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와 기차 타며
이 글을 들어가기 전 짚을 게 있다. 나의 경험은 일천하며 내가 본 것만 쓸 뿐인데 그것들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외국에 가서 그 나라의 고속/시외버스, 기차를 타본 건 미국과 캐나다 뿐이다. 미국에서는 워싱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기차,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메가버스를 탔다. 캐나다에서는, 일단 미국 시애틀에서 캐나다 벤쿠버까지 국경을 넘는 기차를 탔고, 벤쿠버와 휘슬러를 오가는 버스를 탔다.
미국의 동서를 가르는 기차를 탈 때에 기분이 야릇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줄서서 자리를 배정 받나. 노약자와 장애인 등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들에게 역무원이 재량껏 자리를 배치하고(스티커를 주고, 그때마다 펜으로 표시했다) 여행 거리에 따라서도 자리를 조절했다. KTX를 모바일로 예매하고 취소하고 자리까지 맡는 나라에서 살던 내겐 낯섦 그 자체였다.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메가버스를 탈 때엔 더했다. 정류장도 없이 길에서 기다리는데 배차가 영 이상했다. 1시간 가까이 기다리던 사람들은 술렁이고 급기야 한 남자는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항의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쪽 저쪽에 호응했는데 말싸움이 길어지자 슬슬 불안했다. 누구 한 사람이 다치거나 경찰이 올까봐. 다행히도 말다툼하던 두 사람이 화해의 포옹과 악수를 하고 지켜보는 이에게 박수를 받으며 마무리했다.
메가버스를 타기 직전의 경험은 시골버스 운영하는 거랑 인터넷으로 꽤나 깔끔하게 버스 예매 시스템을 마련한 버스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했다. (시간에 따라 가격을 바꾸는 시스템은 엄청 다르지만)
작년, 2015년에는 캐나다 밴쿠버와 휘슬러를 잇는 버스를 탔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따지면 서울에서 대전 노선과 비슷했다. 풍광은 다르지만. 가격은 배를 넘었던 것 같다.
일단 안전벨트가 없는 것에 놀랐다. 이 노선은 한쪽엔 산, 한쪽엔 계곡을 끼고 있어 경치는 예쁜데 아주아주 무섭다. 중간중간 마을에 내려 사람들이 타고 내렸던 걸 떠올리면 시외버스에 가까웠다. 이런 정보는 지금에 와서 내가 본 것들을 맞춰서 유추하는 정보이고 그때엔 고속버스 같은 걸로 알았다.
아무데나 앉으면 되는 것 같아서 앞자리에 앉았는데 나 빼고 아무도 앉질 않았다. 앞에서 두 번째 줄까진 비워두던데 나중에 보니, 거긴 한국으로 치면 노약자석이었다. 알아서 비우는 방식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지방에 갈 일이 있었는데 하던 대로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멀미가 날 수 있으니 맨 앞자리로 골랐다. 그러고서 버스를 탔는데 할머니 한 분이 대뜸 와서 "나 앞에 앉고 싶으니 비켜달라"고 했다. "제가 예매한 자리"라고 말씀 드렸고 그 할머니는 할 수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날이 지날수록 그날 일을 곱씹는다. 할머니가 무례하게 부탁한 걸까. 아님 거절한 내가 무례했던 걸까. 그 할머니는 인터넷으로 버스 표를 예매할 줄 모를텐데 버스표를 사면서 "앞자리는 다 나갔어요"란 말을 듣고 난처하지 않았을까.
온라인으로 모든 걸 예매하고 정하는 게 어느 군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내가 만난 할머니처럼.
이 글에 쓴 일들을 잊고 있다가 오늘 버스에서 이 시스템을 보고서 떠올렸다. 표에 찍힌 QR코드를 읽히면, 해당 좌석에 표시가 되어 승차 인원과 자리를 알 수가 있다. 한국은 새로운 걸 도입하는 데 빠르다. 우리 앞에 있다고 여기는 국가들보다 더 빠르다. 아직도 수검표하는 미국과 캐나다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