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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쇼 Jun 12. 2016

검색이 된 사전

책 «검색, 사전을 삼키다» 추천사

2011년 1월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로 참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누구 하나 무미건조한 사람이 없었다. 그중 지금 카카오에 있는 정철 팀장은 단연 돋보인다.


정철 팀장은 옛 다음커뮤니케이션 시절 사전 서비스를 취재하며 알게 됐다. 그전까지 사전은 내게 그냥 사전이었다. 사전은 심심할 때 뒤적이던 책이자, 표지가 두꺼운 책이자, 학교 숙제할 때 가장 먼저 들추던 자료창고였다. 고등학생이 되어선 친구의 전자사전을 탐냈고, 대학생이 되어선 선배들이 '나 공부한다'고 자랑하듯 들고다니는 콜린스를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종이사전을 봤다. 그러고 나서 어느새인가 공부하려고 산 사전을 손대지 않고 웹 검색을 했다. 사전은 어느새 내게 검색이 되었다. 정철 팀장은 내가 사전을 쓰는 방식이 변했다는 걸 일깨웠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사전을 찾지 않았더라?

첫만남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전 얘기를 했던 것 같다.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잊고 있던 사전의 존재를 끌어냈는데, 결론은 슬펐다. 지금 사전은 내가 어릴 적 선망하고 무조건 신뢰하던 그 사전이 아니었다. 물론, 옛날에도 사전은 그랬다. 사람을 찾으면 인간이라고 나오고, 인간을 찾으면 사람이라고 나오는 식으로 설명했다. 사전을 쓰며 짜증나던 경험을 털어놓자 정철 팀장은 맞장구치며 사전 편찬하는 뒷얘기를 들려줬다. 이런 게 제일 재미있다. 뒷담화. 모든 일에는 겉으로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있기 마련이다. 인터넷 서비스가 그렇고, 책 제작 과정이 그렇다. 그럴듯하고 점잖은 용어로 표현한 것보다 날 것의 이야기가 더 와닿고 머리에 쏙 박힌다.


정철 팀장 덕분에 사전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블로터에 다니며 사전 편찬자와 판매자, 서비스 제작자와 좌담회를 할 기회를 만들었다. 안상순 전 금성출판사 사전편찬팀장, 이승재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 언어정보팀장, 장경식 한국브리태니커 이사가 패널로 참석했다. 좌담회는 꼼꼼하게 정리한 책 한 권을 읽는 듯했다. 내가 굳이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네 분이서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지금도 이 아이템을 통과한 블로터와, 패널 추천과 섭외를 맡은 정철 팀장에게 고맙다.

[블로터포럼] 디지털 시대, 사전의 미래를 묻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종이사전을 들춰본 게 언제였더라. 공부가 일상인 중・고등학생도 종이사전을 쓰진 않을 것 같다. 전자사전이 있고, 전자사전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찾아주는 검색 서비스를 휴대폰으로도 쓸 수 있잖은가. 요즘 세상에도 종이사전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포털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사전을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바로 검색도 가능하니 종이사전도, 전자사전도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그래서일까. 사전을 만드는 곳이 없다는 얘기가 종종 들린다. 그 많던 사전은 다 어디로 갔을까. 뜬소문처럼 떠도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앞으로 우리는 포털에서 사전을 계속 쓸 수 있는 것일까. 이 의문에 관한 답을 찾고자 사전을 만들었고, 만들고 있고, 서비스하는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일시: 2013년 6월19일 오후 4시 장소: 블로터아카데미 참석자: 안상순 전 금성출판사 사전편찬팀장,이승재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 언어정보팀장, 장경식 한국브리태니커 이사, 정철 다음커뮤니케이션 지식서비스 팀장, 블로터닷넷 정보라 기자 대한민국 사전의 위기 정보라 블로터닷넷 기자 이번 포럼의 가제는 '사전은 어디로 가는가'이다. 사전을 내던 출판사들이 더는 사전을 만들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린다. 지금에야 포털에서, 포털이 출판사에게 사용료를 내고 받아온 사전을 무료로 쓰지만, 앞으로 사전이 새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믿고 쓸 자료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안상순 전...

www.bloter.net

 

이 일을 계기로 사전에 관한 책 몇 권을 읽었다. (지금 세어봤는데 정말 몇 권 안 읽었다. =_=;) 그중 제일 대중적인 건 일본 작가 미우라 시온이 쓴  «배를 엮다»(은행나무, 2013)였다. 사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잘 나가는 출판사에서도 사전 편찬팀은 인건비 까먹는 조직이다. 이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괴팍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을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정리하려고 괴상한 삶을 산다. 방망이 깎는 노인이 네댓명 있다고 보면 된다. 소설이었는데 영화화 되어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배를 엮다»를 읽을 즈음 네이버는 사전에 해마다 1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검색 서비스에서 사전이 그렇게나 중요한가. 지금의 한성숙 네이버 서비스 총괄이사는 사전이 검색에서 중요한 데이터라고 말했다. 검색이 사전을 대체하는 상황을 이해한 말이었다. 취재하면서, 출판사는 더는 독자적으로 사전을 편찬하지 않는 상황에서 포털, 그중에서도 네이버가 어깨에 한국 사전의 미래를 짊어진 듯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출판사가 아니 한국 출판사를 통틀어 사전에 100억 원을 투자할 여력이 있긴 한가.


사전에 관심이 가고, 취재할수록 (지금은 사전 얘기를 쓰지 않지만) 현대 한국인이 쓴(옛날 얘기 말고)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런 책 한 권쯤 한국에 있길 바랐다. 나는 암담하다고만 여기므로, 지금의 상황을 잘 정리하고 진단하는 글을 기다렸다. 이 바람을 채워주는 책이 나왔다. 저자는 정철 팀장. 제목은 «검색, 사전을 삼키다»이다. 한국에서 한국의 사전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이만큼 정리한 글이 있을까.


 «검색, 사전을 삼키다»은 한달음에 읽었다. 사전 덕후로 살아온 정철 팀장이 쓴 자기 이야기이자, 그가 덕질로 닦아온 사전 지식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책이다. 네이버와 다음이 벌인 사전 전쟁의 뒷이야기로 읽어도 좋다. 위키백과 활동가인 정철 팀장이 쓴 위키백과 얘기도 재미있다. 그리고 기분탓 같은데 내 얘기도 있는 것 같다. 이건 나중에 저자에게 물어봐야겠다. 책에 쓴 주변인의 일화 중에 내 이야기도 있느냐고.


사전이 궁금하고, 네이버와 다음 검색 작동 방식이 궁금한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제목 이미지: flickr @Lizadaly CC BY https://www.flickr.com/photos/lizadaly/2510899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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