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뷰 없는 지금이 내 휴가

휴가가 필요해

by 보라유


"휴가가 필요해."


회사 다닐 땐 매 계절마다 외쳤던 말이다. 멈추고 쉰다는 건, 어디론가 떠난다는 건, 그 자체로 나에게 회복이었고, 숨 쉴 틈이었다. 일상을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새싹이 돋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나는 말 그대로 '출근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때보다도 분주하고 바쁜 날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느날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아기의 생활 리듬에 나의 루틴은 완전히 덧씌워졌고 나를 위한 시간은 잠시다.


먹고, 씻고, 잠드는 것까지 하나하나 전적으로 내가 돌봐야 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깊고 넓은 책임감을 요구한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진짜 가끔은 예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꿈꾼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몸은 분명 더 고단한데 마음은 왠지 꽉차있다. 매일 차오르는게 맞다. 아이가 나를 보며 활짝 웃는 순간들, 눈을 맞추며 옹알이를 건네는 그 찰나에 내 안의 무언가가 툭, 녹아내린다. '아, 이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가 지금 내겐 가장 긴, 가장 깊은 휴가구나' 싶다.


아이가 잠이 들고, 집 안에 고요가 찾아오면 나는 조심스레 노트를 펴고 글을 쓴다. 한 페이지 책을 읽거나, 따뜻한 커피 한 모금으로도 나만의 휴식을 느낀다.


여기엔 비행기도, 오션뷰도 없지만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며 세심하게 관찰하고, 눈 맞춤으로 대화하고, 내가 주는 애정만큼 아이도 나에게 마음을 열어줄 때면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느낀다.


언젠가는 이 아이와 둘이 유럽 어딘가를 여행하는 상상을 해본다. 넓은 광장에서 아이와 손을 맞잡고, 서툰 언어로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작은 골목에서 추억을 주워 담는 날들.

그때의 나는 분명 지금을 떠올리며 말할 것 같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그리고 가장 소중한 휴가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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