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두고 온 날
나도 분명 우산을 두고 온 날이 있었을 것이다.
어린 날의 내가 비를 맞으며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어쩐지 동화의 한 장면처럼 아련하고 뽀얗게 그려진다.
왜일까. 아마도 아빠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에도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비를 뒤로한 채, 운동장을 향해 망설임 없이 뛰어들던 나는 그 끝에 우산을 들고 서 있을 아빠를 당연히 믿고 있었던 아이였다.
아빠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무려 12년 동안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셨다. 사업을 하시고, 지역 정치인으로 늘 바쁘셨지만 하루의 시작만큼은 나와 함께해 주셨다. 나는 그 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아빠와 나의 하루는 늘 나란히 시작되었다.
가족 여행지에서 아빠는 항상 단상 위에 계셨다. 야영장에서, 행사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인사를 건네던 그 모습은 늘 멀리 있었지만 “저 대장님이 우리 아빠야.” 하는 자랑스러움은 누구보다 가까웠다.
아빠는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사람이었다. 처음 친구와 싸워 멀어졌던 날, 속상한 마음을 꺼내놓자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에게 넌 미련없이 최선을 다했니? 서로 잘못했고, 먼저 사과했는데도, 그 아이가 미안해하지 않는다면 그만 붙잡아도 돼. 넌 그럴 가치가 있는 아이야.”
그 말은, 어린 나를 존중하게 만들었고 나 자신을 단단히 껴안게 했다.
‘진인사대천명.’
아빠가 자주 하시던 말이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면 이제 하늘의 뜻을 기다리면 된다는 것.
대학교 지원 발표를 기다릴 때, 처음 대기업에 지원하던 날, 떨리고 긴장되는 순간마다 아빠의 그 말은 내 조급함을 눌러주고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그 빛 아래에서 자랐다. 화려하고 반짝이던 부모님의 시간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별이 되어주었고 그 빛을 받은 우리는 용기 있게, 정직하게, 해내는 사람들로 자라났다.
자존감을 지켜주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준 그 믿음과 포용력이 우리를 키웠다. 늘 곁에 있어 주겠다는 그 확신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빛이 조금 흐려졌을지 모르지만, 그 반짝임은 사라진 게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빛을 지켜드릴 차례다.
우산을 두고 온 어느 날, 비를 맞으며 웃을 수 있었던 건 내게 우산을 들어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우산을 드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 우산, 이제 우리가 들 차례.
그 별, 우리가 이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