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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green Aug 15. 2020

[광고] 피자 광고에 등장한 소크라테스와 신고전주의

젊은 남성들 사이에 둘러싸인 한 중년의 남성이 왼쪽 손을 들어 두번째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피자 하나를 사면 아이스크림까지 준다는 홍보 문구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 남자는 누구일까요? 피자헛 광고가 패러디하고 있는 작품은 18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를 대표하는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The Death of Socrates)입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계몽주의(Enlightenment) 사상이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계몽주의를 주창하는 철학자들은 인간의 사고하는 능력, 즉 이성(理性)의 힘을 높이 평가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하는 능력을 통해 종교적, 정치적 권위에 복종해왔던 과거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바로 계몽주의입니다. 신고전주의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이성과 논리, 그리고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장 앙투안 와토, <시테라 섬의 순례>, 1717, 129x194cm;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그네 타기>, c.1767, 81x64.2cm

신고전주의가 등장하게 된 보다 직접적인 계기로는 프랑스 혁명을 견인해낸 시민계급의 새로운 취향과 18세기 중반에 발굴되었던 고대 유적의 흔적을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신고전주의 이전 유럽의 미술계는 로코코(Rococo) 양식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비너스에게 바쳐진 시테라 섬에서 황홀한 하루를 보낸 젊은 남녀들이 사랑의 신 큐피드들의 안내에 따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그린 와토의 <시테라 섬으로의 순례>, 그네를 밀어주는 노인 몰래 젊은 남성과 밀회를 즐기는 여인을 묘사한 프라고나르의 <그네 타기>에서 볼 수 있듯, 감미롭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화면에 쾌락이 흐르는 노골적인 주제를 담았습니다. 로코코는 점차 사치스럽고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졌고, 특히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급성장한 시민계급은 귀족들의 향락에 가까운 화려한 취향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며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정돈된 느낌을 주는 신고전주의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에 위치한 고대도시 헤르쿨라네움과 폼페이의 유적이 각각 1738년과 1748년부터 차례대로 발굴되면서 고대 문명에 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자연스럽게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을 동경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그것을 재현하려는 시도로서 신고전주의 미술이 발전하게 됩니다. 신고전주의는 절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미의 형식을 추구하였던 고전미술로부터 그 형식을 가져오고, 주제면에서는 고대의 영웅 혹은 위대한 역사적 인물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림을 통해 혁명정신을 대변하고자 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1784, 329.8x424.8cm

다비드의 <호라티우스의 형제의 맹세>는 신고전주의 미술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리비우스의 『로마 건국사』 1권에 나오는 도시국가 로마와 알바 간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두 도시는 군대를 파견하는 전면전 대신에 각 도시를 대표하는 세 명의 남자를 뽑아 그들의 결투로 전쟁의 승자를 결정짓기로 합니다. 로마에서는 호라티우스 집안이, 알바에서는 큐라티우스 집안이 선정되는데 다비드의 그림 왼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호라티우스 가의 삼형제입니다. 세 명의 용맹한 아들은 그들에게 나누어 줄 칼을 들고 있는 아버지에게 로마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결의를 바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형제들로부터 맹세를 받고 있는 아버지 뒤로 슬픔에 잠긴 세 명의 여인들이 보입니다. 그 중 화면의 맨 오른쪽에 위치한 카밀라는 호라티우스 가의 딸로 큐라티우스 가의 형제 중 한 명과 약혼을 한 상태이며, 그 옆에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보이는 여인은 호라티우스 가의 며느리로 큐라티우스 가의 딸입니다. 한마디로 각 도시를 대표하여 전투를 벌이게 될 호라티우스 가와 큐라티우스 가는 사돈지간이라는 이야기지요. 여인들은 이 전투에서 로마가 이기든 알바가 이기든 반드시 사랑하는 남자형제 혹은 남편/약혼자를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인들의 슬픔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삼형제의 결연한 표정과 다부진 자세에서 다비드가 이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주제의식이 명료하게 드러납니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애국심이지요. 다비드는 이 장엄한 주제를 신고전주의자다운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고대 로마의 건축물을 대표하는) 아치형의 세 공간으로 명확히 나누어진 각각의 인물군은 명확한 선으로 묘사되어 뚜렷한 인상을 주고, 칼 세 자루를 든 호라티우스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도록 세 명의 아들과 세 명의 여인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모든 요소들이 완벽한 계획에 의해 깔끔하게 정돈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러한 절제된 형식을 통해 애국심이라는 도덕적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신고전주의의 전형으로 이야기되는 것이지요.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129.5x196.2cm

피자헛 광고에 사용된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가져온 장면으로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기 직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현란한 말재주로 젊은이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는 죄명으로 아테네 정부로부터 고소를 당해, 자신의 사상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독약을 마실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했는데 결국 스스로 독약을 마심으로써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지요.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선택은 신념을 포기하고 비굴하게 현실에 굴복하며 사는 것보다 그것의 결말이 죽음이라는 비극일지라도 옳다고 생각한 것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참된 진실을 향한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가 애국심을 다루고 있다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굳은 신념과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강인한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인물이 선으로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고,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인물이 여섯 명으로 통일성을 보여주는 것 역시 신고전주의의 형식적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신고전주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신고전주의를 논리와 이성의 미술이라고 했을 때, 이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보여주는 감정과 감각의 미술이 공존하는데요. 바로 신고전주의와 함께 18세기 말 유럽에 전파되었던 낭만주의(Romanticism)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낭만주의자들의 그림도 궁금해지는 순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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