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먼 옛날 한국의 대학생은 시험 답안지에 지식을 뿜어내는 대신 자기만의 썰을 풀어, 지식보다 썰이 얼마나 우수한지 뽐내곤 했다. 그 양속은 2010년대에도 이어졌으니...
2016년 1월 11일 카카오라는 대한민국 국민 절대다수가 쓰는 메신저 회사가 대한민국 넘버원 음악 서비스 '멜론'을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1등 메신저가 1등 음악 서비스 회사를 산다니,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아니어 슬펐던 카카오의 옛옛 회사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한을 푸는 일이 아닐 수가 없음이니.
카카오가 인수하겠다는 멜론은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서비스한다. 이 회사는 한국 음악 서비스에서 규모로 보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나 1위 기업이다. 여기에 아이.아이유.유, 아이유를 키워내고 길러내고 관리하는 연예기획사의 일을 겸한다.
로엔은 1등이라는 단어와 인연이 깊지만, 순탄한 삶을 살지 않았다. 카카오에 인수되기 3년 전 SK텔레콤이라는 한국 1위 이동통신회사의 자회사 SK커뮤니케이션즈의 자회사인 SK플래닛의 자회사였다. 대한민국의 얄궂은 공정거래법은, SK플래닛에 로엔을 자회사로 두려면 로엔의 지분 100%를 가지라고 했다. SK플래닛은 막판까지 고민하다가 로엔을 사모펀드에 팔았다. 팔면서 인연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았으니 지분 15%는 팔지 않고 간직했다.
세간의 사람들은 SK플래닛이 로엔을 팔았지만, 로엔을 판 게 아니라고 믿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회사와 모회사 관계를 끊었지만, 그 관계를 복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SK플래닛이 끝내 팔지 않은 지분 15%와 로엔을 인수한 사모펀드의 정체 때문에 이 믿음을 사실로 믿는 사람이 하나둘 퍼졌다.
SK플래닛에서 로엔 지분을 인수한 회사는 스타인베스트홀딩스(지분 52.6%를 2659억 원에 넘긴다고 2013년 7월 18일 발표 )로 홍콩계 사모펀드 어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자회사다. 사람들은 믿었다. SK플래닛 또는 SK텔레콤이 로엔을 언젠가 되찾아 올 것이라고.
이 굳건한 믿음은 카카오가 로엔을 인수하며 깨졌다. 카카오는 로엔의 최대주주인 스타인베스트가 가진 지분 61.4% 모두와 SK플래닛이 간직한 지분 15% 모두를 1조8700억원에 인수한다. 이로써 SK플래닛은 로엔과 연결된 고리를 끊었다. 그대신 카카오의 옷자락을 잡았다. 카카오는 로엔 인수 자금을 마련하려 유상증자를 하는데 SK플래닛과 스타인베스트에 각각 2%와 8%를 배정한다.
SK플래닛의 로엔 지분 매도 결정의 건은 SK플래닛이 스타 인베스트 홀딩스 리미티트와 체결한 주주간계약에 따라 동반매도청구권(Tag-Along Right)를 행사할 경우에 해당합니다. SK플래닛이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하여, 로엔의 지분 매각과 카카오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경우에 SK플래닛이 카카오의 지분을 2%확보하게 됩니다. (카카오 보도자료)
로엔에서 시작한 이 썰을 카카오로 마무리하련다.
카카오가 매번 지갑을 통크게 여니, '저 회사는 안 사나' 아니 '우리 회사 안 사나'라는 공상을 하게 만든다. 이 말을 과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격적으로 인수하는 그 모습이 흡사 호랑이 같다며 호랑이 호자에 입 구...
맹호처럼 사냥한 카카오의 그간 기업 인수 건을 되짚어보자.
카카오는 대한민국 B2C IT회사치고 굵직한 인수 건을 만들었다. 내비게이션 앱 '김기사'를 서비스하는 록앤올을 642억 원에 샀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하기 전에 개발 인력을 구하고자 갓 창업한 회사를 수십억 원에 인수했다. 씽크리얼즈 58억 원, 로티플 51억 원, 써니로프트 25억 원, 합병 후에는 케이큐브벤처스 171억 원, 위시링크 120억 원, 엔진 250억 원, 카닥 95억 원에 샀다.
카카오는 글로벌 인수 건도 만들었다. path라는 모바일 기반 SNS를 인수했다. 이 서비스는 등장과 동시에 독특하고 눈길을 끄는 UX로 눈길을 끌면서 반짝였으나 이내 사그라들어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러다 카카오에 인수되며 화제를 모았다. 인수 대금은, 인수 발표 당시에 공개되지 않았으나 카카오 공시자료를 보면 영업권을 263억원에 인수된 것으로 나온다.
로엔 인수는 다음커뮤니케이션, 다음카카오, 카카오가 추진한 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카카오는 로엔 지분 76.4%를 1조8700억 원에 인수한다. 2조 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카카오는 스타인베스트 지분 61.4%를 1조5천억 원, SK플래닛이 가진 지분 15%를 3700억 원에 사는데 7500억 원은 카카오 주식을 유상증자하여 충당한다. SK플래닛과 스타인베스트에 유상증자한 주식을 배정하는데 이렇게 되면 SK플래닛은 카카오 지분 2%, 스타인베스트는 8%를 얻게 된다.
유상증자 외에도, 카카오는 로엔 인수 대금을 마련할 다를 방도를 찾는다. 필요하면(이라고 쓰고 그래도 모자르면이라고 읽는다) 카카오가 가지게 될 로엔 지분을 담보로 외부 투자를 유치할 계획을 공시를 통해 밝혔다. 여유 자금이 없는데 추진했다는 얘기다. 새삼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라이코스를 인수했던 게 떠오른다.
로엔 인수 건을 접하고 나니 꼭 지금이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로엔은 SK플래닛이 매각하던 때보다 지금 주가가 7배 이상 뛰었다. 2013년 7월 12일 1만4천5백 원이던 주가가 2016년 1월 7일 7만9천2백 원이 됐다. 시총은 2조원이 넘는다.
스타인베스트는 지분 52.6%를 2649억 원에 샀는데 61.4%를 1조 5천억 원에 되판다. 지분율에 차이가 있으나, 어림잡아 계산해도 6배 이상 수익을 남긴다. 카카오는 역시 맹호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