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언론의 끊어낼 수 없는 관계 그리고 기사의 가치
부제가 상당히 거창한데, 뭐 나름 크게 본다면 연관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어서 부제를 달았다.
우선 매우 오랜만에 글을 써서 게으른 나를 반성하며 글을 시작한다.
중앙일보를 구독한 건 지난해 7월이었다. 1년 정기구독을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신청했고, 나는 이벤트 사은품으로 소니 블루투스 스피커를 받았다. 매우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어서 나름 1년 동안 묶여 있는 게 크게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기사를 읽고 꾸준히 신문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도 한달 13000원(6월부터인가 15000원으로 인상)의 구독료를 지불했던 이유다.
우선 구독료에 대해 말해보자. 조선일보는 15000원이다. 중앙일보는 자동이체를 신청하면 13000원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다가 최근에 15000원으로 인상했다. 인상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사전 통지도 없었다. 이점이 기분이 나빠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죄송을 연발하며 2000원 인상분에 대해 환불해주겠다고 계좌번호를 받아가다니 감감무소식. 그리고 동아일보도 아마 15000원 정도를 받을 것이다. 이것이 조중동이 자신들이 쓴 기사를 모은 신문에 대해 요구하는 가치다.
진보지로 넘어가보자. 한겨레와 경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18000원을 받는다. 개별적으로 800원을 주고 사보는 것보다야 다소 저렴하겠지만 거의 원래 신문의 가격을 다 받는다고 보면 된다. 한겨레나 경향도 1년이상 장기구독시에는 이벤트 행사를 한다. 나는 작년 7월 중앙일보와 동시에 구독신청을 하면서 한겨레21을 사은품으로 3달정도 받아봤다. 여기에 자동이체까지 추가해 텀블러 2개를 받았다. 별로 쓸모는 없었지만. 경향도 비슷하다. 1년 이상 구독할 경우에는 사은품을 지급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핵심은 바로 구독료이다. 조중동은 다소 저렴한 가격에, 한겨레와 경향을 좀더 비싼 가격에 신문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차이를 설명할 땐 자본을 빼놓을 수가 없다. 돈이 좀 더 많고 여유가 있으면 저렴하게 신문을 내놓을 수 있다. 여기에 어떻게든 구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편법적인 상행위를 더 크게 벌일 수 있다. 가령 1년 간 구독했던 중앙일보를 해지하기 위해 나는 총 네 차례에 걸쳐서 전화를 해야했다. 구독해지는 정확히 한 달전 1년 만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신문은 7월 한 달간 계속 집에 배달됐다. 그리고 25일날 중앙일보 구독료 15000원이 빠져나갔다. 나는 바로 그날 고객센터에 전화해 해지했는데 대금이 빠져나갔다고 환불을 요청했다. 그들 전산기록에는 분명 6월부로 해지신청한 기록이 있었다. 그러나 해지는 되지 않았다. 중앙일보 지국에서도 신문구독을 연장했다는 기록만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어떻게든 구독자를 끌어모으려는 물고늘어지기식 전법인 듯하다.
어찌됐든 나는 중앙일보 구독에 대해 더이상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에, 다시 한 번 해지신청과 환불 요청을 했다. 25일 그리고 27일 그리고 28일 오늘까지 세 차례 전화했고 그들은 내 계좌번호를 받아갔다. 이후 지국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님, 7월분 환불도 해드리고 상품권도 휴대폰 번호로 바로 쏴드릴게요, 계속 구독해주세요." 나는 됐다고 안 본다고 했다. 지국 직원은 같은 말은 다시 반복했다. 세 차례 정도 실랑이를 벌인 끝에 단호한 나의 대답에 지국 직원은 포기를 했고, 환불처리를 해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아직 환불금은 들어오지 않았다.
신문에 대한 신뢰, 발품을 팔아가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노동. 기사의 가치는 물고늘어지기식 전법과 무료신문투입, 상품권 등으로 하락한다. 조선일보 구독을 해지할 때도, 중앙일보 구독을 해지할 때도, 그들의 방식은 한결같았다. 돈으로 해결해보자. 돈으로 구독자를 끌어모으자. 그렇게 돈을 받고 보는 신문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6만원짜리 상품권의 유혹이 내심 아쉬웠지만 그래도 단호히 나는 구독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런식의 신문을 파는 행위에서 나는 지저분한 자본내가 나는 신문을 받아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이권을 포기하고 내가 18000원짜리 한겨레 신문을 조용히 구독하는 이유다.
기자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하루종일 매달려 탄생한 8단짜리 기사 하나가 실린 신문이 어떻게 팔리고 유통되는지. 그런식의 신문 유통구조를 가지는 이상, 신문에 대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기사에 대해 엄청난 가치를 느끼는 구독자들은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자가 좀 더 가치있어지고 가치있는 기사를 생산하고 그것을 독자들과 공유하며 더 가치있는 사회를 만들어갈 때,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다. 종이신문이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가치를 바로잡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종이신문을 읽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기 이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