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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쇼 Oct 19. 2017

힘내요 우리, 함께 해요 모두

데이터야놀자 관찰기 (3)

이 글은 ‘데이터야놀자’란 행사 관찰기다. 데이터야놀자는 2017년 10월 13일 한빛미디어 사옥에서 하루 종일 + 롬바드 게스트하우스에서 밤을 넘겨가며 열렸다. 데이터를 다루는 모든 사람의 축제란 기조로 진행되는데 운영진은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정 회사나 특정 기술 또는 언어에 종속되지 않는 걸 철학으로 하며 기업 후원으로 운영된다. 나는 올해 2017년에서 이야기꾼을 맡았다. (이미지 출처: Pixabay @Alexas_Fotos CC0)



이번 주 거의 1년 만에 퍼블리의 박소령 대표와 김안나 부대표를 만났다. 근황 토크를 해야 하는데 "얼마 전 재미난 행사에 다녀왔다"며 데이터야놀자에서 본 모습을 와다다다다 쏟아냈다. 기억력이 매우 좋은 게 아니면, 이렇게 입밖으로 또는 글로 뱉는 게 오래 기억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설령 잊었더라도 글로 적었으면 찾아 읽을 수 있고 주위에 말하고 다녔으면 "네가 말했던 그거"라며 되새길 수 있다. 여튼.


두 사람에게 데이터야놀자를 소개하면서 나도 모르게 두 가지를 강조했다. 패널토의 분위기와 고등학생의 밤에 온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패널토의는 현업에서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 네 명과 학생 한 명, 교수 한 명으로 구성됐다. 사회는 김성훈 홍콩과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맡았다.


‘교수’라는 사람이 사회를 맡았으니 엄청 딱딱할 것 같았으나, 전혀 아니었다. 곤란한 질문은 옆 사람에게 적시에 넘겼고, 때론 질문에 대한 답을 청중에게 ‘손들어보라’며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라며 엉뚱하게 진행했다. 그렇지만 분위기는 유쾌했다.






김성훈 교수는 2013년 머니투데이 기사 까치네개발했던 공고출신男, 지금…(기사 제목이다)으로 일반에 알려졌다. 후에 유튜브모두의 머신러닝과 딥러닝이란 강좌를 1년째 올리며 관련 공부하는 학생에게도 알려졌다. 올해엔 네이버의 연구 전담 회사 네이버랩스 선행연구 AI 팀(CLAIR)에 합류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또 한 번 이름이 회자됐다.


김성훈 교수와 패널에 대한 인기는 상당했다. 저녁 먹고 난 뒤인 7시 반쯤에 시작하는데 상당수가 자리를 지켰다. (발표 끝 - 저녁으로 피자 & 밴드 공연 - 장내 정리를 마치며 파장 분위기가 났는데도 남은 수가 꽤 많았다. 기억을 더듬어 대충 계산하면 50명은 넘었던 듯하다. 저녁으로 준비한 피자가 모자라서 치킨을 추가 주문하였으니, 운영진의 예상보다 많은 수가 남았던 것 아니겠나.)


이런 정신 없는 분위기가 있고 나서 토의를 진행했는데도 남은 사람이 꽤 많았다.


토의는 이창신(NBT America), 윤성국(코딩이랑무관합니다만), 정다솔(카드사 재직), 박조은(장고걸스), 이주형(구글)이 패널로 참가했고 김성훈 교수가 사회를 맡아 진행됐다. 패널의 목록을 보고 기술 트렌드를 짚고 이론 적용에 대한, 학술행사 저리갈 깊고 깊은 대화가 오갈 줄 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저녁까지 남은 참가자 상당수가 학생이었던 것 같다. IT 행사가 그러하듯 외모로는 학생인지 아닌지 가늠하기가 어려우나 청중의 질문은 진학 상담 비중이 컸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패널들은 이미 토의 전 예상 질문으로 진학과 취업에 대한 질문이 나올 거로 짐작했다.


패널 토의 전 회의하는 모습



갈까 말까 대학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는 데에 학위가 필요할까


첫 질문은 일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석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공부를 어디에서 하면 좋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왜 저런 질문을’ 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김성훈 교수는 이에 대한 답을 청중에게 구했다.


“데이터 사이언스하려면 석사 정도는 해야 한다, 아니다, 자, 손 들어주세요”


다수가 학력은 필요없다 쪽에 손을 들었다. 진지한 고민을 장난으로 받아친 것 같겠지만, 난 뭉클했다. ‘사회/업계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머신러닝/딥러닝 대학원 진학, 한국에서 or 미국에서 ?


이번에 나온 질문은 컴퓨터 공학뿐 아니라 여타 분야에서 늘 하는 고민일 것 같다. 자기를 학부생이라고 소개한 질문자는, 주위에 석박사 한다는 사람을 보면 다들 유학하는데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외국에서 하는 게 나은지 조언을 구했다.


사회자인 김성훈 교수는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와 창업한 뒤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홍콩 과기대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사회자의 학력과 경력을 보면 답은 뻔할 듯한데 쉽게 대답할 내용이 아닌 분위기였다.


청중과 패널에서 ‘한국 교수는 잡일 시킨다’ ‘한국 대학원은 GPU 하나 살 수 없다’ 라는 말이 나왔다. 질문한 학생은 자기의 진로 상담을 한 거지만, 그에 대한 답변은 한국 대학원, 교수진, 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쓴소리로 가득했다. 어느 정도 결론이 난 거 아닐까 생각하는데 김성훈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오간 내용에 대하여 녹화 중단을 요청했다. 쉬이 답하고, 그 모습이 영상으로 떠돌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걸까.


김성훈 교수와 패널의 입을 빌려 답변을 정리하고 싶지만, 녹화 중단을 요청했던 걸 존중한다. 그 대신 토의를 들으며 든 생각을 정희진 선생이 위키백과 에디터톤(2015)에서 한 강의를 메모한 걸 꺼내본다.


전주가 잘 되려면 전주에 있는 아이들이 서울로 많이 가야 한다고 하는데
이 패러다임으로 되는 일이 있을까.
반대로 전주에 있는 대학이 잘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위와 같은 방식은 지역의 인재를 외부로 내보내는 데 초점을 맞출 뿐, 지역의 내실을 다지는 데엔 관심이 없다. 서울로 진학한 학생 중 전주로 돌아올 학생은 얼마나 될까. 미래가 안 보이는 도시로 말이다. 이런 맥락으로 정희진 선생은 말했다.


지방대학은 정원이 줄면서 인근학교와 통폐합이 이루어졌고 이는 지난 10년 사이에 가속화됐다. 대학원은 더 심각하다. 한국경제 2017.7.20. 기사 지방 공대는 이미 초토화 석박사 한 명 없는 학과 수두룩은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수도권 대학원이라고 안심할 일인가. 나부터 친구가 학문을 닦고자 석박사 과정을 밟는다면 유학을 추천할 것 같다. 어느 분야이든 말이다. 장기적으로 연구활동하지 않는 대학은 학사 학위 발급소로 전락하지 않겠나. 그리고 떠난 인재가 과연 한국으로 돌아올까. 점차 교육이 빈약해지면 이 나라에서 학문이든 기술이든 그 무엇이든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이 사라질 것이다.


어줍잖게 정리한 내용이 김성훈 교수가 전달하고자 한 뜻에 닿길 바란다. ‘유학하세요’란 간결한 답변이 나올 줄 알았던 이 질문은 당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만 낳았다.


패널들. 사진: 데이터야놀자 구글 포토 @Seongkyu https://photos.app.goo.gl/oU6gSw64afqgBXhB3


다음엔 뭐가 뜰까요


정답을 찾는 질문도 나왔다. 그러니까 앞으로 뜰 분야를 알려달란 내용이었다. 음, 분야를 막론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란 질문이 세미나 같은 데서 종종 나오는데 ‘뭐 저런 질문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답변이 궁금해지곤 한다. 다 비슷한가보다. 이 질문엔 이런 답이 나왔다.


그걸 알면 제가 먼저 하고 싶습니다



음, 이건 내가 잘못 기억했다. 해당 질문을 한 분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니, 나는 앞뒤 자르고 기억하고 있었다. (최승준 님 페이스북)


최근 딥러닝의 기반이 되는 몇 가지 사례를 봐도 이전에 없던 이론이 아닌데, 그걸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서 각광을 받는 것 같다. 어떤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예전 부터 이미 있어 왔던 개념 중에 적절한 시기를 만나서 다시 뜨거운 이슈가 될 것 같은 저평가된 개념(선구자의 이론)에 관한 촉 같은 것이 있다면 공유해 달라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서 갖춰야 할 필수역량 3요소 중 하나만 꼽는다면


구글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역량’ 또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필수 역량’을 검색하면 8가지, 4가지 등을 쓴 글이 나온다.




데이터야놀자 행사 중 ‘제조 데이터의 특징 이해와 분석과 엔지니어링 융합에 대하여' 세션에선 3가지를 꼽았다. 1. 업에 대한 이해 2. 데이터 해석 능력 3. 데이터 엔지니어링 지식. 기존의 플레이어는 이 셋 모두 다 해야 한다는 것에 심히 부담을 느끼는데 신입 사원은 셋 모두 갖추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셋 중 무얼 가장 먼저 혹은 잘 해야 할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덕목이라고 하면 해당 버티컬에 대한 도메인 지식이 첫번째일 것. 전통적인 통계 분석에 대한 지식, 최근 많이 발전한 머신러닝이나 딥러닝 모델을 실제 구현하고 실험하여 결과를 내는 능력도 중요할 텐데 이걸 다 가진 사람은 드물다. 같이 일하는 사람은 어떤 걸 갖추길 원하는지 이 셋 중 하나만 얘기해주길. 


대답은, 소통능력이었다. 아뿔싸, 그렇다면 소통능력을 깔고 나머지 셋 중에서 고른다면? 으로 질문이 바뀌었다. 이번엔, 인내심이라고 대답했다.


다들 재치있는 답변으로 여겼는지 이 대답에 모두 웃었다.


나는 이렇게만 기억했는데 질문자는 진지하게 해석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이글 꼭 읽어보길. 이 해석은 상당히 좋고 읽어볼 가치가 있다.)



유튜브 공짜 강의 좋은데, 왜하는거죠?


나도 궁금했던 내용이다. 김성훈 교수는 딥러닝과 머신러닝 강의를 왜 유튜브에 올리지. 자료까지 만들어가면서. 왜 하지. 왜. 왜. 왜. 바쁜 분이 왜.


질문자는 대의를 위해서냐는 질문을 덧붙였는데 대답은 ‘아니’었다. 유튜브 광고 수익을 노린 것도 아니랬다.


1. 많은 사람이 같이 하면 정말 잘 할거라는 생각 

2. 재미있어서

3. 심심해서


덧붙여서, 분야 막론하고 한국은 사이즈가 작다. 이웃나라 중국과 비교하면 엄청 작다. 김성훈 교수는 모두의 딥러닝에 대한 반응을 하는 한국인과 중국인 수 차이가 20배 아니 50배 차이난다고 했다. 그리고 홍콩과기대는 젊은 교수에게 잡무를 시키지 않는다. 수업도 많이 주지 않는다. 교수의 연구 또는 휴식 시간을 최대한 보장한다. ( 참고자료: 2013년 머니투데이 기사 ‘까치네’ 개발했던 공고출신男, 지금…)



여성이여, 힘내자


이런저런 행사나 기사, 콘텐츠에서 여성이 보이지 않으면 그 분야(어느 분야이든, 거의 모든 분야가 아닐까)로 진입하는 여성이 적고, 이는 외부에 노출되는 여성이 적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 공중파에 나가는 어마어마한 행사는 아닐지라도 수십 명 모이는 이런 자리에서 '여성이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김성훈 교수에게 존경을 표한다.



Q. 여성이 적은 분야에서 개척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같은 길을 걸어가려는 후배에게 조언한다면.


박조은 “롤모델을 계속 세웠다. 회사에 들어가 롤모델을 찾았다. 그 분에게 많이 배웠는데 지금도 나만의 롤모델이 있다.”


정다솔 “나에게 하는 다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묵묵히 버티며 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묵묵히 버티며 하고 싶다.



주변에 본받고 싶은 이가 있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다. 한 명이든 두 명이든,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기댈 사람이 있으면 앞이 깜깜하거나 흔들릴 때 버팀목이 된다. 그렇지만 모두가 누리는 행복은 아니다. 그래서 정다솔 님의 대답에 마음이 갔다.


“다니는 회사에 남자 임원밖에 없거나 여성 임원이 있어도 존경할 만한 사람은 없다고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지금은 리더가 없지만 10년, 20년 뒤 여성 리더가 늘어나면 그중에 존경할 분이 꼭 나올 거다. 버텨서 일하자’며 의지를 북돋는다.” (아, 그런데 나에겐 늦은 듯한 얘기다. 난 이미 포기. 자포자기)


김성훈 교수는 본인이 존경하는 교수로 게일 머피를 꼽았다. 대화의 흐름상, 짐작하듯 여성이다.


게일 머피는 캐나다 출신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컴퓨터과학 교수인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 생산성 향상에 대해 연구한다. 연구 대상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포함한 지식 노동자다. 김성훈 교수는 게일 머피 교수의 논문을 읽으면 소설처럼 뒷 장이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그런 논문은 어떤 논문일지 궁금하면 구글 학술검색 페이지로 고)


김성훈 교수의 말 듣고 너무너무 궁금해서 찾아본 게일 머피 교수 사진. 출처: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 컴퓨터 과학 홈페이지



청소년 여러분도 으쌰으쌰 아자아자


데이터야놀자는 참가 신청을 받을 때 학생과 성인, 돈 버는 자와 아닌 자로 나눠서 받았다. 지방에서 오는 학생(대덕소프트웨어마에스터고등학교)에게는 하루 숙박을 제공했다. 홍대입구역 근처인 행사장 한빛미디어에서 멀지 않은 합정역 게스트하우스를 구했다. 행사가 끝난 뒤에 이 숙소에 묵는 학생 10명과 대화를 나눌 어른(?)을 구했다. 윤도영 카카오 그래프DB 파트장이 손을 들었다.


자리가 좁아 원에 끼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관심 컸던 자리.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미래를 불안해 하는 학생에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여러분은 저보다 우리보다 분명 좋은 데서 일할 거예요(잘될거였나...) 그러니 불안해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동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내 미래가 불안하다. 끙.


게스트하우스가 멋져 보이면 여기, 롬바드 하우스 홈페이지로.





이 글은 질문과 답변을 내가 이해하는 선에서 풀어서 적었다. 사전에 받은 질문은 여기에 가면 볼 수 있고, 데이터야놀자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면 두 편에 나눠 올라온 패널 토의 영상으로 현장 분위기 가늠할 수 있다. (1편, 2편) 최승준 님이 페이스북에 정리한 질문과 질문 또는 답변에서 언급된 내용, 관련 인물 링크 글도 추천한다.


페이스북에서 ‘데이터야놀자’ 검색하면 전체공개로 쓴 후기가 꽤 있다. 이글보다 더 설렘 주는 글과 사진 많으니, 이 행사에 관심이 간다면 꼭 검색하길.


실은 이렇게 주르륵 쓰는 대신 후기 캡처한 이미지 모아놓고 싶었는데..... 능력의 한계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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