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지미술가/ 환경미술가로 불렸던 크리스토(Christo)가 향년 8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성행했던 대지미술(Land Art)은 미술 작품의 상품화에 대한 저항과 함께 ‘땅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land)’와 같은 환경운동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미술 경향입니다. 대지미술가들은 작품이 상업 화랑에서 하나의 상품처럼 거래되고 있는 관행을 비판하면서 수집가들을 위한 소비재로 전락해버린 작품을 생산하는 일을 거부하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해, ‘팔 수 없는’ 혹은 ‘소유할 수 없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을 ‘비물질적 경향’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기존의 회화나 조각처럼 어떤 특정한 형태가 영원히 유지되는 형태가 아니라 스미드슨의 <나선형 방파제>와 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변화하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사라져 버리는 작업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나선형 방파제>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 위치한 그레이트솔트호에 덤프 트럭으로 운반한 돌과 흙으로 소용돌이 모양의 방파제를 만든 작업입니다. 길이 약 457m, 넓이 약 4.6m에 달하는 이 거대한 작업은 완성 이후 서서히 물에 잠겨버렸고, 물이 줄어들 때만 일시적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형태로 수면 아래 놓여져 있습니다. 스미드슨의 대지미술 작품은 이전의 미술품과 같은 방식으로 거래될 수도 없고, 그 누구의 소유도 불가능하지요. (참고로, 2000년대 초반 유타에 가뭄이 지속되면서 호수의 수위가 낮아져 <나선형 방파제>를 더 잘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전통적인 미술 재료가 아닌 흙이나 돌과 같은 자연 재료들을 사용하는 점, 그리고 미술관이나 화가의 작업실을 떠나 넓은 들판과 해안, 황량한 사막 등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작업하는 점 등은 대지미술가들이 작품 제작 방식에 있어서 일종의 반문명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당대 환경운동의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리차드 롱이 점판암으로 구성한 <돌로 만든 여섯 개의 원>과 그저 걷는 행위의 흔적을 대지 위에 남기는 것을 작업의 목적으로 했던 <페루에서 일직선으로 걷기>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이제 ‘대지의 예술가’라는 수식어로 설명되는 크리스토의 작업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토는 대지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1960년 선언문을 통해 미술사에 등장한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 작가이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의 미술계는 작가들의 감정이 강하게 표출되는 추상 경향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1960년을 전후로 이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진 산업사회의 현실을 담아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추상의 주관성이 아니라 현실의 객관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것이 유럽의 ‘누보 레알리즘’과 미국의 ‘팝아트(Pop Art)’입니다. 이 중 ‘누보 레알리즘’은 ‘새로운 사실주의’라는 의미를 가진 용어로, 1960년 4월 공식적으로 그룹이 결성되었습니다. 이들이 선언문을 통해 설명한 누보 레알리스트들의 공통적인 작업방식은 ‘객관적 현실의 직접적인 차압’입니다. 현실과 가장 가깝게 정지된 상태에서 그것을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객관적으로 포착하여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토는 무언가를 거대한 천으로 감싸는 작업으로 유명한데, 크리스토가 누보 레알리스트로서 객관적인 현실을 차압하기 위해 사용한 방식이 바로 이 ‘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장된 전화기>와 같이 초기에는 작은 물건이나 인물을 천 또는 비닐로 포장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점차 그 범위를 확장시켜 나갔는데요, 1962년에 결혼하여 부인이 된 잔느-클로드와 함께 시카고 현대미술관(1969), 베를린의 국회의사당(1995)과 같은 공공기관, 그리고 시드니의 해변(1969),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위치한 열한 개의 섬(1983) 등의 자연 환경을 천으로 뒤덮는 작업을 연이어 보여주었습니다.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의 대지미술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업은 2005년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16일동안 주황색으로 물들였던 <더 게이츠>입니다. 이들은 37km에 달하는 길이의 산책로에 바람에 펄럭이는 오렌지빛 천을 매단 7,503개의 ‘게이트(gate)’를 설치하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작품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공간이었을 공원을 찾은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황홀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했을 것입니다. 관람객들에게 놀랍도록 새로운 순간을 선물했던 크리스토는 지난 2009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잔느-클로드의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의 예술은 계속될 것이다”라는 서로의 약속을 지켰던 크리스토, 잔느-클로드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