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보기
서울역에서 선릉으로 가는 날이었다. 서울역 근처에서 있던 오전 일정이 1누군가와 점심을 먹기 애매한 시각에 끝났다. 바로 뒷 일정은 선릉에서 2시. 점심 약속을 잡지 않은 게 다행이었만, 밥을 먹고 이동하는 것도 도착하여 요기할 곳을 찾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네이버 지도 앱으로 가는 길을 확인하니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노량진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라고 추천했다. 지하철 1호선을 기다리며 노량진역에서 대충 때우기로 했다. 거긴 지하철 비 1300원이 아깝지 않을 만큼 물가가 쌀 거란 기대를 품었다.
노량진 역에서 내리었는데 막막했다. 큰길엔 죄 커피숍과 학원이었다. 동작경찰서도 보였다. 무작정 걸어보았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 보이는 쪽으로. 맥도날드가 보였다. 잠깐 고민했다.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하면 여기로 돌아오리라. 맥도날드를 오른쪽에 끼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큰길과 다르게 여기는 쇼핑거리였다. 화장품 가게와 포장 전문 커피집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걸으니 나란히 선 김밥집 두 곳이 보였다. 한 곳은 김밥집의 공식과도 같은 주홍색 간판이 달렸고, 다른 한 집은 간판이나 외양보다 '김밥 라면 3500원'이라고 내 건 종이가 눈길을 끌었다. 그 돈이면 우리 동네에선 김밥 한 줄 값이었다. 냉큼 들어갔다. 12시 반이 되기 조금 전이었는데 손님은 두 명뿐이었다.
"뭐 드릴까"
"김밥이랑 라면이요"
"아~ 라김~. 삼천오백원이요~"
우리 동네 식당보다 상냥했다. 단가가 더 낮은 음식을 팔면서 더 상냥하다니. 낯설었다. 한 종업원은 식사 중인 손님과 한 식탁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친해 보이기에 모녀지간인 줄 알았다. 그 손님은 다 먹은 그릇을 가져다 부엌으로 주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고 틀림없이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나가는 손님의 등에 대고 "또 와" 라고 인사했다. 단골인 모양이다.
김밥과 라면은 정말 쌌다. 미리 싸둔 1500원짜리 김밥과 계란 물을 두 숟가락 푼 듯한 라면이 단무지, 김치와 나왔다. 김치는 누가 맛봐도 싸게 파는 김치였다. 배는 금방 찼다. 라면은 싼 만큼 달걀이 많지 않았다. 간은 적당했고 면은 쫄깃했다. 김밥은 들어갈 건 다 들어갔으나 미리 싸둔 거라 밥알이 살짝 말랐다. 그렇지만 이 가격에 그게 어디인가. 그 식당은 신라면은 2500원, 너구리 라면은 3000원에 팔고 있었다.
식사를 하며 메뉴판을 흘깃 보니 5000원 넘는 메뉴가 안 보였다. 비싸봐야 4500원이었다. 한술 뜨고 메뉴판 한 번 또 한 술 뜨고 메뉴판 한 번. 이렇게 숱하게 본 뒤에야 5000원이 넘는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제일 비싼 게 육개장이었다. 5500원. 제육덮밥과 수제비는 5000원이었다.
5000원이 넘는 메뉴를 찾고 나서야 가게를 둘러봤다. 식탁마다 수저통은 있지만, 휴지통은 없었다. 입구를 보니 그곳에 정수기와 휴지 묶음이 있었다. 동네 식당에서 식탁마다 휴지 둔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첫 회사에 입사하여, 점심 시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휴지 없이 깔았다고 면박 당했던 게... 아, 10년 전이다. 그럼 오래된 건가.
배를 채우고 골목으로 돌아왔다. 주택가 같으면서도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고시원, 독서실, 헬스장,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헬스장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는 게 특이했다.
노량진 물가는 싸다싸다. 특히 먹을 게. 음식점은 얼마나 가격이 싼지, 식당이면 메뉴가 얼마나 다양한지 강조한다.
유독 금연 표시가 눈에 띈다.
독서실 간판도 많다.
9호선 노량진 역 1번 출구였던가. 아메리카노 한 잔에 1천 원인 커피집이 있다. 테이크아웃 기준이었던 것 같은데 다른 메뉴도 쌌다. 자리가 넉넉하고 만화책도 몇 권 꽂아 두어 데이트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이 있었다. 주전부리용 과자가 있었는데 공짜.
그 커피집에선 엄청 끌리는 가격으로 아이폰 판매를 홍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