 달리 <두 누드> 이후 수백여 장의 드로잉을 그린 끝에 완성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어요. 수많은 노력 끝에 20세기 미술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만한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