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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green Aug 15. 2020

[영화] '무하 스타일'의 매력

영화 <차이나타운>(1974) 포스터
알폰스 무하, '욥' 담배종이 포스터, 1896; 1898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감독의 1974년작 <차이나타운>의 포스터에는 중절모를 쓴 남성이 내뱉은 담배연기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포스터는 체코 출신의 예술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의 담배 광고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 각지에서 유행했던 ‘아르누보(Art Nouveau)’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당대에 큰 성공을 거두어 고국인 체코뿐만 아니라 빈, 뮌헨, 파리, 뉴욕 등지에서 다양한 작업들을 선보였습니다.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을 가진 ‘아르누보’는 과거 양식의 모방을 거부하고 산업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목표를 가진 예술 운동으로, 식물의 줄기를 연상케 하는 구불구불한 선의 표현이 두드러집니다. 무하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식물 덩굴과 같은 곡선’이 아르누보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데, 무하는 이러한 곡선으로 둘러싸인 몽환적인 여성을 주로 그렸습니다. 영화 <차이나타운>의 포스터에 영향을 준 <’욥’ 담배종이 포스터>에도 식물의 줄기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우아한 여성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녀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조차 담쟁이덩굴과 마찬가지로 화면을 휘감으며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엑토르 기마르, '카스텔 베랑제'의 출입문, 1898; 안토니 가우디, 카사 밀라, 1906-12

아르누보라는 용어는 예술품 화상이었던 지크프리트 빙(Siegfried Bing)이 1895년 파리에서 개업한 갤러리 ‘메종 드 아르누보(Maison de l’Art Nouveau)’로부터 유래되었는데, 각국에서 이 새로운 양식을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아르누보의 대표적 건축가였던 기마르의 이름을 따서 ‘기마르 양식(Style Guimard)이라고 불렀고, 독일에서는 ‘새로운 예술’과 유사하게 ‘젊은 양식’을 의미하는 ‘유겐트슈틸(Jugendstil), 이탈리아에서는 런던의 리버티 백화점에서 이름을 따 온 ‘스틸레 리버티(Stile Liberty)’라는 명칭으로 알려졌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황금빛의 화가로 알려진 클림트가 이끄는 ‘빈 분리파(Secession, 제체시온)’와 연계하여 ‘제체시온슈틸(Sezessionstil)’로, 스페인에서는 ‘근대적인’이라는 의미의 ‘모데르니스타(Modernista)’로 불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기마르가 설계한 파리의 아파트 ‘카스텔 베랑제’와 스페인의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가우디가 건축한 ‘까사 밀라’에서도 구불구불한 식물 덩굴 혹은 일렁이는 파도를 떠올리게 하는 곡선의 특징을 공유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르누보는 건축에서 가구, 공예품, 보석 디자인까지 실생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그 중 상업광고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디자이너가 바로 무하입니다. 아르누보의 양식적 특징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보여주는 무하의 작품 몇 점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알폰스 무하, '지스몽다' 포스터, 1894; '춘희' 포스터, 1896; '메데이아' 포스터, 1898

무하가 상업미술가로서 성공하기 시작한 본격적인 계기는 파리에서 활동하던 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의 연극을 홍보하는 포스터를 그린 일이었습니다. 1895년 처음으로 그린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가 (수집가들이 야밤에 몰래 떼어갈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베르나르는 무하와 6년 계약을 체결했고, 연극 포스터뿐만 아니라 무대와 의상 디자인까지 맡겼습니다. 무하는 그녀와 함께 작업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착시켰고, 베르나르가 무하의 포스터를 미국 순회공연에도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점점 더 유명해질 수 있었지요.   



알폰스 무하, '네슬레 유아식' 포스터, 1897; P.L.M. 철도 서비스의 '모나코-몬테카를로' 포스터, 1897; '모엣 샹동: 드라이 임페리얼' 포스터, 1899
알폰스 무하, 랑스 향수 '로도' 포스터, 1896; 르페브르-유틸 비스킷통, 1899; 르페브르-유틸 비스킷 박스, c.1900

<‘욥’ 담배종이 포스터>와 같은 광고 영역에서도 무하 스타일은 계속됩니다. 식료품 브랜드 네슬레의 유아식, 휴양도시 모나코-몬테카를로에서의 호화로운 휴가, 모엣 샹동의 샴페인 등 여러 종류의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를 지속적으로 제작하지요. 무하의 광고 덕분에 매출이 오르는 것을 확인한 회사들은 앞다투어 그를 초빙하였고 포스터 아티스트로서의 명성은 무하에게 패키징 디자인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1896년 한 향수 회사가 무하에게 광고를 맡기며 포스터와 함께 향수의 라벨과 포장 상자까지 의뢰한 것을 시작으로 상품 패키징 작업을 선보이는데, 르페브르-유틸사의 비스킷 통의 디자인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영화 <원스 어픈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에 등장한 무하의 <계절: 가을>(1900)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무하의 작업들은 대중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1904년 뉴욕의 한 매체에서는 무하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장식 예술가”로 소개하기도 했지요. 그때로부터 무려 115년이 지난 2019년 개봉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마고 로비가 미국의 록 밴드 폴 리비어 앤 더 레이더스(Paul Revere & The Raiders)의 노래 ‘Good Thing’에 맞추어 신나게 몸을 흔드는 장면입니다. 무하의 그림을 찾으셨나요? 순수예술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상업광고에 우아함과 황홀함을 입혔던 무하의 아르누보 디자인이 가진 매력은 오늘날까지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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