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일상에서 받는 위안

Red: 진한 용기와 위안

by Bora Yoo

Red 빨강은 강력하고 열정적인 색입니다. 빨강은 수줍거나 의지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용기의 색입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예술가들의 루틴을 정리해 놓은 표를 발견했습니다.



Visualizing the Daily Routines of Famous Creative People
출처: https://www.visualcapitalist.com/visualizing-the-daily-routines-of-famous-creative-people/



'예술가들이라 하면 보통 잠 못 이루며 밤 새 작업하고, 늦은 오후에 기상하는 패턴이 아닐까'하는 고리타분한 선입견이 저에게 있었지요.


생각과는 좀 달랐습니다. 오전/오후 골고루 분포된 'Creative work'시간도 인상적이었지만, 많은 시간을 'Day job/Admin', 'Leisure', 'Excercise'에 투자한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일상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들은 게으름과 싸우며 작업했을까? 타고난 성향으로 창작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집중력을 가진 걸까? 일과 일상, 휴식의 구분이 명확했을까? (‘아무렴, 세기의 명작을 쓴 작가가 나처럼 게으를 수는 없겠지.’하며.)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 리추얼


그러다 ‘리추얼'이라는 책에 이 내용이 상세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 책에는 약 400명의 예술가, 철학가 등 위인들의 루틴 패턴이 한두 페이지로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하루키는 하루의 신성한 의식처럼 달리기와 수영을 꾸준히 이어갔고, 우드하우스는 신성하게 매일 아침의 체조를 거행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자만하지 않으려 매일 글을 써낸 글자 수를 기록하며 자신을 다잡았다고 자신의 일상을 설명했습니다. 지키기 어려운 하루의 루틴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절제하고,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예술가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루틴을 유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괴테는 영감이 오지 않는 날은 억지로 뭔가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고, '나는 작가가 되기에는 너무 게으르다'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반가운(?) 고백도 있었습니다. 찰나와 겨를을 활용한다는 다수의 예술가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스스로 옥죄이는 방법만으로는 창작을 이어갈 수 없었다는 판단이었겠지요. 스스로 휴식과 숨구멍을 허락하는 일은 내 패턴과 루틴을 진중하게 들여다본 후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게 맞는 루틴은 저절로 오지 않고, 그 궤도를 찾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그들의 담담한 발자취가 저에게 새로운 영감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생계유지를 위해 낮에는 직장에 나가 일을 해야 했던 카프카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고백이었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생활고에 묶여 밤마다 격정적인 편지와 글을 써내려 갔다는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아름답고 굴절 없는 예술가들의 일상은 그저 허상이었다는 것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가장 큰 위안은
'그들의 일상이 어쩌면 나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빛나는 루틴을 처음부터 손에 쥘 수 없었고, 게으름과 사투했고, 때로 스스로를 옥죄이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러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다잡으며 그 길을 갔다는 사실이 그 어떤 위로보다 더 큰 메시지였습니다.


타인의 삶이 이토록 나에게 위안을 적은 없었습니다. 문득 나의 하루를, 내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그토록 시간계획표를 싫어하는 나지만, 게으른 일상을 꼬집고 지적하는 방식이 아닌, 무리하지 않고 나에게 맞는 루틴을 찾는 친절한 방식이라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서식을 만들고, 채우기를 시작해보았습니다. 컬러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저에게 이 작업은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중간중간해보고 싶은 일도 끼워 넣어 보면 어떨까. 그럼 내 일상은 어떤 색이 될까. 나는 어떤 색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나.



현실의 내가 거기에 있습니다. 루틴이 거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의 색들은 저마다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나를 채우고 있는 시간, 내 에너지를 쏟아 집중하는 시간, 소진되는 시간, 없으면 안 되는 영감의 시간. 각각의 시간이 내게 주는 의미가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루틴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상의 활동들은 여전히 많았고, 좌절감에 우울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억지로 하고 싶지 않다고 결단 내린 괴테라면 어땠을까, 소진되는 시간이 찾아오면 카프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들의 삶을 떠올려보는 것은 일상 틈틈이 제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오늘을 버텨냈고 살아갔겠지. 오늘의 의미를 발견했겠지.'




루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는 진짜 게으름에 최적화된 사람이구나'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눈물) 그러나 분명한 건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는 것이었지요. 게으른 나의 모습에 집착하느라, 열심히 살아 낸 어느 하루는 덮어둔 채 지냈다는 사실이 서서히 느껴졌습니다.



게을렀지만
꽤 괜찮았던 하루를 더 늘려볼 수는 없을까
바빴던 나를
도닥여주는 하루를 더 늘려볼 수는 없을까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루틴 위에 붙여보았습니다. 게으르지만 빛 나는 나의 하루. 게을러서 사랑스러웠던 하루. 게으른 나다워서 괜찮았던 하루.


이제 게으름을 돌보는 것은 저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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