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에 강제성 한 스푼, 창조루틴

Orange: 에너지와 소통

by Bora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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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nge 주황은 소통의 색입니다. 주황은 어려운 시기에 감정적인 힘을 주며, 물리적 에너지와 자극이 어우러져 명랑함을 선사하는 색입니다.





엉덩이 붙이고 앉으면 딱 내 자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따뜻한 온기가 생기고, 마침내 마음까지 안락해지는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추운 겨울 따뜻한 이불속에서 보는 만화책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햇빛을 쐬며 흘러가는 구름을 가만히 바라보는 순간일 것이고, 누군가에는 매콤 철철 넘치는 떡볶이를 먹는 일 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장소 자체 일 것입니다.


저에게도 많은 순간이 있지만, 수업을 듣거나 무언가를 배우고 있을 때 느끼는 완전한 안락함도 그중 하나입니다. ‘아이고, 여기가 오늘 내가 누울 자리구나' 싶어 지는 그런 편안함. 게으름에 허덕이며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 나를 한참이나 싫어하고 있을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어떤 동력을 찾지 못할 때, 배움은 저에게 좋은 친구였습니다. 배움의 끈은 호기심 많은 내 욕구를 충족시키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강제적 운동성을 제공해주는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외부로 나가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일종의 약속입니다. 제 일상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일이지요, 약속을 어겨 수업을 혼자 듣게 만들고 싶지 않은 동료와 함께라면 그 약속은 더욱 굳건히 지켜질 것이고, 수업의 내용과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것도 강제성이 지켜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줄 것입니다.



제 일상에는 이런 강제성이 한 스푼 필요했습니다.



나를 자리에서 일으키고, 밖으로 끌어내는 강력한 원동력이 내면에서 스스로 발휘되면야 좋겠지만, 저는 그것이 불가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온전한 24시간에 허우적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했지요. 많은 것들이 흐리멍덩해지고, 외부의 자극이 있을 때 간헐적으로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고 해서 꼭 24시간의 완전한 자유시간이 주어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내 시간을 완전히 스스로 꾸려갈 자유가 80%가 있고, 20%의 강제성을 한 스푼을 더한다면 내 일상이 조금 더 새콤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못하겠다 못하겠다 노래를 부르다가도 입금이 되면 육신이 저절로 일으켜지는 나. 아침 7시 기상이 죽었다 깨어나도 자율적으로 안되다가도 그 시간에 타야 하는 기차가 있다면 눈이 번쩍 뜨여지는 나. 혼자서는 듣기 귀찮은 수업도 괜찮은 동료와 함께라면 시너지가 나는 나. 내가 만약 그런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적극적으로 강제성을 부여할 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창조루틴'을 시작했습니다.


함께 일러스트 수업을 듣던 미모의 50대 언니에게 매주 한 번씩 만나 무엇이든 좋으니 함께 창작해보자고. 장소는 서울 CKL, 우리는 매주 화요일에 만나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강제성을 우리의 약속으로 규정했습니다.


첫 시작은 '마스코트 공모전'응모. 정보탐색을 하다 발견한 마감이 임박한 마스코트 공모전의 응모를 목표에 두고 매주 한 번 아침부터 오후까지 열심히 캐릭터 만들기에 열중했습니다. 고작 몇십 시간 배운 모자란 실력으로 그려내는 작업이었지만, 나에게 이런 루틴이 생겼다는 게, 심지어 이름도 그럴듯한 '창조루틴'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물론 여전히 몇 시간씩 누워 뒹굴대고, 컨디션을 핑계로 또 누워있고, 자괴감에 빠져 자기혐오를 들춰내는 날들이 저에게 있었지요. 하지만 모든 일상이 부지런하고 빠릿빠릿하게 채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저에게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런 날의 나를 또 싫어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는 날도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일어나기 힘들구나. 오늘은 어제의 기분에 멈춰있구나. 오늘은 좀 더 낫구나.' 하며 느린 한걸음을 옮겼습니다.


마스코트 공모전에서는 떨어졌습니다. 함께 준비한 언니와 깔깔대며, 심사위원이 보는 눈이 참으로 없다는 실없는 농담을 해가며, 다음에는 뭘 해볼까 하는 작당모의를 해가며.







자기 일상과 시간을 잘 관리하는 멋진 프리랜서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게 부지런함은 유능함이었고, 다른 이의 도움 없이 해내 보이는 내가 되고 싶다는 환상 같은 목표가 있었습니다. 나를 옥죄이는 활동에 몸담고 싶지 않고, 내 자유를 빼앗는 모든 행동에 반항하는 시간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나를 강제하는 장치를 만들어주는 것은 저에게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시간관리를 잘하는 유능한 프리랜서의 환상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데드라인을 부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쉬운 한걸음일 수 있는 작업이 저에게는 그렇게 힘들고 더뎠던 것은 분명 이유가 있었겠지요. 게으름은 저의 결핍이었고,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으니까요. 일상의 회복은 더딘 속도로 또 그렇게 창조루틴에 힘입어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습니다.